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1 19 23 36 45’
 
이번 주엔 이 번호로 로또복권을 사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어제 방영된 jtbc 수목드라마 ‘쌍갑포차’를 봤다면 말이다.
 
내가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것은 이승과 저승 사이 ‘그승’이라는 기발한 발상 때문이다. 다소 유치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승’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길래...? 하는 궁금증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곳, ‘그승’에서는 매회 죽어서도 한이 될 만큼 상처투성이가 된 ‘을’ 들이 월주(황정음 분)가 건네는 ‘쌍갑주 일 잔’으로 잠들었다 깨어나면 말끔하게  치료되는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다. 참 웹툰다운 재기발랄한 발상이다.
 
이러한 기발한 발상의 압권은 아마도 4회에 방영된 ‘2020 그승 로또대전’ 에피소드가 아닐까한다. 1년에 단 한번 열린다는 ‘그승 로또대전’은 망자(亡者)들, 즉 이승을 떠난 각 집안의 조상들이 이승의 후손들을 위해 ‘로또번호 쟁탈권’을 두고 겨루는 일종의 야외운동회인데 종종 신문 기사에서 본 조상꿈 꾸고 로또에 당첨됐다는 당첨자들의 말을 이렇게 재치 넘치게 그려내다니... 작가의 상상력에 기립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러나 망자들 사이에서도 ‘갑과 을’은 존재하고 갑질하는 망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철저한 응징이 주어진다. 바로 이러한 점이 드라마 ‘쌍갑포차’의 재미요소이자 주제이며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쌍갑포차’의 성격 까칠한 주인장, ‘쎈이모 월주’는 오백년 묵은 귀신이다. 500년 전에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무녀의 마음씨 고운 딸이었지만 무녀의 딸이라는 천박한 신분 탓에 ‘세자’의 병을 고쳐주고도 인간들의 근거 없는 모함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그것이 한이 되어 신을 탓하며 나라를 지키는 신목(神木)에 목을 매 죽는다. 그 죄로 이승으로 떨어져 10만 명의 인간의 한을 풀어야 줘야하는 형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월주가 저승의 물을 가지고 이승으로 와 차린 주막이 ‘쌍갑포차’이고 이 물이 바로 ‘쌍갑주’다. 산 사람이 쌍갑주를 마시면 그 사람의 영혼은 잠시 이승과 저승 사이 ‘그승(꿈)’에 머물게 되고 월주는 ‘그승’으로 들어가 상처받은 ‘을’들의 한을 풀어준다. 한마디로 오백년 간 인간사에 엮여 ‘쎈이모’가 된 월주의 활약이 볼 만하다.
 
여기에 월주를 돕는 저승경찰청 형사반장 출신 귀반장(최원영 분)과 영혼이 닫히지 않아 다른 사람과 스치기만 해도 그 사람들이 고민을 털어놓게 만드는 어리버리 순수청년 한강배(육성재 분),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월주를 관리하고 있는 인간미(?) 넘치는 저승사자 염부장(이준혁 분) 같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조합 역시 이 드라마를 보는 색다른 재미다.
 
“(당하지만 말고) 손톱이 없으면 갈고리를 세우고, 이빨이 없어도 으르렁거리라고!"
 
소리치는 ‘쎈이모 월주’는 TV 앞에 앉은 ‘한 많은 을’들을 대변하며 ‘돈 없고 빽 없어’ 불평등한 차별 속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준다. 웹툰 원작을 보지 않은 시청자들일지라도 ‘쌍방이 갑이다’, ‘달리는 능력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질 수 있지만 뛰기 전 출발선은 모두가 같아야 한다’는 월주의 외침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 는 ‘웃픈’ 말처럼 요즘 사람들은 상대방의 작은 고민을 들어줄 여유도 없고 내 얘기를 털어놓고 싶은 상대도 찾기 힘든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각박한 현실 속에서 jtbc '쌍갑포차’는 오랜만에 만나게 된 ‘코믹 힐링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아파트 입주민의 지능적인 갑질을 못 견디고 억울하게 세상을 버리신 경비원 아저씨가 생각난다. ‘쎈이모 월주’라면 경비원 아저씨를 대신해 ‘개갑질 입주민’에게 제대로 응징하고 남았을 텐데... ‘쌍갑포차’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판타지라는 사실이 참으로 아쉽다.
 
나라도 대신 ‘개갑질 입주민’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에잇, 이 씨아앙 노무시키!!"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