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제병원, 은강병원, 쌍갑포차. 수목요일 밤 여러분은 어느 병원을 찾으시나요?
 
요즘 각 방송사 수목 드라마의 명의들 덕분에 시청자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율제병원, ‘kbs2 영혼수선공’의 은강병원, ‘jtbc 쌍갑포차’ 노상 수면치료센터(?)의 명의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슬의생의 율제병원은 최종회 한 회만을 남겨두고 있는 폐업예정 병원이니 오늘은 열외로 해두자.
  
kbs2 '영혼수선공'은 첫방송이 나간 후 참 신선한 의학드라마라는 평을 받았다. 그동안 많은 의학드라마가 방송됐지만 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을 중심으로 마음이 병든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다룬 의학 드라마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신과 환자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함께 행동하며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치료해주는 괴짜의사 이시준(신하균 분)이라는 캐릭터는 시청자들에게 드라마 ‘영혼수선공’을 신선한 첫인상으로 각인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또한 자신이 경찰이라고 믿는 과대망장애 환자나, 분노조절장애와 경계성성격장애 뮤지컬배우 한우주(정소민 분) 등 정신의학과 환자들도 역시 괴짜의사 이시준 만큼이나 신선함을 준다.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드라마 속 정신과 환자들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포악해져서 독한 약물 주사를 맞고 몽롱해진 눈으로 침대에 누워 폐쇄병동에 갇혀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었지만 ‘영혼수선공’의 환자들은 일상생활이 가능한, 우리 주변에서 늘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혹시 나도 어쩌면 마음이 아픈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점이 바로 이 드라마에 빠져들게 하는 큰 장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이런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1,2회를 넘어서면서 시청자들의 흡인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은강병원에서 대한민국 최초 정신의학전문센터 완공을 앞두고 그 센터장 자리를 차지하려는 병원 내 의사들의 조직적 암투로 극적 갈등을 끌어내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갈등구조는 이미 그동안 다른 의학드라마에서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이는 1,2회에 구축해 놓았던 ‘신선한 의학드라마의 수준’을 스스로 하향평준화 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며 시청률은 매회 하락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드라마 ‘영혼수선공’에서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것은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강박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을 심도 있고 실감나게 다루어주는 것이지 욕망에 가득 찬 의사들 간의 조직적 암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제작진은 이제라도 빨리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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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보는 내내 오쿠다 히데오의 장편소설 '공중그네' 속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라부 이치로가 떠오른다. 이시준의 캐릭터가 이라부 이치로와 많이 닮아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이라부는 소설 속에서 만큼은 어떤 구속도 제약도 받지 않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이 예상 불가 창의력만점의 기상천외한 치료법으로 환자를 기함하게 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환자를 위해서라면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게다가 들키지도 않는다. 자신의 후배이자 동료의사이기도 한 다쓰로는 신경강박증을 앓고 있다. 자신의 스승이자 의료계 거물급 의사 노무라의 사위가 되어 처가살이를 하며 생긴 병이다. 권위적인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고 아무 책임도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던 18세의 자유로운 때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라부는 이런 다쓰로를 위해 기행을 일삼는다, 한밤중에 페인트통과 붓을 들고 함께 시내 한복판 표지판의 글자 王자에 점하나를 찍어 玉자로 바꿔 곤로우신사앞(金王神社前)을 긴타마신사앞(金玉神社前-긴타마는 속어로 불알을 뜻함)으로 바꾸는 유치한 범죄를 저지른다.
 
어디 그뿐인가. 이라부는 다쓰로를 대신해 기어이 학교정원에서 오수를 즐기고 있는 노교수 노무라의 가발을 벗기는데 성공한다. 이 모두가 다쓰로가 하고 싶었던 일들이다. 이렇게 다쓰로의 강박증은 치유된다. 독자들은 이런 이라부를 보며 황당해하기도 하지만 묘한 통쾌함 느끼며 괴짜의사 이라부의 위트에 자기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야말로 진정한 ‘카타르시스’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소설과 드라마는 특성이 다른 장르이지만 그럴 듯한 리얼리티를 가장한 판타지라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드라마 '영혼수선공'이라는 제목은 얼마나 추상적이고 판타지에 가까운가?
 
현대를 살아가는 당신도 나도 언제든 마음이 아플 수 있고, 그 아픔을 치유하고 힐링을 주는 것이 이 드라마의 콘셉트라면 괴짜의사 이시준이 좀 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괴짜의사여도 좋겠다 싶다. 이런 점에서 주인공 이시준을 병원장의 눈치나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되고 병원내의 권력암투에 에피소드를 할애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병원 의사로 설정했다면 좀 더 개성만점의 새로운 의학 드리마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대를 살아가며 마음의 병 하나쯤 앓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거나 자신이 아닐 거라고 부정하며 그 충격으로 ‘거울 속에 보이는 아름다운 내 모습 나 조차 눈을 뜰 수 없어~’ 뭐 이런 현실회피 ‘비스무리한’ 노랠 흥얼거리고 있다면 은강병원 이시준 선생은 어떤 처방을 내려 주실런지...
 
아, 아무래도 다음 주엔 ‘쌍갑포차’ 월주를 찾아가 쌍갑주 한잔 나누며 나의 ‘그승’부터 살피는 것이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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