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의 드농관을 향해 올라가는 계단에서 만나게 되는 <승리의 여신; 니케(Victorie de Samothrace)>는 루브르 박물관측의 드라마틱한 전시방법과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은유의 화학반응 덕에 보는 이 모두를 감탄하게 만든다.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를 보고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이 <승리의 여신; 니케>를 보면 열이면 열 모두가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기적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미국의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브랜드명이 이 작품에서 기인하였고, 그리스 로마 신화의 '승리'를 의인화한 조각이란 것만 알고 보아도 반갑고 감동적인 작품이지만 몇 가지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그 작품을 관람하는 방법과 관람 후 경험하게 되는 감정은 분명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다.
     
1863년 프랑스 영사 샹푸아소는 사모트라케 섬의 신전 한쪽의 감실에서 150여 개의 대리석 조각들을 발견하여 본국으로 보낸다. 루브르 복원실에 도착한 돌무더기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복원된다. 2000년 전에 제작되었을 거라고 믿기 어려운 뛰어난 대리석 조각 <승리의 여신; 니케>, 그러나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다. 첫 발견이 있고 3년 후 나머지 조각들을 찾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2차 발굴단을 파견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승리의 여신은 이렇게 가슴 아랫부분만 복원된 채 발굴 후 15년이 지난 1879년에 루브르에서 처음 전시된다.
  
 
1879년 가슴 아래부분만 복원된 상태로 전시된 <승리의 여신>

 
1873년과 1875년 오스트리아 발굴팀 덕분에 니케 여신이 뱃머리에 올라선 자세로 서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함께 발굴된 대리석 뱃머리를 조각상과 붙여보았더니 꼭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950년에는 손가락 두 개가 남아있는 오른손이 발견되었다. 
  
가슴 아랫부분만이 복원된 채 남은 조각들의 원래 형태를 어떻게 복원해야 할지 난제에 부딪힌 루브르는 고대 유물품부의 수장 펠릭스 라베송 몰리앵에게 이 난제의 해결을 맡긴다. 일부 복원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조각은 대부분 여신상의 왼쪽 날개 부분이었고 오른쪽 날개와 여신상의 얼굴 및 팔은 아예 없었다.
 
라베송몰리앵팀은 그리스 시대에 제작된 다수의 승리의 여신 소상(小像)과 같은 시대 만들어진 동전 등에 새겨진 도상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하여 승리의 여신상의 날개가 당시 대칭적으로 만들어졌음을 감안해 발굴된 왼쪽 날개를 활용해 석고로 본을 뜬 후 오른쪽 날개를 만들었다.   

 
 
그리스 시대 제작된 승리의 여신 소상과 소상의 세부. 자료=EBS

오른쪽 날개를 본떠 만든 왼쪽 날개(사진 왼쪽). 다행히도 오른쪽 날개는 끝 부분을 제외하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사진=EBS

 
소실된 왼쪽 가슴 부위는 발견된 오른쪽 가슴 부위의 조각들과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옷자락을 복원했다. 철저하게 동시대의 작품들과 도상을 참고하여 소실된 부위를 복원하지만 잘못하면 새로운 작품이 되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예술작품을 복원을 할 때는 항상 ‘베네치아 헌장(1964년 제정)’을 지키는 것을 철칙으로 삼는다고 한다.
 
베네치아 헌장의 주요 내용은 “문화유산 복원은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를 높이는 측면에서만 가능하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고증해 원래의 모습을 회복함으로써 그 가치를 높여야 하며 유물에 손상을 주지 않는 최소한의 처리과정만 거친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의 녹색 부분이 소실된 부분을 루부르 박물관 측에서 복원한 부분이다.   

     

사진=EBS

   

승리의 여신 니케(Nike)는 지혜의 신 팔라스와 명부(冥府)의 강(江) 스틱스 사이에서 태어난 여신으로 로마 신화에서는 빅토리아(Victoria)로 불린다. 경쟁을 뜻하는 젤로스, 권력을 뜻하는 크라토스, 폭력을 뜻하는 비아와 남매 지간이다. 니케는 제우스와 아테나의 종자(從者)로 날개가 있고, 종려나무 가지와 방패, 월계관을 가진 젊은 여신으로 표현된다.
  
특히 <승리의 여신; 니케> 상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의  정식명칭은 <사모트라케의 니케>다. <밀로의 비너스>가 밀로 섬에서 발굴되었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처럼 이 여신상 또한 사모트라케 섬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BC 200년경, 셀레우코스 제국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불리는 안토오코스 3세(BC 223~187)의 영토확장은 정복지에 대한 확실한 통치권을 굳히지 못한 채 임계점을 넘어버렸다. 수많은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던 안토오코스 3세는 지중해 해상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기 위한 전초기지로 에게해의 작은 섬 사모트라케를 점찍었다.
  
당시 지중해 반대쪽에서는 로마가 동진하는 중이었고, 셀레우코스 제국은 로마와의 일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에게해의 남동쪽에 있는 로도스가 로마의 비호를 입고 사모트라케 섬을 선점하기 위해 대리전쟁을 치른다. 당시 로도스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이자 최고의 건조 기술을 보유한 조선강국이었다. 승승장구하던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토오코스 3세는 참패하고 사모트라케에서 승리한 로도스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승리의 여신상을 사모트라케 섬에 세웠을 것이라 추측한다.
   
니케 여신상은 당시 최고급품인 파로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받침부의 뱃머리는 로도스의 대리석으로 밝혀졌다. 조각과 받침부가 다른 재료인 것이다. 로도스와 사모트라케는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로도스에서 무거운 석재를 배에 싣고 사모트라케스까지 운반해온 점이 이를 증명한다.
 
승리의 여신이 강력하고도 우아하게 강림하는 뱃머리, 그 앞에선 우리는 2000년을 훌쩍 뛰어넘어 당시 사모트라케섬에 불었던 지중해의 바람 한 자락과 신의 선물처럼 내리쬐던 햇살을 받고 있는 것 같은 전율을 느끼게 된다. 1902년 니케 상을 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보면 예술의 진정한 기적, 새로운 세계를 직감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찬사를 쏟아냈다.
  
루브르에서 13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승리의 환희와 감동을 주고 당당히 서있던 니케 상은 2013년 다시 한번 복원 작업을 거친다. 그간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복원하고 세월이 가며 쌓인 때를 청소한 것이다. 여신상이 서있던 뱃머리가 세밀하게 복원되었고, 여신상의 발치에 있던 사각형 발받침을 제거하고 실제 뱃머리에 서있는 듯 자연스럽게 놓였다.

 
사진출처: Gettyimage
2013년 최종 복원된 니케상(오른쪽). 뱃머리에 착지한 니케여신의 모습이 더욱 드라마틱해졌다.

  

루브르 박물관의 드농관을 향해 걷다가 만나게 되는 <사모트라케의 니케상>. 그녀를 마주하고 정면 약간 오른쪽 편에 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는 눈부신 햇살 속으로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뱃머리에 막 착지하는 순간의 여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옷은 부드러운 지중해의 바람을 맞아 온 몸을 감싸며 아름다운 몸의 곡선을 드러내며 사르륵 소리를 낸다. 바람소리에 실린 승리의 나팔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로도스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던 니케는 200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며 수많은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담고 이제는 우리 각자가 가진 승리의 목표를 향해 함께 전진하는 든든한 수호천사처럼 그곳에 우뚝 서서 어떤 어려운 삶의 전투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는 든든한 전우처럼 늘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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