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정상회담 준비위원회 1차 회의가 6일 개최됐다. 사진=청와대
북한 비핵화의 교착상태를 뚫고 남북 협력에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대북(對北) 2차 특사단의 성과가 초라하다. 화려한 말의 성찬(盛饌)만 난무할 뿐 종전선언이 이뤄져야 핵 리스트를 제출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걸음도 나아간 게 없다. 오는 18일부터 2박 3일간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것 외에 비핵화와 관련한 어떠한 실질적 합의도 없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만찬이 예정에 없었는데 하는 것을 보면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지만 결국 '혼밥'으로 밝혀진 것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특사단이 북에 간 제1의 목적은 '정상회담'이 아니라 '비핵화 협상'을 본 궤도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 후 북미(北美) 협상이 교착된 상태에서 소위 '한반도 운전자론'으로 북한과 새로운 협상 동력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특사단 (공식) 발표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말뿐이다.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2022년 1월)에 비핵화가 실현됐으면 좋겠다"며 시한을 제시했다는 말뿐이다. 김일성, 김정일도 수없이 되풀이했던 (거짓)말이다. 고무줄처럼 늘어지는 비핵화 시한이다.
      
비핵화가 되려면 지금 북핵 리스트를 제출하고 검증을 시작해도 늦은데 핵 리스트 제출조차 거부하면서 말로만 하는 비핵화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그런데 특사단은 김정은이 자신의 비핵화 의지에 국제사회가 의문을 품는 데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미북 정상회담 후 북이 한 일이라곤 스스로 '더 이상 쓸모없다'고 밝힌 핵 실험장과 미사일 시험 발사장을 폐쇄한 게 전부인데, 이것을 국제사회가 믿으라는 것인가? 핵무기와 핵 시설을 없애기는커녕 신고만 하라고 해도 '강도 같은 요구'라며 화를 내는데 이를 믿으라는 것인가?
        
지금 정부는 비핵화는커녕 '우리 민족끼리'에 현혹되어 '남북경협'과 '제재완화'에 ‘올인’하는 것 같다. 비핵화 이전에 남북 사업을 자제하라는 미국의 강도 높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북 연락사무소 개소(開所)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남북경협사업이 주종을 이루는 '판문점 선언' 이행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는 결국 비핵화의 '촉진제'가 아니라 '장애물'이 될 뿐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남북관계 발전'을 고리로 '북미관계를 견인'하겠다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오만을 버리고 국제사회와 발맞추어 남북관계 발전의 속도를 신중히 조절해야 한다. ‘남북문제는 민족문제’라는 우물 안 개구리식 인식에서 벗어나 동북아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 나래를 편다." 헤겔이 ‘법철학’ 서문에서 한 말이다. 세상의 일들은 인간의 짧은 식견으로 결과를 미리 알 수 없고, 그 일이 맞고 틀리냐는 뚜껑을 덮고 나서야 판가름이 난다는 뜻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보다 훨씬 천학비재(淺學菲才)의 필자가 한반도와 비핵화의 운명과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능력은 당연히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하면 분단국가이자 냉전 잔재가 남아 있는 한반도에 '핵 없는 평화'는 요원하게 보인다.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정착과 관련해 올해 말까지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진도를 내는 것이 목표"라는 대통령의 말과 달리 오히려 '되돌릴 수 없는 파국'으로 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대북특사단이 평양에서 북측과 협상을 앞두고 내부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현 정권은 더 이상 북한의 현란한 '말장난'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양치기 소년' 우화에서 보듯이 북한의 속임수에 두 번, 세 번 속지 않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는 언어는 공허함을 깨닫고 북한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요구해야 한다. 
        
'비핵화 없는 경협'은 신기루다.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은 한미동맹 약화와 주한미군 철수의 빌미만 된다.
    
필자가 보기에 '비핵화'는 결코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이 아니다. 경제발전을 위한 김정은 스스로의 '주체적인 결단'도 아니다. 오히려 북핵은 6·25전쟁 직후 김일성에 의해 시작된 북한 국가 대(大)전략의 핵심 요소며, 북한이 꿈에도 그리는 강성대국의 결정적 요소다. 'CVID'든 'FFVD'든 비핵화는 호랑이에게 이빨을 빼는 것과 같은 행위로, 3대 세습 체제의 유일한 정치적 무기인 핵을 영원히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비록 위장폐기 쇼라도) 북한이 이나마 대화로 선회한 것도 '강력한 대북 제재'와 '압박' 때문으로 봐야 한다.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 남북정상이 만나는 ‘이벤트’만으로 감동을 주는 시기는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필요하면 얼굴까지 붉히겠다는 각오로 치열한 협상을 해야 한다. '나쁜 합의'는 '무(無)합의'보다 국익에 해롭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끝장토론'을 해야 한다.
  
부디 세 번째 정상회담은 '아니 만남만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의 비관적 예측이 틀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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