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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인과 점토판.

만물이 생동하는 새봄이다. 그동안 우리들을 괴롭히던 코로나19도 서서히 꼬리를 내리고 있다. 정권교체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 당선인도 탄생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마음은 무겁기 만하다. 아마도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이 뉴스의 중심권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유의 검찰지휘부 부재...부패공화국 될 것"


“검수완박 여야합의, 담합 아닌가?"


“민주세력의 반민주적 행태는 자기부정"


주요 언론들이 보도한 ‘검수완박’에 대한 기사나 사설의 제목이다. 코로나19로 멍들은 국민들에게는 혼란이 계속되는 형국이다.


“검수완박은 형식적·법리적으로도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기득권 1% 피의자의 보호를 위해 99% 피해자들의 민생수사를 놓쳐버리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으니까요."


필자와 전화로 통화한 어느 법조인의 말이다. 그는 “수사와 기소는 분리될 수 없으며, 한 집안의 부부와 마찬가지로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면서, “지금의 상황은 분명히 잘못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각기 생각이 다른 ‘검수완박’의 사태를 보면서 아득한 역사적 사실을 찾아봤다.

 

기원전 수메르(Sumer), 민회(民會)와 씨족장들의 장로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해


바빌로니아 남부에 위치하며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이 발상한 수메르(Sumer)가 있었다. 지금의 이라크 지방에 해당한다. 수메르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으로 형성된 지방으로 B.C 5000년경부터 농경민이 정주했고, B.C 3000년경에는 오리엔트 세계 최고의 문명을 창조했다. 시기에 따라 알 우바이드(Al-Ubyyid)·우루크(Uruk)·젬데트 나스르(Jemdet Nasr)의 3기(期)로 구분된다.


이 무렵의 정치는 촌락 공동체 시대의 평등한 원리가 있었다. 일반 시민의 성년 남자로 구성되는 민회(民會)와 씨족장들의 장로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쟁과 같은 도시의 사활에 직결되는 상황에서는 일시적으로 도시의 전권이 위임되는 왕이 선출되었다. 도시에서는 정치·경제·군사·생활 등이 모두 신전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신전공동체 또는 신전국가라고 할 정도였다.


우르 제3왕조시대의 <우르 남무 법전>이나 <슐기 법전>은 단편적이지만 오늘날까지 남아 있으며, 문학·신화·종교에 관한 책도 전해진다(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법과 정의는 실천의 바탕이 주요 개념’

 

<고대 수메르에서 법과 정의는 실천의 바탕이 되는 주요한 개념이었고, 사회적·경제적 삶 속에 속속들이 퍼져 있었다. 지난 세기에 고고학자들은 계약·증서·유언장·약속어음·영수증 그리고 판례 등 수메르 법에 대한 모든 종류의 기록들이 새겨져 있는 수천 점의 점토판들을 발견했다. 고대 수메르의 학교에서 상급생들은 많은 시간을 법 분야를 공부하는 데 쏟았고, 그들은 끊임없이 아주 전문화된 법칙 용어, 법전 그리고 판례들을 쓰는 연습을 했다. 그런 판례의 하나가 완전하게 복원된 것은 1950년이었다.>


미국의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Samuel Noah Kramer, 1897-1990)’ 박사의 저서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History Begins at Sumer>(박성식 譯)에 담긴 ‘수메르 법’ 이야기다.


수메르 점토판의 대가인 저자는 책에서 ‘그들은 인류 최초로 문자를 발명, 법과 역사와 문학을 기록함으로써 인류문명에 대한 최대의 공헌을 이룩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신왕권이 탄생하면서 새로운 사회건설이 과감하게 펼쳐졌다’고도 한다. 저자는 점토판에 새겨져 있는 내용을 근거로 했다. 새로운 왕이 펼치는 정책이다.


<이제 사회적·도덕적 개혁을 통해 내부의 안정을 꾀할 시간이 되었다. 사기꾼과 부패한 관리들, 시민의 황소·양·당나귀의 강탈자들을 내쫓았다...점토판의 관련 구절들이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가 공포한 법을 따르는 정의를 땅에 세우고, 그곳에 사는 시민들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함이었다.>


수메르인들의 ‘법의 정의’와 ‘시민 복리 증진’을 위한 탁월함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귀감이 된다.


최초의 판례...피해자의 인권도 중요해


다시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로 들어가 본다. 살인사건에 대한 인류 최초의 판례이다. ‘침묵한 아내의 사건’이라고 명명될 수 있는 기록이다.


<기원전 1850년경에 수메르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발사와 정원사, 직업이 알려지지 않는 사람 등 세 명이 ‘루-이난나라’라는 신전관리를 살해했다. 살인자들은 피해자의 아내인 ‘닌-다다’에게 그녀의 남편이 살해되었음을 알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그들의 범행을 숨기고 관헌에게 신고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도 고도로 문명화된 수메르에서는 법의 손길이 구석구석에 확실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그 범죄는 수도인 이신(Ishan)에 있던 ‘왕-니누르타’에게 알려졌고, 당시에 재판소 역할을 하던 ‘니푸르(Nuffar)의 시민회의’로 넘겨졌다.


“희생자의 아내가 범인들의 범행사실을 침묵했기 때문에 사후종범(事後從犯)으로 간주해 처벌해야 한다."


“그녀가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회의 중에 대두된 의견이다. 회의 결과는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로 결론 내려졌다. 이유는 ‘남편이 아내를 부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침묵한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점토판의 해석을 마치고서 당시 펜실베이니아대학 법대학장이던 ‘오웬 J. 로버츠’에게 자료를 보냈다. 오웬은 1930년에서1945년까지 미국대법원 판사였다. 그의 의견이다.


“우리의 법에 따르면, 그 아내는 사후종범으로 유죄판결을 받을 수 없다. 사후종범은 그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범인으로부터 금품이나 향응을 받거나, 범인을 구제, 위안 또는 도와야 한다."


역사는 항상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법과 제도가 어떠하더라도 운영하는 사람의 정직성과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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