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뉴욕이나 서울 같은 대도시에 열섬 효과(Heat island effect)가 나타난다. 도시 중심부 기온이 같은 위도의 주변 지역보다 현저히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열섬 효과라고 한다. 도시 인구 증가, 녹지 면적 감소, 대기오염, 건물이나 자동차에서 나오는 열로 인해 도심 지역 기온이 인근 지역 기온보다 높아지기 때문에 열섬 효과가 발생한다.
도시 열섬 효과가 극심한 여름에 건물 냉방장치가 완전 가동되면 습기를 잔뜩 머금은 뜨거운 공기가 건물을 에워싼다. 건물 냉방장치가 찬 공기를 만들어낼수록 그만큼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건물 외부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요컨대 건물 주변은 일종의 열섬이 된다. 이런 열섬 효과를 완화하는 방법 중 하나로 대형 건물 옥상 냉각탑에서 분출되는 차가운 공기에 함유된 엄청난 양의 수분을 포획하는 기술이 거론된다. 냉각탑 표면에 이슬처럼 응결된 증기에서 습기를 제거하면 건물 주변의 열섬 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이 기술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도 말라죽지 않는 풍뎅이로부터 영감을 얻어 개발되고 있다.
강수량이 적기로 유명한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브사막에 서식하는 풍뎅이는 건조한 사막 대기 속에 물기라고는 한 달에 서너 번 아침 산들바람에 실려오는 안개의 수분뿐인데도 끄떡없이 살아간다. 안개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물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미브사막풍뎅이의 몸길이는 2㎝다. 등짝에는 지름이 0.5㎜ 정도인 돌기들이 1㎜ 간격으로 촘촘히 늘어서 있다. 이들 돌기의 끄트머리는 물과 잘 달라붙는 친수성인 반면 돌기 아래 홈이나 다른 부분에는 왁스 비슷한 물질이 있어 물을 밀어내는 소수성을 띤다.
나미브사막풍뎅이는 밤이 되면 사막 모래언덕 꼭대기로 기어 올라간다. 언덕 꼭대기는 밤하늘로 열을 반사해 주변보다 다소 서늘하기 때문이다. 해가 뜨기 직전 바다에서 촉촉한 산들바람이 불어와 안개가 끼면 풍뎅이는 물구나무를 서서 그쪽으로 등을 세운다. 그러면 안개 속 수증기가 등에 있는 돌기 끝부분에만 달라붙는다. 돌기 끄트머리는 친수성이기 때문이다.
수분 입자가 하나둘 모여 입자 덩어리가 점점 커져 지름 0.5㎜ 정도 방울이 되면 결국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돌기 끄트머리에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이때 돌기 아래 바닥은 물을 밀어내는 소수성 표면이기 때문에 등짝에 모인 물방울은 풍뎅이 입으로 흘러 들어간다. 나미브사막풍뎅이는 이런 방식으로 수분을 섭취해 사막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나미브사막풍뎅이가 안개에서 물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1976년 알려졌다. 하지만 아무도 그 비밀을 밝혀내려고 나서지 않았다. 2001년 영국의 젊은 동물학자 앤드루 파커는 나미브사막에서 풍뎅이가 메뚜기를 잡아먹는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됐다.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사막이었기 때문에 열대의 강력한 바람에 의해 사막으로 휩쓸려간 메뚜기들은 모래에 닿는 순간 죽었다.
그러나 풍뎅이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파커는 풍뎅이 등짝 돌기에 주목하고, 거기에서 수분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1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11월 1일자에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2004년 6월 파커는 나미브사막풍뎅이의 물 생산 기술 특허를 획득했다.
벨기에 청색기술 전문가 군터 파울리가 2010년 6월 펴낸 `청색경제(The Blue Economy)`에는 풍뎅이 집수 기술을 응용해 열섬 효과와 물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사례가 다음과 같이 소개됐다.
"풍뎅이 기술을 이용해 대형 건물 냉각탑으로부터 나오는 수증기에서 물을 모으는 실험을 실시한 결과 물 손실의 10%를 복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열섬 효과를 감소시킴으로써 이웃 건물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시켜준다. 해마다 약 5만개의 새로운 냉각탑이 세워지고 있으며, 각 냉각시스템마다 매일 5억ℓ 이상 물이 손실된다. 따라서 10% 절수 효과란 대단한 것이다.“
하찮은 벌레가 서울이나 뉴욕을 살려낼지도 모를 일이다. 출처=매일경제 ‘이인식과학칼럼’ 2015년 7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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