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하늘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라고 물으면 “놀러 가고 싶다" “비행기 타고 싶다" “기분이 좋아진다" 등의 다수 의견과 “맥주 마시고 싶다(클...클라우드라서?)" “먹고 싶다(맥주 마시고 싶다는 이와 비슷한 정신세계)" “구름 위에 눕고 싶다(스트레스 쌓인 듯)" 등의 소수 의견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구름을 보면 몸이 근질근질해 자꾸만 밖으로 달려 나가 그림을 그렸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영국의 국민화가 존 컨스터블 (1776~1836)이다.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가업을 돕던 컨스터블은 1799년 스물넷이 되던 해 왕립미술아카데미 부설학교에 입학했다. 성실하고 진지하게 그림을 배우던 컨스터블은 스물일곱이 되던 해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첫 전시회를 열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의 그림은 자신이 살았던 영국의 남동부 서퍽 지역을 그린 풍경화였는데, 당시 유행하던 그림은 성서(聖書)와 신화를 이상화시켜 그린 장엄한 풍경화였기에 상대적으로 컨스터블의 그림이 너무나도 평범해 보였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일지라도 매 순간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에서 매력을 느낀 컨스터블은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자연이 갖고 있는 생생한 모습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특히 컨스터블은 하늘의 구름을 면밀하게 연구하며 많은 연작을 그렸는데, 그의 그림이 '풍경화의 교과서'로 불리는 데는 구름의 표현이 기여한 바가 매우 크다. 당시 컨스터블이 구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루크 하워드’의 구름 연구 때문이다.
          
약제사 출신의 루크 하워드는 기상학의 역사를 바꾼 과학자다. 그는 10살 때부터 하루에 두 번, 날씨를 관찰해 일기를 썼다. 그 일기는 평생 지속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글로 구름을 관찰하여 기록했지만 표현의 한계에 다다르자 관찰한 구름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루크 하워드의 구름 스케치, 1803
  
 
루크 하워드는 구름을 관찰하여 그림으로 일기를 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구름의 이름을 붙일 방법을 연구했다(사랑하는 대상에겐 뭔가 특별한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 건 분야 불문, 시대 불문이었나 보다).
  
매일매일 하늘을 관찰한 덕에 서른 살의 하워드는 일곱 가지 구름 분류방식을 만들 수 있었다. 하워드의 구름 분류법은 후세의 과학자들에 의해 보완되어 현재 세계 기상기구 WMO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중 다섯 가지는 하워드가 붙인 이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하워드에게 자극받은 컨스터블은 구름을 사랑하게 되었고, ‘구름 연구(Study of clouds)’라는 연작을 시작했다. 컨스터블이 그린 구름 그림은 100점이 넘는다.
  
   
‘Study of Clouds’, John Constable, 왼쪽과 중간 1821, 1821. 오른쪽 1822
     
The low lighthouse and beacon hill’ 1820(왼쪽). ‘yarmouth pier’ 1822
   
   
컨스터블보다 60~70년 뒤에나 태어난 인상파 화가들은 튜브 물감의 발명으로 야외에서 스케치 이외에 채색을 하는 것이 수월했지만 컨스터블이 살던 시절엔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컨스터블은 인상주의 이전에 야외 제작을 한 최초의 화가로 기록되어 있다.
  
존 컨스터블은 유채로 스케치를 하고 스케치의 뒷면에 날짜와 시간, 장소, 구름 모양, 색깔, 움직임, 대기의 상태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자신의 작업실로 돌아와 일련의 유채 스케치들을 토대로 작업했다. 그가 큰 회화를 그리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그린 스케치들은 현재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컨스터블이 야외에서 유채로 스케치를 한 것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이곳(brunch.co.kr/@insightraveler/14)을 참고하면 된다.
  
  
‘건초 수레’ John Constable, 1821, Medium oil on canvas, 130.2×185.4cm, London National Gallery
     
    
세밀한 묘사로 자신이 본 것을 가능한 충실하게 그려낸 컨스터블의 '건초 수레'는 1821년에 영국에서 전시됐지만 주목받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3년 후 프랑스의 화상 존 애로스미스가 이 그림을 구입해 파리에 열린 살롱에 출품했는데, 이때 금상을 받으며 비로소 컨스터블은 프랑스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비평가들은 그의 그림을 보고 진짜 풍경의 한 장면을 뚝 떼어내 전시장으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그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당시 프랑스는 루소의 영향으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컨스터블의 그림을 선구자적 방법론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상상에 근거한 풍경화를 경멸하며(당시 컨스터블의 경쟁자였던 윌리엄 터너의 그림을 의식한 듯) 직접 체험한 자연을 성실하게 그리는 것이 화가의 진정한 의무라고 생각한 컨스터블은 밀레로 대표되는 바르비종파와 이후 인상주의의 발전을 견인한 화가였다. 어느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구름을 연구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대기를 캔버스 위에 옮겨 놓으려 노력했던 컨스터블. 그의 그림을 보며 떠오르는 시 하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키워드 연관기사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