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보기
20년이 지난 지금도 독특한 스타일의 영상 이미지로 각인된 왕가위 감독의 멜로영화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쓴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영화 <화양연화>를 넘어서는 ‘멜로’든 ‘영상미’든 또는 그 ‘무엇’이든 기대이상의 것을 보여 주리라 믿는다. 사진=tvN

화양연화! 왕가위 감독의 그 화양연화?

 
20년이 지난 지금도 독특한 스타일의 영상 이미지로 각인된 왕가위 감독의 멜로영화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쓴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개봉 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감독의 명작 ‘화양연화’는 거의 고유명사처럼 굳어져 회자될 만큼 유명한 작품이라 웬만한 실력으로는 그 명성을 넘어서기 힘들 텐데 말이다. 원작의 리메이크 작품도 아니고, 그렇다면 영화 <화양연화>를 뛰어넘는 영상미로 승부를 보려나? 그도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정통 멜로 드라마?
 
“언제였는지 아시나요?"(윤지수)
“언제까지인지는 알 수 있어."(한재현)
 
1993년 신촌 연희대 앞 화염병과 최루탄의 잔해가 채 식지 않은 시위현장, 시위대가 사라진 그 곳에서 환상인 듯 현실인 듯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윤지수를 향해 가는 20대의 풋풋한 한재현은 40대의 중년으로 바뀐다. 쓸쓸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알 듯 모를 듯 한 대화로 드라마 <화양연화>는 시작된다.
 
맹렬운동권 법학과 92학번 한재현과 부르주아 피아노과 93학번 윤지수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연인으로 보냈지만 드라마 전개상 아직까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헤어지게 됐고 20여년 후엔 완전히 뒤바뀐 입장이 되어 조우한다. 형성그룹 회장의 사위와 형성그룹 산하 마트의 계약해지 노동자 신세가 되어.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아들의 아빠와 엄마가 되어. 재벌 아내의 머슴 남편과 돌싱 싱글맘이 되어서 말이다.
 
“기적처럼 재회라는 걸 하게 되는데 그게 영정 사진일까 봐 겁이나.아무리 찾아 헤매도 없으니까."(한재현)
“계절이 딱 한번이면 좋은데 네 번이나 되니까,그 네 번이 하나하나 다 예쁘고 설레니까 계절이 늘 그 사람 손을 잡고 와."(윤지수)
 
재현은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대학 동기의 장례식장에서조차도 지수에 대한 그리움뿐이었으며 지수 역시 치매 걸린 아버지 앞에서만 겨우 속마음을 털어 놓으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재현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재현도 윤지수도 그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 시절’을 추억한다.
 

2-23regfdvc.jpg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 만난 첫사랑. 둘이 함께 했던 많은 것들... 영화 러브레터, 이성복의 시, 최윤의 소설, 통기타와 동아리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90년대 속 음악과 영화와 책들...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추억 속의 기억들은 울고 있어도 아름답다. 당시에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이별마저도 ‘추억’이라는 몹쓸 여과장치를 거쳐 나오면 대개는 아름답게 포장되거나 자가편집 되기 때문이리라.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드라마<화양연화>의 콘셉트가 ‘첫사랑 감성 추억 몰이’, 배우 유지태에 기댄 영화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가 전부라면 드라마 시작과 함께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순간이다.
  
TV앞, 적지 않은 시청자들 역시 잊고 있던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거나, 가장 아름다웠을 지도 모를 젊은 시절’의 나와 나의 첫사랑을 소환해 내며 아련히 미소 짓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예고도 없고, 복선도 없고, 속수무책으로’ 자신들의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으니 말이다.
 
영화 <화양연화>의 차우(양조위 분)와 수리첸(장만옥 분)은 불륜관계에 있는 서로의 배우자 덕(?)에 만나 사랑에 빠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그들과 자신들의 사랑은 다르다며 이별을 선택한다. 지금도 차우의 쓸쓸한 표정과, 거의 매 씬마다 바뀌던 수리첸의 화려한 치파오의 선과 색이 대조되며 아직도 강렬한 이미지로 떠오른다.
 
1,2회로 봐서 이 드라마는 영화 <화양연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그렇다고 왕가위 감독을 넘어서는 독특한 영상미나 스토리텔링에 승부수를 두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화양연화>라는 제목에 거는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드라마<화양연화>는 어느 정도 예상되는 신파에 새로울 것 없는 스토리라인의 멜로드라마일 뿐이다. 1995년 개봉된 영화 <러브레터>를 1993년도에 가져다놓는 허술함도 거슬린다.
 
주말 밤, 잠시 나를 ‘나의 가장 아름다운 한 시절’로 데려가 준다면 기꺼이 TV 켜고 한 시간쯤 추억에 잠겨도 좋겠다 싶지만 드라마 <화양연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그것이 전부라면 조금은 실망스러운 건 사실이다.
 
왕가위라는 대가(大家)의 작품 제목을 동명(同名) 제목으로 삼은 것이 신인작가의 무모한 자신감이거나 만용으로 끝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영화 <화양연화>를 넘어서는 ‘멜로’든 ‘영상미’든 또는 그 ‘무엇’이든 기대이상의 것을 보여 주리라 믿는다.
 
어느새 4월도 가고 코로나도 가고...
어쩌면 나의 화양연화일지도 모를 하루가 나만 두고 가고 있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먼저 오늘을 나의 화양연화로 정해야겠다.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젊은 한 때’임은 분명하니까!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