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 유적지를  돌아보고 이즈미르로 가는 길에 쉬린제 마을을 들러보기로 했다. 쉬린제 마을은 15세기 무렵 에페소에서 이주해온 그리스인들이  거주하는 인구 약 600여 명의 작은 공동체 마을이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이 과일을 재배하고 와인을 빚어 생활한다고 한다. 주민들이 사는 마을은  산비탈을 따라 흰색 벽에 붉은 기와 지붕을 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크기도 비슷하고 모양도 같다.
 
터키컬러로 장식된 창문이 넓고 길쭉길쭉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쉬린제 마을을 손수 운전해서 찾아가려면 가드레일 하나 없는 급커브의 산악도로를 3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스릴보다는 가슴을 졸여야 하는 험준한 길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시간이 멎은 것 같은 풍경에 걸음을 옮길 수가 없다. 세월의 풍파라고는 하지만 다 허물어진 담장에 기대어 생명을 이어가는 이름 모를 잡초도 아름답기만 하다.
 
바닥에는 수백 년을 지켜온 돌들이 흙길 위에 그대로 박혀 있다. 폭우가 쏟아져도 빗물이 고이지 않고 땅으로 스며들게  가운데로 약간 경사지게 해놓았다. 땅도 숨을 쉴 수 있도록 틈새가 넓고 굴곡도 많다. 
 

 

색 바랜 담장과 돌로 만든 바닥길이 조화롭다.  담장에 세워놓은 나무 사다리와 농기구, 화초를 심어 놓은 작은 화분이  어우러져 이젤 위에  올려놓은 한 폭의 유화를 보는 것만 같다. 이런 골목길이 수백 미터 미로처럼 뻗어있다.
  

 

억 겹의 세월이 힘들었을까? 돌담도 색이 바랬고 반쯤은 무너져 내렸다. 새로 지은 듯한 하얀 건물이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한마디 건네다. "아직은 버틸만하제"
 

 

이곳을 둘러보면 성한 곳이라고는 별로 없다. 담장은 무너지고 지붕도 내려앉았다. 색 바랜 벽을 가려 주는 건 무성한 잡초뿐이다. 변하면 변한 데로 무너지면 무너진 데로 보전해온 혜안이 빛난다.
 


한 폭의 유화를 보는 기분이다. 5월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이제는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빈 가옥 낮은 담장에 이름 모를 화초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마치 떠나버린 주인을 기다리듯 목을 길게 내놓고. 
 

 

그리스인들이 모여 산다는 이 마을 중간에  이슬람 모스크의 상징인 첨탑이 길게 솟아 있다. 주민의 말에 따르면 이곳 모스크는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라고 한다.

 

 

쉬린제 마을은 햇살이 강하고 일조량이 풍부해  이곳에서 재배하는 과일들이  달콤하기로 유명하다.
 
주민들이 직접 재배하는 과일만 해도 석류, 포도, 사과, 복숭아, 체리, 딸기 등으로 종류도 많다. 이곳에서는 전통 와인보다 달콤한 과일주가 대표적 특산물이다.
 
가격도 과실주 한 병에 1만 원 정도로 싼 편이다. 석류 과일주가 많이 팔린다고 한다. 직접 재배한 올리브로 만든 오일 제품도 품질이 뛰어나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마을에  들어서면  다양한 종류의 특산물을 살 수  있는 상점들이 많다. 이곳의 특산물인 과실주를 비롯해 가죽 제품이나 수공예품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쉬린제 마을에 가면 아르테미스 레스토랑을  꼭  찾아보라는 정보가 많다. 하지만 이곳은 워낙 유명해 적당히 게으름을 피울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마을을  빠져나와 제법 운치가 있어 보이는 카페를 찾았다. 호젓하게 주변 풍경에 빠져볼 수 있는 곳이었다.
 

 

오후 햇살이 부드러운 이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하지만 커피가 너무 진하고 잔도 화려했다. 전통 터키식 커피는 커피 콩을 볶고 잘게 간 후에 제즈베라는 주전자에 직접 끓여 낸다고 한다.

 

그 후 기호에 맞게 설탕 등을 넣어 마신다고 한다. 전통 커피잔은 사진처럼 화려하다. 하지만 터키인들은 커피보다 홍차를 즐겨 마신다. 터키의 소도시에서는 커피라고 주문하면 알아듣지 못한다.  '카베(Kahve)'라고 해야 한다.

 

터키를 여행하면서  이 나라의 관광 자원이  정말 풍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어 동서양의 문화적 배경과 유적들이 폭넓게  깔려 있다. 터키를 이슬람 국가라고는 하지만 거리의 사원을 빼고는 종교적인 색채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이 이슬람교를 신봉한다고 하지만  국교로 정한 바가 없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또한 터키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에는 에게해, 북쪽에는 흑해, 남쪽에는 지중해가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훈풍 때문인지 기후가 온화하고 하늘은 청명하다.
  

 

터키를 여행하면서 이 나라만큼 국기를 사랑하는 민족도 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탄불도 그렇고 이곳 이즈미르에서도 건물 외벽에는 크고 작은 국기가 내걸려 있다. 국기를 내걸라고 강요하거나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닐 텐데 너도 나도 국기를 건물 외벽에 걸어놓고 있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도 국기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 국기에 대한 논란이 시끄러운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니 기분이 착잡했다.
 

 

국기 다음으로 흥미로운 것은 터키의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 대한 존경심이다.

 
그는 터키 독립전쟁을  주도하고  이슬람의 종교적 폐습을 혁파했던 인물이다. 그는 1923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1300년 동안 이어져온 이슬람의 칼리프제를 폐지하고 터키공화국의 기본 정신인 세속주의를 법으로 제정하였다. 
 
그는 또 여성들의 복장을 해방시키고 남녀평등교육도 시행했다. 국가의 정체성을 뿌리째 개혁한 그는 터키에서 독립영웅이자 국부로서 추앙받고 있다. 터키 국회는 1934년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튀르크'경칭을 수여했다. 
 
그의 모습은 터키 지폐와 도시 곳곳에 국기와 함께 나부낀다.
 

 

아타튀르크의 대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이즈미르의 대표적 명소인 코낙 광장을 만나게 된다. 1748년에 완공된 코낙 모스크와 1901년에 세워진 시계탑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평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휴식시간을 보낸다.  광장 주변에는 주요 금융기관과  대형 쇼핑센터, 영화관 등이 즐비하다. 세계 명품 매장들도 많다. 이곳 주변에는 사설 환전소도  많은 데  환율이 괜찮은 편이다.
 


 

이즈미르 거리를 걷다 보면  이곳이 유럽의 한 패션타운인가 할 정도로 멋쟁이들이 많다. 이스탄불보다 더 세련된 도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즈미르가 역사적으로 터키의 세속주의를 대표하는 본거지로 유명하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즈미르는 그리스와 동로마 제국을 거쳐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제국을 거치는 동안 이교도의 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속적인 기질이 강한 도시로 성장했다.
 
그래서일까? 거리를 걷다 보면 자유분방함이 넘쳐난다.  여기저기서 휴대폰을 들고 모델놀이를 하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즈미르는 이스탄불 다음으로 큰  항구 도시이다.  유람선 선착장을  중심으로 길게 나있는 부둣가는 이른 아침부터 낚시꾼들로 북적인다. 
 
서서히 동이 트면 여기저기 문을 여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활기를 띤다. 부둣가에 위치한 노변 카페들은 메뉴판을 들고 나온 호객꾼들로 어수선하다. 이곳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는 고객들 대부분은 거리의 테이블을 선호했다.
 
담배를 마음껏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카페도 성업 중이었다.  금연 중인 나에게는 꽤나 곤혹스러운 일이지만 호젓한 실내에서 혼밥을 하기에는 왠지 어색했다. 저녁만은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 시푸드의 참맛을 즐기기로 했다.
 
낮에 먹었던 바닷가 노변 카페하고는 메뉴도 분위기도 달랐다. 종업원들도 친절했다.  생선 꼬치와 도미 스테이크를 시켰다. 도미는 무게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과분한 한 끼 식사였지만 그동안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이즈미르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아쉬웠다. 지중해의 동부 해역인 에게해의 출렁이는 바다와 멋진 도시 풍경을 감상하려면 며칠은 머물러도 좋을 듯싶었다. 활발했던 거리 풍경과 맛있는 음식도 이 도시의 매력이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이 도시를 에페소나 파묵칼레를 가기 위한 경유 코스로 선택하는 것 같다. 나도 같은 이유로 찾았지만 하루 정도 있다 보면 이 도시의 깊은 속살과 향내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즈미르 항구에도  어둠이 깊어지고 내일은 파묵칼레로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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