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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메카인 소호 거리는 유럽풍의 클래식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사진=김용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 1492년의 일이다. 이후 영국의 식민지를 거쳐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을 한다. 영국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13개 주가 모여 연방제 아메리카합중국을 세운다. 초대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 지금은  51개 주에 현재 대통령은 제45대 도널드 트럼프이다.

 
미국은 불과 250년도 되지 않는 짧은 건국의 역사 속에 세계 제1의 강국이 됐다. 미국은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면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넓은 면적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인구는 약 3억 1천만 명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미국은 백인 흑인 아시아계 등 다양한 민족이 이주하여 정착한 다민족 국가이다.  아직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아메리칸드림을  찾아 이 땅을 밟고 있다. 
 
다민족 국가지만  이처럼 거대한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나는 이번 미국 여행을 하면서 이 거대한 나라를 움직이는  에너지를 느끼고 싶었다. 그 출발은 뉴욕이었다.  뉴욕은 미국의 경제, 문화의 중심 도시답게 화려하고 웅장했다. 아메리칸드림을  좆아 이민자들의 발걸음이 처음 닿아던 곳도 이곳 뉴욕이다. 오늘은  맨해튼을 중심으로 자유의 여신상과 월스트리트 그리고 911테러의 현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딸아이와 함께 뉴저지에서 뉴욕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뉴욕타임스 건물 앞에서 예약한 2층 관광버스를 기다렸다. 이른 아침이지만 관광객들이 긴 줄을 만들고 있었다. 재미난 현상은 미국에서 은퇴한 남자 노인들의 복장은 대부분 한결같다. 티셔츠에 반바지 그리고 운동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로 멋을 낸다. 대부분은 부인의 손을 꼭 잡고 거닌다. 마냥 행복하고 다정스러운 모습이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데 우리 앞에 서 있던 웬 남성이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횡설수설하는 폼으로 보아 아침부터 만취 상태였다. 휴양  도시 플로리다에서 관광을 왔다는 이 남성은 해변에서나 입을 야자수가 그려져 있는 셔츠에 역시 반바지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날은 날씨가 10도 아래여서 쌀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백팩을 메고 있는 아내도 남편을 따라 연신 싱글벙글이다. 어떤 좋은 일이 있는 것일까.
 
관광버스는 만석이었다. 미처 타지 못한 사람들은 30분 정도 기다려 다음 차를 타야 한다. 우리는 브로드웨이와 타임스퀘어를 거쳐  월스트리트와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유람선 선착장까지 가기로 했다. 2층 오픈 버스는 모자와 선글라스가 필수였다. 햇살이 유난히 강했다.  버스는 정체가 심한 브로드웨이와 타임 스퀘어를  빠져나오는 데 서다가다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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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스타들 공연과 복싱, 농구 경기로 유명한 메디슨 스퀘어 가든.

 

2층 버스에서 내려다보는 맨해튼의  거리는 볼거리로 넘쳤다. 뉴욕의 상징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지나 한국인들이 아메리칸드림을 찾아 정착했던  한인타운도 보였다.  한국의 유명 인사들을  많이 배출했다는 뉴욕대의 캠퍼스도 지나갔다.  뉴욕대는 재학생이 5만여 명이나 되는 세계적인 대학이다. 하지만 맨해튼에서 보이는 캠퍼스는 학원급 규모여서 놀랐다. 뉴욕대는 캠퍼스가 여러 지역에 분산돼 있다고 한다. 거리에 드문드문 보이는 캠퍼스는 단과 대학이나 연구소들이라고 한다.
 
화제의 스타 공연과 복싱 농구 경기로 유명한  매디슨 스퀘어 가든도 지나갔다. 지하철역과 연계되어 있어 오디오 설명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 같다. 메디슨 스퀘어 가든은 흑백 티브이 시설  무함마드 알리의 복싱 경기가 열렸던 장소로 유명했다. 지금은 프로농구팀 뉴욕 닉스의 홈구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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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 거리는 뉴요커 스타일을 이끄는 패션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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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 거리는 19세기 후반에 지은 건축물이 많아 역사 보존 지구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우리는 패션의 메카라는 소호 거리에서 내렸다. 이 거리는 맨해튼의  화려함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곳이다. 오히려 고전적인 유럽의 거리를 연상시킨다. 뉴욕시는  고건축물들이 많은 이곳을 역사 보존 지구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이 지역은 공장과 창고 지대였다. 하지만 192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이 거리는 황폐해진다. 이때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개성 있는 거리로 탈바꿈시킨다. 하지만 거리가 활력을 찾고 사람들이  모여들자  임대료가 오르고  젊은 예술가들은 이 거리를 떠나게 된다. 그 자리를 명품 프렌드 숍과 고급 레스토랑들이 들어선다.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아  빈 상점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거리에는 홈리스라는 종이 팻말을 내걸은 걸인들도 눈에 많이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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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페리 티켓을 파는 캐슬 클린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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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공원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자유의 여신상을 가기 위해  윌 스트리트 끝자락에 있는 배터리 공원을 찾아 나섰다. 이곳에서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페리 티켓을 판매한다. 1811년에 세워졌다는 캐슬 클린턴 요새에서 티켓을 구입하고 그 옆 건물로 가면 선착장이 나온다. 배터리 공원에는 눈길을 끄는 곳이 또 있다.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고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이다. 기념비 바닥에는 한국전에 참가한 나라들과 각 나라 참전 용사들의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 수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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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은 맨해튼과 마주하는 리버티 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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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은 독립기념일 100주년에 프랑스가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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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은 자유를 추구하는 미국의 이상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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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드림을 찾아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을 처음 맞이한 것도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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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섬에서 바라본 맨해튼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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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티 섬에서 맨해튼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는 관광객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이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상이다.  리버티 섬에서 맨해튼을 바라 보고 세워졌다. 자유의 여신상은 꿈과 희망을 가슴에 품고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을 맞아 주었던 자유의 상징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조각상이다. 오른손에는 자유의 상징인 횃불을 왼손에는 미국 독립기념일이 새겨진 책을 들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의 높이는 46미터, 총 무게는 225톤에 달한다. 동상의 건립 비용은 프랑스가 부담했지만, 별 모양의 받침대는 미국 국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1886년 10월 28일 동상의 제막식이 열렸다. 처음에는 동상의 이름이 '세계를 밝히는 자유'였다고 한다. 왕관에 달린 7개의 가시는 세계 7대양을  가리킨다고 한다. 자유의 여신상의 제작에는 프랑스의 에펠탑을 세웠던 귀스타브 에펠도 참여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원래는 구릿빛의 붉은 색상이었으나 운반하는 과정에서 바다 바람 등에 산화되어 밝은 녹색을 띠게 되었다고 한다.
 
자유의 여신상의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자유를 바라는 그대여, 가난에 지친 이여, 나에게로 오라. 고난에 처해 의지할 곳 없는 자들이여, 나에게 오라. 나는 황금의 문가에서 횃불을 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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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는 엘리스 섬에 있는 최초의 이민국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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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국이 있던 엘리스 섬에서 이민자들이 묵었던 숙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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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국 박물관에서 조상의 뿌리를 찾는 미국인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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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국 안에서 입국 심사를 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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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 심사를 했던 이민자들의 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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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1층에는 이민자들의 가방 등이 진열돼 있다.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진 리버티 섬 바로 앞에는 미국 이민사를 보여주는 엘리스 섬이 있다. 엘리스 섬은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해 온 이민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거쳐갔던 곳이다. 초기에는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가난과 자유를 찾아 이주해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미국은 이민자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엘리스 섬에 이민국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이민자들에 대한 입국 심사가 까다로워져 가난한 이민자와 유색 인종들이 이곳에 머물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엘리스 섬에는 그때의  출입국 관리소가  박물관으로 남아 당시의 상황을 보여 준다. 박물관 1층에는 당시 이민자들이 가져왔던 가방들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이민자들을  치료했던 의료 기구와 식기 등의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이민자들의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곳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미국인들의 방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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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공원에서 바라본 월스트리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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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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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증권거래소 앞은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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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있는 소녀상도 명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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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증권거래소와 월스트리트 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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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페더롤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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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트리니티 교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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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의 현장에 제1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재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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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세계무역센터 공사장에는 기중기에 조기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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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의 자리엔 폭포로 된 추모공원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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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공원 옆에 있는 오큘러스 쇼핑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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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 안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규모가 엄청났다.
 
자유의 여신상과 엘리스 섬을 둘러보고 월스트리트로 다시 향했다. 월스트리트는 월가로도 불린다. 식민지 시절에 이곳이 성벽으로 둘러싸여 월스트리트(Wall Street)라고 불렸다고 한다. 지금은 증권거래소가 있는 세계 금융 시장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진열대에 있는 음식을 볼에 담아 먹는 미국식 비빔밥을 먹었다. 바쁜 금융인들에게는 햄버거만큼이나 간단하고 편리한 식사 방법 같았다.
  
돌진하는 황소상 앞에는 여전히  엄청난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는 걸음을 옮겨  증권거래소와 조지 워싱턴의 취임식 장소로 유명한 페더 롤 홀 국립기념관을 찾았다. 부근에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트리니티 교회도 보인다. 1967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9.11테러가 일어났던 세계무역센터 건물에는 추모공원이 들어섰다.  테러로 붕괴된 두 개의 쌍둥이 건물이 서 있던 자리이다. 추모공원에는  두 개의 풀이 있고 각 풀에는 거대한 구멍과 폭포가 설치됐다. 풀 외곽에서 안쪽으로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유가족들과 미국인들이 흘린 눈물을 상징한다고 한다. 테두리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스테인리스에 새겨져 폭포를  들여다보고 있다. 희생자들의 유품 등이 전시된 메모리얼 뮤지엄도 세워졌다.
 
추모공원 뒤로는 108층 높이의  제1 세계무역센터(One World Trade Center, 1WTC)가 재건됐다. 통칭 프리덤 타워라고도 불린다. 투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2020년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현장에는 커다란 기중기에 성조기가 조기 게양되어 있다.
 
미국 여행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미국에는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에는 반드시 기념관이나 기념비를 세워 업적을 기리거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메모리얼 파크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역사에 대한 평가나 교훈을 잊지 않고 후손 대대로 그 의미를 알리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역사의 공정성은 국민의 몫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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