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통계청은 역사의 오점을 남길 수도 있다. 지난 10월11일 통계청 국정감사에서 야당이 통계청을 거세게 몰아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야당은 통계청이 현 정권에 유리한 통계를 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지난 10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회의실에서 열린 관세청·조달청·통계청 국정감사에서 강신욱 통계청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DB

정보기관이 정책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정보맨’들의 기본상식이다. 정보는 있는 그대로의 ‘정보’로서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올바른 정책이 펼쳐진다는 얘기다. 통계도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통계 수치를 바라봐야 현상을 제대로 진단하고 제대로 된 정책을 입안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통계청은 역사의 오점을 남길 수도 있다. 지난 10월11일 통계청 국정감사에서 야당이 통계청을 거세게 몰아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야당은 통계청이 현 정권에 유리한 통계를 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더군다나 강신욱 통계청장이 보건사회연구원 소속 연구원이던 시절 청와대로 불려가 '소득주도성장'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한 자료 작성에 기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임명 당시 불거졌던 정치적 편향성 문제가 재차 도마 위에 올랐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5월 소득 분배 지표를 담고 있는 '가계동향조사'가 발표되던 날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이 통계청 직원들을 호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당시 보건사회연구원 소득보장정책연구실장을 맡고 있던 강신욱 통계청장도 동석했다.
 
홍 전 수석은 통계청 직원들에게 당시 공표되지 않은 마이크로데이터를 강 청장에게 넘기라 지시했고, 이를 토대로 신규 표본이 늘어난 것이 분배 지표 악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해 1분기 소득 불평등에 신규 표본이 기여한 정도가 64.2%로 기존 표본(35.8%)보다 높다는 내용이었다.
  
추 의원은 당시 청와대로 소환됐던 통계청 직원들과 강 청장이 통계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통계법(제31조)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통계 자료를 활용하려면 문서 또는 전자문서로 신청하는 과정이 필요한 데 이를 무시했다는 지적이다. 추 의원은 "홍 전 수석이 구두로 통계를 지시했고 이를 타인에게 제공하면 이는 직권 남용이자 그 자체로 불법"이라며 "통계청은 지금껏 이런 자료를 한 번도 외부에 제공한 적이 없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강 청장은 "당시 국책 연구기관에 근무하면서 소득 분배에 관한 연구를 주로 했기 때문에 새로 공개된 데이터에 대한 심층 분석이 필요했다는 차원으로 이해해서 그 자리에 갔다"며 "자세한 내용은 몰랐었다"고 해명했다. 다만 그는 "그런 과정에 관여했던 것은 인정한다"며 "향후에 재발하지 않도록 보완해 운영해 나가고 있다. 재임 이후 통계 자료의 외부 제출 관련 절차를 개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말 황수경 전 통계청장이 1년2개월 만에 경질되고 강 청장이 임명되면서 청와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펼쳐 나가는 과정에서 통계청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윤영석 한국당 의원은 강 청장에게 "조작된 통계에 대한 보상으로 통계청장에 임명된 것 아니냐"고 묻자 강 청장은 "그렇지 않다. 인사권자의 판단에 대해선 말씀드릴 것이 없고 분석한 자료도 조작이라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추 의원은 "감사원 감사와 함께 홍 전 수석에 대한 고발 조치를 별도로 취하겠다"고 밝혔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기재부에 지니계수 관련 자료를 제공한 것을 문제 삼자 강 청장은 "마이크로데이터를 한 번 제공한 후에는 그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관이 정부 기관이든 민간 기관이든, 자료를 분석하고 발표하는 것은 자율의 영역"이라며 "특별히 규제하고 있진 않다"고 언급했다.
 
지난 10월3일 기재부는 통계청이 공식적으로 가계동향조사와 함께 제공하고 있는 '5분위 배율'뿐 아니라 '지니계수'도 유의미한 분배 관련 지표일 수 있음을 제시하며 이 지수가 2분기 연속으로 개선됐다고 밝힌 바 있다.
 
유 의원은 기재부가 공식적으로 통계를 생산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통계청이 직무를 유기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가계동향조사 방식의 개편으로 표본이 달라져 통계의 신뢰도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관련 예산을 늘려 기존 방식과 새로운 방식을 함께 공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강 청장은 "좋은 제안이라 생각하고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권성동 한국당 의원 역시 통계청이 페이스북에 업로드(upload)한 자료에 분배 통계, 국가 경쟁력 관련 내용 등이 빠져 있다는 점을 들어 정권에 유리한 내용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강 청장은 "공포되는 통계 자료는 모두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며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올린 내용은 국민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간략히 작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물가 통계가 공표되기 시작한 1965년 이래 처음으로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과 관련해 강 청장은 "디플레이션(deflation)은 정의상 물가 하락이 1년이나 그 이상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공식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달 한 번이었기에 아직은 디플레이션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강 청장은 0%대를 기록하고 있는 공식 지수와 체감 물가는 높게 나타나는 괴리 현상에 대해서는 "외식비는 임대료나 인건비 변화가 함께 반영되기 때문에 가격 하락의 주요 요인인 농축산물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3~4년간의 경기 전망을 묻는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경기 수축을 이끌고 있는 대외 불확실 요인이나 투자나 건설 부문의 침체 등이 이른 시일 내에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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