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맛이 강한 원두와 쓴맛이 강한 원두를 2~5종 섞어서 감칠맛 나는 커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브랜딩이 잘못되면 커피의 맛을 송두리째 망쳐버린다.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혼자서는 답이 없다. 주변 사람들과 잘 섞이어야 한다"

가을과 겨울을 넘나드는 날씨다. 도로변의 은행나무에서 이파리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짓궂은 바람 때문이었다. 낙엽들이 나비처럼 허공을 맴 돌더니 길바닥으로 곤두박질했다. 낙엽도 우리네 인생과 다르지 않았다. 나이든 아저씨가 열심히 낙엽을 쓸고 있었다. 필자가 말을 걸었다.
     
“아저씨! 혹시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맘대로 찍으세요."

      

필자는 ‘참으로 넉넉한 사람이다’는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걸었다. 순간, 따끈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났다. 가까운 곳에 있는 전문 커피숍으로 갔다. 휴일의 이른 아침이어서 손님이 없었다. QR코드는 필수.
  
“오늘은 뭘 드실래요?"   
“음...룽고(Lungo)로 주세요."
 
‘룽고’는 ‘길다’라는 이탈리아 말이다. 에스프레소를 더 길게 시간을 끌어서 추출한 커피다. 기름이 나오기 전까지 볶은 커피콩에서 보다 부드러운 맛을 즐길 수 있다. 기름이 나온 뒤에 볶은 커피콩으로 내린 커피는 쓴맛이 더 짙어진다.
 
‘스르륵 스르륵’
 
바리스타는 20g의 원두를 정성껏 분쇄했다. 그리고, 포터필터 안에 커피를 넣고 탬핑해서 머신에 장착했다. 35-40초 후에 35-40㎖의 ‘룽고’가 추출됐다. 커피 잔이 테이블 위에 놓여 지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으나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커피는 과일이다?

 
<우리가 갈고, 내리고, 마시는 로스팅한 원두는 과육에 감싸인 씨앗으로 시작된다. 커피 속의 나무는 종자나무로, 커피 체리라고 흔히 부르는 달콤하고 붉은 열매를 맺는다....가공되기 전의 커피콩은 마치 파이에 넣는 견과류와 비슷하게 생겼다.>
 
미국의 커피 전문 웹사이트의 창립자 ‘조던 마이켈먼(Jordan Michelman)’과 ‘재커리 칼슨(Zachary Carlsen)’이 공동 집필한 <커피에 대한 우리의 자세/ The New Rules of Cofee>의 글이다.
 
필자 역시 같은 생각이다. 실제로 커피 농장에서 직접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파푸아뉴기니 커피 농장 이야기      
    
필자는 수년 전, 파푸아뉴기니의 ‘하기’ 농장의 주인 ‘브르스’라는 사람과 마을 입구에서 만났었다. 커피 농장으로 가는 길은 잘 다져놓은 듯했지만, 차는 창자가 뒤틀릴 정도로 뒤뚱거렸다. 농장에 다다르자 그동안의 고통이 눈 녹듯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빨갛게 농익은 커피체리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 농장에서는 주로 남자 인부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이 농장주인 ‘브르스’는 자신의 농장과 커피 맛을 자랑했다.
 
“저희 농장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30ha(9만 평) 정도죠. 하지만, 아라비카 종 티피카(블루마운틴)의 풍부한 아로마와 과육, 고급스러운 신맛과 부드러운 단맛이 조화를 이룬 점이 특징입니다. 달콤한 꽃향기의 후미(後味)에 반한 사람이 저희 커피를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커피나무의 종류, 이파리 크기와 색깔, 줄기 형태, 커피 가공 작업 및 공정 등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커피나무는 아열대 식물입니다. 1753년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Linnaeus)는 이 식물을 다년생 상록 쌍떡잎이라고 분류했습니다."
     
그는 식물도감을 펼쳐서 읽는 듯이 술술 풀어나갔다. 필자는 열심히 수첩에 적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커피나무는 심은 지 3년 쯤 되면 하얀 꽃을 피우고, 꽃이 지면 열매가 빨갛게 익어 갑니다. 이 열매를 체리라고 합니다."
 
커피 전문 용어로 ‘브랜딩(Blending)’이 있다. 각기 다른 품종의 원두를 섞어서 볶아서 커피의 좋은 맛과 향을 추출하는 방법이다. 신맛이 강한 원두와 쓴맛이 강한 원두를 2~5종 섞어서 감칠맛 나는 커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브랜딩이 잘못되면 커피의 맛을 송두리째 망쳐버린다.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혼자서는 답이 없다. 주변 사람들과 잘 섞이어야 한다.
  
일본인들은 사이폰 방식 선호  
 
일본은 세계 3위의 커피 수입국이다. 일본에 커피가 전해진 것은 1690년경 네덜란드 사람에 의해서다. 나가사키(長崎)의 네덜란드 상관인 데지마(出島)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신 사람들은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에 출입이 허용된 공무원이나 유녀(遊女)들이었던 것이다.
 
“홍모선(紅毛船)에서 커피라는 것을 권한다. 콩을 검게 구워서 가루로 만들어 흰 설탕을 섞기도 하고, 타서 눌었지만 견디지 못하고..."
 
에도시대의 풍속소설 광가(狂歌)의 작자로 유명한 오타 난보(大田南畝,1749-1823)는 1804년 나가사키의 봉행소(奉行所)에 파견되었을 때, 커피를 마신 소감을 이렇게 썼다.
 
필자가 들렀던 도쿄의 어느 커피숍에서의 이야기다. 커피가 나오기 전에 젊은 종업원이 고급 커피 잔을 테이블 위에 엎어놓고 갔다. 아주 폼 나고, 비싸게 보이는 도자기 잔이었다. 주방에서 여성 바리스타가 그라인더(grinder)로 원두를 갈더니 사이폰(siphon) 방식으로 커피를 내렸다. 15분 쯤 후 남자 종업원이 사이폰을 통째로 들고 와서 놓고 갔던 커피 잔에 커피를 부었다.
 
사이폰은 1840년 경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네이피어(Robert Napier)가 개발한 진공 식 기구다. 이를 1924년 일본인 ‘고노 아키라(河野彬)가 ’사이폰‘을 상품화했다. 사이폰 방식은 커피의 향이 좋고 또 시각적인 효과가 있어서 산뜻하고 깨끗한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커피 인사이드/유대준). 일본은 아직도 이 방식을 고수하는 커피숍들이 많다. 커피를 마시는 방법도 나라마다 다르다. 이 또한 하나의 문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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