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제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적 통치구조 하에서 선거는 국민주권을 실현하고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핵심 제도다. 그래서 선거를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 한다. 선관위는 이렇게 중요한 선거와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따라서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이 생명이다. 그런데 현 정권들어 선관위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먼저 여권은 지난해 1월 문재인 대선캠프 특보 출신인 조해주 씨를 상임위원에 임명 강행했다. 본인은 '행정착오' 운운하나 선거 직후 논공행상 때는 말이 없다가 선관위원으로 임명되자 왜 갑자기 착오를 주장하는가. 그의 주장이 설령 사실이더라도, 문 대통령이 ‘내 편’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굳이 임명을 강행했겠는가.
결국 지난 4·15총선에서 선관위는 여당의 ‘적폐청산’ ‘친일청산’ 구호는 허용하면서도 야당의 ‘민생파탄’ 구호는 불허하는 등 편파적 판정을 남발했다. 선거 후 소송과 관련해서도 선거의 불법성, 불공정성에 관한 중요한 증거를 복구불가능한 방법으로 인멸하려는 의혹에 휩싸이는 듯 끊임없이 편파성 시비를 일으키고 있다. 이것이 과연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선관위의 올바른 모습인가.
그리고 얼마 전 여권은 참여연대 출신의 조성대 교수를 선관위원에 추천했다. 그는 정부의 천안함 폭침 발표를 개그나 환경친화형 어뢰 등으로 비판했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박원순 전 시장이 당선되자 “만세, 만세, 만만세"라고 했다. 그리고 2년전 드루킹 사건 때는 '드루킹은 악의로 접근한 선거브로커'라고 주장했고,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당시에는 “×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며 적극 옹호했다. 이런 분이 과연 공정하고 중립적인 선거관리를 할 수 있겠는가.
현 정권의 선관위 장악의 화룡점정은 노정희 대법관의 선관위원장 임명이다. 노 대법관은 '법원내 하나회'로 불리는 좌파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5부 요인(要人) 중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에 이어 선관위원장까지 모두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채워지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려면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실질적인 권력분립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렇게 특정 서클 출신이 모든 사법권력을 장악해도 되는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듯이 이렇게 특정 사조직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면 사법독재로 흐르지 않겠는가.
또한 노 대법관은 이재명 경기지사 선거법 위반 무죄 판결,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악질 친일파’로 규정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문제가 없다는 판결 등에서 현 정권의 코드와 맞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런 분이 과연 선관위 수장으로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선관위를 이끌 수 있겠는가.
선관위는 지금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편파 시비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 노 대법관, 조성대 교수 까지 임명되면 거의 경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기울게 된다. 권력의 운동장이 이렇게 기울어지면 국민의 기본권은 침해당하고 민주주의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사법부와 헌재에 이어 선관위까지 정권의 하부 기관으로 전락하면 민주주의는 절대 꽃필 수 없다.
여권은 지금이라도 추천을 철회하고 새로운 공정한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 선수로 뛸 사람을 심판으로 임명해서는 안 된다. 선거법을 강행처리한데 이어 심판까지 일방 임명하면 선거는 헌법상 장식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야당도 결코 이 문제를 흐지부지 넘어가서는 안 된다. 송곳 같은 날카로운 검증과 현미경 같은 정밀한 검증으로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문제를 철저히 파헤쳐 어떻게든 임명을 막아야 한다. 국민들도 "모든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경구를 명심하여 호랑이처럼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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