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보기
『솟대에 앉은 새는 날고 싶다』(비비트리북스)라는 특이한 제목의 시집(詩集)과 만났다. 저자는 이상규(79) 시인.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인생 고수가 건네는 영혼 치유의 서사(敍事)’라는 부제(副題)도 눈길을 끌었다. 사진=비비트리북스

 

“예컨대, 안개와 온갖 계단의 발소리에서/ 유언 집행인이 희미하게 모습을 나타낸다/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일본의 ‘아유카와 노부오(鮎川信夫, 1920-1986)’의 시(詩)의 한 구절이다.
 
그래서 일까?
 
일본의 새해는 신(神)에게 비는 것부터 시작된다. 집 앞이나 가게에서 시메카자리(금줄장식)를 볼 수 있다. 재앙을 몰고 오는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로 새해 첫날부터 15일까지 매달아 놓는다. 이와 더불어 ‘가도마쓰(門松)’를 놓는다. 이것은 늘 푸른 소나무와 생명력이 강한 대나무로 만든다. ‘건강하게 장수하라’는 염원을 담기 위해서다. 
 
솟대는 바로 인간의 삶을 대변해
 
우리나라의 민속신앙 ‘솟대’도 마을의 액막이와 풍농·풍어 등을 기원하기 위해서 세운다. 솟대의 새 모양은 Y자형 나뭇가지로 만들거나, 기역(ㄱ)자형으로 만들기도 한다.
 
<솟대에 앉은 새는 날고 싶다>(비비트리북스)라는 특이한 제목의 시집(詩集)과 만났다. 저자는 이상규(79) 시인.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인생 고수가 건네는 영혼 치유의 서사(敍事)’라는 부제(副題)도 눈길을 끌었다. 시집의 제목을 왜 ‘솟대에 앉은 새는 날고 싶다’로 했을까?
 
“솟대가 바로 인간 아닙니까? 인간이 죽은 나무를 다시 세워서 새(鳥)를 만들어 놓는 것과 천하대장군·지하대장군을 만들어 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결국, 인간을 위해 평생을 바친 나무가 솟대 위의 새로 다시 태어나서 억압받고 있지요. 그래서 ‘그 새가 날고 싶을 것이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상규 시인의 말이다. 시집의 제목과 같은 ‘솟대에 앉은 새는 살고 싶다’의 시(詩)를 옮겨본다.
 
<비가 오나 눈보라가 치나
 뙤약볕에 온 몸이 다 타들어가도,
 한마디의 말도 없이
 하늘 끝에 홀로 앉아,
 누구의 죄로
 석고대죄하고 있는 걸까?
 
 인간을 위해
 평생을 몸 바친 저 나무,
 솟대 위에 새로 다시 태어나
 자유를 억압받으며,
 저 푸른 하늘 아래에서
 또다시 죽임을 당하고 있네.>
  
아무리 나무로 만든 새일지라도 저 푸른 하늘을 향해서 날고 싶을 것이다. 훨훨. ‘솟대’의 시도 절절하긴 마찬가지다.
 
<삭아 없어질 그날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찾아올 이 없는 외로운 곳에/ 초췌한 모습으로/ 하염없이 허공만 바라보고/ 깊은 한숨만 짓는 너.>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필자도 ‘솟대’의 한숨소리를 들어보리라.
 
2-3rgefdvsczx.jpg
<삭아 없어질 그날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찾아올 이 없는 외로운 곳에/ 초췌한 모습으로/ 하염없이 허공만 바라보고/ 깊은 한숨만 짓는 너.>

‘시간이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고 있다’

 
시인은 인생의 끝자락에 서 보니, ‘시간의 존재’라는 시에서 ‘시간이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가고 있다’고 했다.
 
<시간이란 살아 있는 자의 몫이며/ 죽은 자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가 멸망하고 우주가 사라진다 해도/ 영원한 건 공간과 시간뿐이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존재할 뿐이다.>
 
그는 “세월이 가는 것이 아니라 멈춰져 있습니다. 가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내가 가는 것이지요."라고 덧붙인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시간의 존재는 ‘가을’과 ‘낙엽’, ‘마지막 선물’에도 짙게 배어있다.
 
<모두가 떠났습니다/ 철새는 철새대로/ 나뭇잎은 나뭇잎대로/ 저의 갈 길을 떠났습니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코스모스도/ 초췌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낙엽이네, 이별/ 가슴 아픈 이별이네/ 무릎 꿇고 애원해도/ 모질게 돌아서는 마음/ 끝내는 눈물을 되삼키며/ 하염없이 거리를 떠 돌아야 하나/ 가냘픈 몸에 붉게 물든 마음/ 간간이 불어오는 실바람에도/ 파르르 파르르/ 서럽게 흐느끼네.>
 
<등 돌려 돌아서며 나는 눈물을 삼켰습니다.
 나는 눈물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홀로
 정처 없이 걸었습니다.
 모진 바람에 몰려
 찬 하늘 외롭게 떠돌던
 한 조각의 구름,
 내 가슴으로 파고 듭니다.
 나는 나의 길도
 꿈도 잃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슬퍼하지 않으렵니다.
 그래도 나는 슬퍼하지 않으렵니다.
 이것이
 나에게 베푼 당신의
 마지막 선물이니까요.>
 
4-qregsfdzc x.jpg
시인의 말이다. “솟대가 바로 인간 아닙니까? 인간이 죽은 나무를 다시 세워서 새(鳥)를 만들어 놓는 것과 천하대장군·지하대장군을 만들어 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결국, 인간을 위해 평생을 바친 나무가 솟대 위의 새로 다시 태어나서 억압받고 있지요. 그래서 ‘그 새가 날고 싶을 것이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3-erfsdvzcx.jpg
단풍이 물든 공원.

병 때문에 잘 먹지도, 편히 눕지도, 깊이 잠들지도 못하는 시인-나날이 몸무게가 줄어들고 있으면서도, 삶의 힘든 고비를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시를 쓰고 있단다.
 
신간 <솟대에 앉은 새는 날고 싶다>에 실린 시는 그가 10여 년 동안 4천여 편 넘게 쓴 작품들 중에서 뽑아낸 141편이 담겨 있다. 그러한 시가 때로는 노래가 되어 다시 태어난다.
 
<잎은/ 지는 잎은/ 붉게 타다 떠나지만.../빈 하늘 맴돌다/ 때 없이 짓밟히는 빈 가슴/ 어찌 가을만을 탓하랴.>
 
병과 친구처럼 지내며, 80세의 문턱에서 죽음마저 ‘삶의 한 조각’으로 받아들이려는 이상규 시인이 독자들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요? ‘당신도 늙어봐야 안다’입니다. 늙으면 할 일이 없어요. 늙으면 그냥 소외 받는 거예요. 옛날에, 고려장이라는 것이 있었죠? 현재도 나름대로의 고려장이 있어요. 고려장요? 그거 별거 아닙니다. 나이 먹으면...바로 고려장입니다.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어요. 하하하."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