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보기
아직은 단풍이 아름다운 도심의 거리. 사진=장상인

어느 덧 가을이 막바지에 와 있다. 이미 나뭇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이 있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아름다운 이파리들을 풍성하게 달고 있는 나무들도 있다. 사람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나무들보다는 곱게 물든 이파리들을 지니고 있는 나무들에게 눈길을 보낸다. 이 또한 세상의 이치(理致)일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카카오톡이 잠을 깨운다. 친지들이 보내온 메시지와 사진 때문이다.


“가을...그리운 사람끼리."


“가을내내 행복넘치고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어요.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한 하루되세요!"


주말을 맞아 모닝커피 한잔을 마시고서 집을 나섰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 우수수 낙엽이 떨어졌다. 마치 노란 나비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낙엽들을 쓸어담은 자루들도 가을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

 

2-2345y.jpg
낙엽을 쓰는 황천순 씨의 진지한 모습.

필자는 길을 걷다가 발길을 멈췄다.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가 열심히 낙엽을 쓸고 있어서다.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한 때 '겨울연가' 드라마(배용준, 최지우 주연)가 일본에서 히트를 칠 때, 은행나무 낙엽들을 모아서 남이섬으로 보낸다고 들었습니다. 이 낙엽들은 어떻게 처리 되나요?"


“저도 쓸모없는 낙엽으로만 알았는데, 요긴하게 쓰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2년여 정도 저장했다가 퇴비로 쓴다고 하더군요."


“그렇군요. 아무튼 좋은 일 하십니다. 길도, 공원도, 깨끗해서 좋습니다."


“아닙니다. 그대로 놔두지 먼지 나게 왜 그러냐?라고 핀잔을 주신 분들도 있어요. 낙엽을 그대로 두면 길도 지저분하지만, 하수구로 굴러 들어가면 문제가 생기잖아요?"


그렇다. 사람 사는 세상은 찬반(贊反)논쟁이 치열하다. 이는, 상대를 배려하는 것보다는 자기중심적 주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황천순(66)이라고 이름을 밝힌 그는 ‘목동의 쎈엔문 분수광장 등 공원의 미화를 담당하고 있다’면서 낙엽을 쓸어 자루에 담았다. 그의 진지한 모습은 마치 지나온 세월을 쓸어담는 듯했다..


‘비에 젖은 낙엽’이 되지 말아야


일본에서는 오래 전 ‘비(雨)에 젖은 낙엽’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도쿄대학의 한 여교수가 명명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말이다.


무슨 의미 일까?


비에 젖은 낙엽이 빗자루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듯이 ‘아내 옆에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처량한 남편의 신세’를 비유한 말이다.


‘업무가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과의 대화가 단절됐던 아버지들의 안타까운 사연이기도 하다. 일에 쫓겨 특별한 취미도, 노년에 대한 설계도 없이 퇴직을 맞은 사람들은 말 그대로 ‘비에 젖은 낙엽’ 신세가 되고 만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에 젖은 낙엽’의 신세가 되지 않도록 평소에 잘해야 한다.

 

3-3245tt.jpg
비가 내리는 가을의 거리: 사람도, 낙엽도. 비에 젖는다

 

낙엽(落葉)의 사전적 의미는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는 현상, 또는 떨어진 나뭇잎이다. 보다 한걸음 더 들어가면, 잎에 담긴 양분을 줄기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엽록소가 파괴돼 여러 가지 색상의 단풍이 만들어진다. 나아가, 잎자루나 잎 몸에 형성된 특수한 세포층이 잎을 분리시킨다. 이러한 과정에서 떨어지는 이파리, 즉 낙엽이 생겨난다(백과사전).


참으로 오묘한 자연의 섭리(攝理)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사와 흡사(恰似)하리라.


필자는 집에 돌아와 낙엽이 쌓인 창밖을 바라보면서 영국 시인 ‘존 키츠(John Keats, 1975-1821)’의 시(詩) ‘인생의 계절’을 펼쳐봤다.


<한 해가 네 계절로 나뉘어 있듯이

 인생에도 네 계절이 있다.

 건강한 사람의 봄은 그의 영혼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때이며,

 그의 여름은 밝고 빛나며,

 봄의 향기롭고 명랑한 생각을 시작하여

 열정을 꽃피우는 때이므로 그의 꿈이 하늘 끝까지

 높이 날아오르는 부푼 꿈을 꾼다.

 그의 영혼에 가을이 오면

 그는 꿈의 날개 접고,

 올바른 것들을 놓친 잘못과 태만을 바라보듯이

 방관하며 체념하는 상실(喪失)의 계절이다.

 겨울이 오면 창백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먼 길을 떠나가리라.>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이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상실(喪失)의 계절에 와 있는 것일까?


아니다. 창백하게 일그러진 겨울을 무사히 건너, 향기롭고 명랑한 봄을 맞으러 가고 있는 것이다. 뚜벅뚜벅.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