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태양빛으로 자외선에 노출되는 계절이다. 홈쇼핑 채널마다 다양한 자외선차단제 상품이 판매되고 있고, 백화점 매장에는 모자와 선글라스들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다. 이 모든 노력이 결국 햇빛에 노출되어 피부가 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무래도 햇볕을 많이 쬐면 색소 침착이 되어 기미, 주근깨가 승해진다. 자외선을 차단하려 많은 여성들은 햇볕 가리개와 눈만 드러낸 마스크, 팔을 감출 수 있는 여름용 팔토시 착용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만약 필자가 뜨거운 태양빛을 가리키며 ‘햇빛 차단의 필요성’과 ‘햇빛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건강한 몸’에 대해 설명한다면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자외선 지수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그 누구가 빠른 속도로 피부가 노화되길 원하겠는가?
필자가 약사로 근무한지 어느덧 20년. 항상 느끼지만 한국 사람들 중에는 나이에 맞지 않게 자주 시름시름 앓는 일명 ‘골골남녀’들이 많다고 느꼈다. 갱년기라면 말도 안 한다. 30대라면 충분히 뜨겁고 기운이 넘쳐날 나이인데, 약사를 붙잡고 두통에서부터 허리통증, 만성 피로 등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모든 증상의 원인으로 비타민D 결핍을 꼽는다면 억지라고 할지 모르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비타민D가 부족하면 만성 피로에 시달릴 수 있고, 당뇨, 자가면역질환 등이 생길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북유럽에 비해 일조량(지표면에 비치는 햇볕의 양)이 많은 나라인데도 비타민D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강한 햇살을 거부하며 자외선차단제를 듬뿍 바르고 얼굴과 팔을 가리고 다닌다면 심각하게 비타민D 결핍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의하면 혈중농도 30ng(나노그램/ml) 기준으로 한국인의 경우 여성의 약 83%, 남성의 약 86%가 비타민D 결핍으로 나타났다. 비타민D의 혈중 적정 농도는 40~70나노그램임을 감안할 때, 한국인의 비타민D 결핍 상태는 심각하다 할 수 있다. 사돈 남 말할 필요가 없이, 제법 균형 있게 챙겨먹는 필자도 검사를 받아보니 13ng/ml라는 참담한 결과가 나와서 비타민D 총량을 늘린 적이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출의 계절이 되었다. 피부과 의사들은 TV와 잡지 등을 통해 자외선차단지수(SPF`sun protection factor)를 거론하며 어떡하든 피부의 햇빛 노출을 피하기 위해 자외선차단제 등을 꼼꼼하게 발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연 그럴까? 피부과 의사들에게 묻고 싶다. ‘비타민D는 햇빛만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다. 그런데 햇빛 때문에 피부암에 걸리는 확률이 과연 몇%가 될까’라고. 의학이라는 고급지식을 습득한 학자적 양심을 바탕으로 말한다면, 절대로 햇볕의 위험성만을 강조해선 안된다고 본다. 사람이 살면서 햇볕을 쬐지 못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충분히 설명하는 것도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구루병’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가 학교 다니던 70~80년대만 하더라도 한 반에 한두 명씩은 구루병을 심하게 앓은 친구가 있었다. 못살던 시절에 생길 수 있는 가난의 병이라고 알고 있지만 엄연히 따지면 그렇지 않다.
구루병은 머리와 가슴, 팔다리 뼈가 변형이 되는, 간단하게 등뼈와 가슴뼈가 굽어 곱사등이 된 상태를 말한다. 우리 몸에서 비타민D가 부족하면 뼈에 칼슘이 붙기 어려워 뼈의 변형이 생기고 성장장애 등이 일어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비타민D가 부족해 생길 수 있는 질환이며, 비타민D는 햇볕만 충분히 쬐면 따로 섭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감안할 때 가난의 병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닌 것이다.
비타민D는 칼슘과 인의 대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호르몬으로, 비타민 D가 부족하면 칼슘과 인의 혈액 내 농도가 충분히 높아지지 못해서 뼈에 축적되지 못함으로써 골격이 약해지고 점차 부하되는 압력을 이기지 못해 뼈가 휘어질 수 있다.
비타민 D의 공급원으로 햇볕과 식품이 있다. 피부에서 콜레스테롤이 전환되어 생성되는 비타민 D(콜레칼시페롤)와 식품에서 섭취된 비타민 D2와 D3가 바로 그것이다.
햇볕만 열심히 쬐면 대부분의 비타민D는 합성이 된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외선을 피부에 쪼이면 콜레스테롤이 전환되어서 비타민D가 생성되어 소장에서 칼슘 흡수를 증가시켜 뼈를 튼튼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체내에서 비타민D가 만들어지면 간이나 신장에서 활성 비타민D로 변화한 뒤 혈액을 통해 몸 전체에 공급된다. 구루병이나 골다공증 등이 비타민D로 인해 예방되는 셈이다.
우리 몸 안에서 비타민D의 역할은 중요하다. 흉선에서 면역세포가 생산되도록 도와주고, 신장에서 칼슘과 인산염이 재흡수 되는 것을 돕는다. 혈액 내에 칼슘과 인산염의 농도가 적절히 유지되어야 뼈의 석회화에 기여한다. 그밖에도 각종 암 발병 억제, 백혈병 발병 억제, 류마티스질환과 자가면역질환, 당뇨병, 심혈관 질환의 예방 효과까지 있다.
그렇다면 비타민 D를 합성하는데 필요한 햇빛량은 어느 정도일까. 얼마 전 TV에서 비타민D 합성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했는데, 혈중 비타민D 농도가 부족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주일 동안 매일 30분 정도 자외선을 쪼여주었더니 비타민D가 모두 일정량 이상으로 증가되었다고 한다.
기왕이면 햇볕으로 더 효율적으로 비타민D를 충분히 공급받고 싶다면, 정오쯤을 선택하면 좋겠다. 단지 30분 정도 팔다리를 내놓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비타민D를 약 20,000IU(백인여성 기준)까지 생산할 수 있다니, 햇볕은 정말이지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한창 뼈가 자라야 하는 청소년의 경우, 매일 2,000IU 이상의 비타민D를 복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햇볓만으로도 충분하다면서 복용을 권하느냐고?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학교마다 체육시간을 줄이고 있는 불행한 현실에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청소년들의 정상적인 성장과 생리기능을 위해서이다.
최근 비타민D가 부족한 것으로 판명된 35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 80%에 해당하는 대상자가 구루병 진단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못살던 시대의 병이라고 여긴 구루병이 2014년에 발병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단히 넘겨선 안 된다.
비타민D는 음식으로 충당하기란 좀처럼 힘들다. 굳이 먹걸이에서 비타민D 보충 역할을 하는 식품을 찾는다면 달걀과 버섯, 생선류 등이긴 하나 음식만으로 하루 적당량의 비타민D를 섭취하기란 쉽지 않다. 차라리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30분 이상 운동장이나 공원 등을 걷는 것이 비타민D 보충 차원에서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한편, 임산부 역시도 비타민D가 부족해선 안 된다. 태아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기 때문. 연구결과를 보면 출산 전에 비타민D를 400IU를 매일 섭취했음에도 임산부의 73%가 심각한 비타민D 결핍상태가 되었으며, 출생한 아이들의 80%에서 심각할 정도의 비타민D 결핍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특히 엄마의 비타민D 결핍은 태아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옛날 어르신들이 “임신하면 집에만 있지 말고 나 다니라”고 했던 것이 정말이지 뼈가 되는 조언이었던 것이다. 임신으로 천근만근의 몸이 되었겠지만 하루에 한 번, 기왕이면 낮 시간을 이용해서 장을 보거나 쇼핑을 다니는 건 적극 권할 일이다. 물론 ‘자외선 차단제 너무 많이 바르지 말라’는 전제조건이 있겠지만.
요즘 어떠한 직업군이건 간에 실내활동이 실외활동보다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햇볕과 멀어진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으며, 균형 있는 식사조차 하기가 힘들다는 사람들이 부쩍 많다. 그럴 경우에 영양제로 비타민D를 섭취하는 것이 안 먹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영국 트리베디 박사팀이 65∼85세 2,686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한쪽 그룹에만 비타민 D를 4개월에 1회 10만I.U.(하루 800I.U. 분량)씩 5년간 투여한 결과, 투여하지 않은 그룹에 비해 골반, 손목, 척추 골절(骨折)이 생길 위험은 33%, 골절로 사망할 위험은 12% 각각 감소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불임병원에서도 비타민D 처방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정자상태가 부실한 남성에겐 특별하게 더 적극적으로 처방하는 추세이다. 아무래도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팀이 비타민D가 정자를 건강하고 활발하게 만든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뒤로 부쩍 더 늘어난 듯하다.
비타민D와 정자건강과의 관계. 뗄 수 없는 것 같다. 영국 셰필드 대학교와 맨체스터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정자는 약 3개월 전에 만들어지는데 그때에 햇빛 부족과 비타민D가 부족했다면 기형정자가 부쩍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생식력이 있는 건강한 남자가 되려면 그 무엇보다 햇빛 노출을 두려워해선 안 될 것 같다. 비타민D의 체내 합성이 촉진될수록 정자생산 능력이 더 증진된다고 하니 더 그렇다.
예로부터 “골방에서 서책만 뚫어지게 읽는 남자보단, 산에 나무하러 다니는 마당쇠의 정력이 훨씬 강하며 생식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빈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해답이 바로 햇볕에 있으며 비타민D가 핵심이었던 것. 정말이지 햇볕은 우리에게 ‘병 주고 약 주는’, 하지만 생명활동이 근원이자 힘의 원천임에는 틀림없는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끝>
▶ 최미영 약사는 1968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약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한국 임상 양병약학회 전문강사 및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하정헌 임상병리학연구회 전문강사 및 정회원. 메디팜 고성왕약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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