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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을 하기 위해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

박원순 시장의 극단적 선택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이나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 모두에게. 한국일보는 11일자 신문에서 “박 시장에 대한 애도와 경멸, 안타까움과 배신감이 뒤섞였다"면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숙제를 남겼다"고 보도했다.
 
“서울 시장의 실종과 극단적 선택에 대해서 일본 신문에도 크게 보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Me Too운동에 기인하는 문제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대통령 유력 후보 중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극단적 선택은 안 되지요."
 
일본의 지인들이 필자에게 보내온 문자 메시지다. 일본에서도 크게 놀랐던 모양이다.
필자와 故 박원순 시장과의 인연은 2000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시절이었다. 그 후 그는 해가 바뀔 때마다 연하장을 보내왔다. 서울 시장이 된 후에도 연하장은 계속 이어졌다. 연하장이 유일한 인연의 끈이었던 것이다.
 
서울 시청 앞 분향소를 가다
 
7월 11일 오후 필자는 서울 시청 앞 광장에 자리한 분향소를 찾았다. 광화문에서 광장 쪽으로 걸어가자 건너편 덕수궁 돌담길에 검정색과 하얀 색으로 된 현수막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故박원순 시장님의 안식을 기원합니다.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
 
광장 주변에는 경찰차량이 많았고, 경찰관들과 시민들이 뒤섞여 있는 분위기였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래도 고인을 조문하려는 행렬은 길었다. 잔디광장을 에워싸고도 모자라 무교동 골목길까지 점령했다. 아예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고, 연령층도 다양했다. 필자도 가까스로 조문 행렬에 끼었다. 마스크를 쓴 까닭에 체감 온도가 32도 쯤 되는 듯했다. 바람이 불었으나 습했다.
 
가로 9m, 세로 3m의 분향소는 9천 500송이의 꽃으로 장식돼 있었다. 꽃 속에는 정장 차림의 박 시장(사진)이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의 명복을 빌면서 묵념하는 동안 9일 공개된 그의 유서가 떠올랐다.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 달라. 모두 안녕.>
 
유서는 간단명료했다. 키워드는 ‘죄송’ ‘감사’ ‘미안’이었다. 밝은 사회 만들기에 노력했던 박 시장의 삶이 ‘죄송’ ‘감사’ ‘미안’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분향소를 벗어나서 고개를 들자 서울시청 본관 정면에 걸린 슬로건이 눈에 들어왔다.
 
“냇가의 돌들은 서로 거리를 두었음에도 이어져 징검다리가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날마다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면서도 징검다리가 되지 못할까. 서로 추구하는 목표가 그토록 다른 것일까. 돌아오는 동안 내내 점점 갈라지고 있는 우리 사회와 자살의 심각성 문제로 가슴이 먹먹했다.
 
극단적 선택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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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pho의 드로잉. 출처=야후재팬

자살의 역사는 기원전 벽화 등에도 그림과 설명이 남아있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Sappho, 기원전 630-570경)가 바다에 투신자살했다는 설(說)이 있다.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사형을 면치 못할 상황에 빠진 귀인(貴人)이 공중 앞에서 처형되는 수모를 면하고, 그 명예를 존중하도록 하는 의미에서 사사(賜死)로 자살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의 전국시대에 시행된 무사 계급의 할복처분(切腹?分)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전문가가 제시하는 최초 자살의 기록이다.
 
<인류 역사 이래 자살은 가장 오랜 전통을 유지해온 고질적 현상 가운데 하나였다...역사적 기록에 남겨진 최초의 자살은 기원전 11세기 경 중국의 은나라 마지막 주왕과 이스라엘 왕 ‘사울’의 자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울’ 이전에도 ‘삼손’이 스스로 목숨을 끈긴 했지만 실제도 있었던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이병욱 박사의 저서 <자살의 역사>에 쓰인 글이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였던 저자는 “자살은 결코 미화시키거나 권장할 일도 아니며, 죽음보다 소중한 것은 우리의 삶이다"고 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죽음을 선택해야할 동기와 배경이 있을지라도 소중한 목숨을 함부로 버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여행가며 전업 작가인 마르탱 모네스티에(Martin Monestier)는 저서 <자살에 관한 모든 것>(한명희 譯)에서 자살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을 제시했다.
 
“죽음은 모든 고통의 출구다."
 
“어느 날 그것이 오게 된다면, 사람들에게는 숭고한 지혜를 남겨두고 독(毒) 한 방울과 함께 죽음과 망각으로 가는 최후의 자유만 남는다. 그러면 빛 속에서 눈을 감고 영원한 밤을 향해 미소 지으면서 모든 것들이 비롯되고, 모든 것들이 삼켜지는 바로 그곳으로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이 자살을 하게 될 수도 있으나, 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개인은 자신에게 부과된 사회적 의무를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게 되었지만, 태어난 순간 사회를 상대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 편입되고 그 혜택을 입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사회에 반환해야 할 빚을 지게 된다. 그러므로 자살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를 벗어나려 하거나 피해가는 것이며, 해당 사회와 자신을 맺어준 계약을 깨는 것이다."
 
자살을 통해서 자신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라도,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상처를 안기는 슬픈 일이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경우가 더욱 그러하다. 사회와 맺은 계약을 깨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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