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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면서 칼럼니스트인 조창완씨.

“우리나라에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입문서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책을 냈습니다. 헤세는 제가 관심이 갔던 스토리텔러(Storyteller)였으니까요."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의 저자 조창완(52) 씨가 책을 쓰게 된 동기다.
 
가을을 넘어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지난 10일 여의도에서 저자를 만났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북(book)칼럼니스트로 유명하다. 맛깔스럽고 깊이가 있는 그의 서평(書評)은 독자들을 매료 시킨다. 그러한 그가 쓴 책에 관심이 가지 않은 수 없었다.

총9장으로 엮은 헤세의 소설들...주인공과 오버랩 되다

소년에서 중년으로 헤세와 함께한 성장의 이야기-신간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는 저자가 읽은 ‘수레바퀴 아래서’ · ‘크놀프’ · ‘데미안’ · ‘싯다르타’ · ‘황야의 이리’ ·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유리알 유희’ 등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단순한 감상(感想)이 아니라 자신이 소설 속으로 녹아 들어간 것이다. <데미안>에 대한 글을 예를 들어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Abraxas).>
 
저자 조창완은 청춘 시절 ‘압락사스(Abraxas)라는 말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공부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철학적 신비주의에서 나온 학설로서 자주 사기와 범죄로도 이어지는 주술과 게임의 하나라는 것을.
 
헤세의 <데미안>은 대표적인 성장 소설이다. 어린 싱클레어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던 데미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1877-1962)는 누구인가.
 
1877년 독일 뷔르템베르크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1890년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고 이듬해 마울브론(Maulbronn)의 신학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시인을 꿈꿨던 헤세는 신학교의 엄격한 규율의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탈주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나 일 년도 못 되어 퇴학당하고, 서점에서 점원을 하기도 했다. 그 후 병든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시계공장에서 삼 년간 일하면서 문학수업을 시작했다. 헤세는 1962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던 것이다(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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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의 표지

 

헤세와의 가상 인터뷰 壓卷


신간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는 마지막 부분에서 반전이 있었다. 헤르만 헤세와의 가상 인터뷰가 수록돼 있어서다. 저자 조창완은 질문을 하는 기자이고, 답변은 헤세가 했다. 긴 인터뷰 내용 중 몇 부분만 소개한다.
 
?조창완기자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작가님을 좋아했던 팬으로서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돼서 큰 영광입니다. 지난 2019년은 <데미안> 출간 100년의 해였고, 작가님이 돌아가신지 60년을 맞는 해였습니다. 먼저 한국 독자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한국의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제 소설을 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중국이나 일본 등 동양에 대한 호기심이 많습니다...제가 살아 있을 때 한국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작가님의 소설은 한국에 많은 번역본이 나와 있습니다. <데미안>은 20종이 넘고, <유리알 유희>는 10여 종이 넘습니다. 한 말씀 해 주시지요?
“제 기억 속에 한국은 전쟁을 치르는 등 근대사의 비극을 가장 깊게 경험한 나라입니다. 그런 한국 독자들이 제 소설을 좋아하는 것은 그만큼 사상에 대한 갈증과 치유에 대한 갈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인터뷰를 통해 한국 독자들이 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다시 <데미안>의 이야기로 되돌아갑니다. 소설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물론이고, 데미안이라는 인물이 악마를 뜻하는 데블(Devil)을 연상시킨다는 말까지, 작가님의 신관을 문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젊은 독자들에게 이 소설을 읽기 전에 해주실 당부의 말씀이 있을까요?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설에서 제시하는 선(善)과 악(惡)의 세계를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절대적인 선과 악이 없습니다. 또 악이 있기 때문에 선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회를 볼 때 절대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악함도 있지만 그보다 선한 의지가 잘 작동하면 사회는 바른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제가 이 소설을 쓴 것이 제1차 세계대전 시기였고, 발표는 전쟁이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으로 가는 망향을 반성하지 않고,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고집했습니다. 그런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서 나치당이 태어났고, 제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 같은 문제도 생겼습니다."
 
?요즘 세계에서 주목 받는 것이 4차 산업혁명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하늘에서 지켜본 바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기술로 초연결·초지능·초융합 시대라는 것인데, 말 그대로 플랫폼의 변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문제는 플랫폼의 철학이 무엇이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독일이 제국주의로 가려 해서 벌어진 세계 제1차 대전이나, 히틀러가 국민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을 교훈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을 움직이는 철학에 공존이나 배려, 관용 같은 동양의 정신들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세계문화의 안정적 흐름과 발전이 가능 할 것입니다."
 
저자 조창완은 왜 이 책을 썼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나가는 글’에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헤르만 헤세는 내가 방황하던 스무 살 때, 다시 성장하는 길을 가게 한 역할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헤세의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헤세를 읽으면서 더 고결한 삶, 더 진솔한 삶이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헤세를 읽으면서 더 고결하고, 더 진솔한 삶의 의미를 반추(反芻)해보면 좋을 듯싶다. 정신세계가 많이 흐트러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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