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서린 봄의 산 저만큼 멀리 있건만/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꽃향기를 전하는구나”
“매미 허물같이 무상한 이 세상 같도다/ 사쿠라꽃(벚꽃)은 피었다 했더니/ 어느새 지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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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건만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떨고 있다. 답답해 여의도 샛강을 걸었다. 어느새 핀 여의도의 벚꽃. 사진=장상인

봄이 왔건만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떨고 있다. 답답해 여의도 샛강을 걸었다. 어느 순간 목련, 개나리꽃들이 피었고, 새싹들이 파릇파릇 돋아나 있었다. 양지바른 곳에는 벚꽃도 활짝 피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럴까? 강변을 걸으면서 필자가 자주 다녔던 벚꽃이 장관인 일본을 떠올려봤다.
 
“안개서린 봄의 산 저만큼 멀리 있건만/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꽃향기를 전하는구나."
“매미 허물같이 무상한 이 세상 같도다/ 사쿠라꽃(벚꽃)은 피었다 했더니/ 어느새 지고 말았으니."
 
일본의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에 들어있는 벚꽃에 대한 노래다. 벚꽃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너무나 빨리 지는 것이 흠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벚꽃을 ‘삶의 기쁨과 무상(無常)의 상징’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오오누키 에미코(大寬惠美子)’는 저서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에서 벚꽃이 피고 지는 것을 ‘권력과 연애의 성쇠(盛衰)’로 결론지었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본다.
 
“사쿠라(櫻)꽃은 대개 1-2주정도 피어있으나, 거센 바람과 비를 만나면 단지 몇 분 만에 떨어지고 만다. 이 짧은 시간에 전개되는 드라마가 은유(隱喩)로서의 사쿠라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강하게 호소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인생을 생각해 보면, 사쿠라처럼 권력에도 연애에도 성쇠(盛衰)가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여의도의 강둑을 화려하게 뒤덮던 벚꽃이 비바람을 만나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던 경우가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그렇다고 해서 어찌 비바람을 탓하랴."
“사쿠라꽃의 애상(哀想)은 지고(至高)의 권력·부(富)·사랑 같은 것으로 표현된 현란한 것들을 모두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그 덧없음을 통감하는 것이다."
  
오오누키(大寬) 박사의 말이 백번 옳다. 고위 공직자라면 거센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력(耐力)이 있어야 할 것이며, 스스로를 뒤돌아봤어야 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실제인가, 가짜인가? 종이로 만든 허구? 신(神)의 모습을 닮은 허상? 재로 만든 팬터마임? 무대에 등장한 실재하지 않는 존재? 적의를 품은 마술사가 빨대로 불어대는 비눗방울?"
 
이태리의 유명작가 ‘제수알도 부팔리노’의 소설 <그날 밤의 거짓말>속에 들어있는 한 구절(句節)을 다시 한 번 떠올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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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으나, 우리에게 기쁨이 없다. 사람들의 나이는 점점 늘어나는데...내년 봄의 벚꽃이 피기를 기다려야 할 것인가. 여의도 샛강에서 봄나들이 하는 어느 가족. 사진=장상인

봄이 왔으나, 우리에게 기쁨이 없다. 사람들의 나이는 점점 늘어나는데...내년 봄의 벚꽃이 피기를 기다려야 할 것인가.
 
어느 트롯가수가 노래했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간다고.
 
대한민국에는 언제쯤 봄이 오며, 언제쯤 익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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