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避靜) 가실래요?"
 
어느 날 이웃집 아저씨 이종두(67)씨가 필자에게 말했다.
 
“피정이라니요?"
 
“피정은 가톨릭 신자들이 행하는 수련입니다. 일상적인 생활의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 묵상·성찰·기도 등 종교적 수련을 할 수 있는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했단가. 가톨릭 신자도 아닌 필자가 고개를 끄덕인 것이 화근(?)이었다.
 
약속한 대로 지난 21일 아침 일찍 이종두 씨의 차를 탔다. 목 5동 성당 신자 세명도 뒷자리에 앉았다. 탑승자는 모두 5명. 목적지는 부천에 있는 수녀원 ‘은혜의 집’이었다. 수녀원 안으로 들어가자 키 큰 나무들이 필자 일행을 반겼다. 하지만 약간은 을씨년스러웠다. 나무들이 푸른 이파리들을 잃어버린 채 쓸쓸하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군데군데 늘 푸른 소나무들이 푸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100여명이 모인 이해인 수녀의 강론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피정인데도 한 시간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커피 한 잔씩을 하면서 기다리는 여유(?)가 제법 오랜 동안 지속됐다. 강론 시작 전 강당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100명 쯤 돼 보였다.

   

      

이해인 수녀가 강론하는 모습

 

10시가 되자 이해인(74) 수녀가 박수를 받으면서 단상에 올랐다. 강론의 주제는 ‘일상의 길 위에서 기도의 시와 함께’였다. 필자는 시인이자 수녀이니 당연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강론의 시작은 그동안 있었던 자신의 일상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이어서 본인이 좋아하는 성서구절에 대해서 설명했다.
 
-실상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루카 10:42).
-주님께 노래하라. 새로운 노래(시 96:1).
-주께서 제 마음 넓혀주셨기에 당신의 길을 달려갑니다(시 119: 32).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이사야 12:3).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떤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에페 4: 29).
 
성서구절이 가톨릭 신자가 아닌 필자에게도 짙게 다가 왔다. 이어서 이해인 수녀가 소개하는 ‘함께 기억하고 싶은 명언’들도 좋았다.
 
·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 전나무가 더디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논어).
· 한 말은 사흘가고 들은 말은 삼년 간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를 사온다.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하지마라(한국 격언).
· 삶은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그 한 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 은 놀라운 선물이요, 아름다움이다(법정 스님).

참석자들은 정성껏 메모를 하면서 경청했다. 필자도 열심히 메모했다.
  
사자성어(四字成語)의 교훈
 
이해인 수녀는 “연말연시에는 사자성어를 소개하잖아요. 저도 여러분께 소개해드릴께요." 하면서 소개했다.
 
· 接人春風 臨己秋霜(다른 이를 대할 땐 봄바람처럼 친절하게 자신을 대할 땐 가을 서릿발처럼 엄격하게 하라.)
· 修己安人(자신을 갈고닦아서 다른 이를 편하게 하는 삶을 살라.)
· 松茂栢悅(소나무가 우거진 걸 잣나무가 기뻐하듯 질투심 없이 다른 이를 좋아하고 그가 잘되는 것을 기뻐하라.)
 
이어서 소개된 ‘생활 속의 영성’은 겸손·슬픈 사람에겐·감사 예찬·기쁨의 맛·지혜를 구하는 기도·부끄러운 고백이었다. 영성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삶의 가장 높고 본질적인 부분이다.
 
‘생활 속의 영성’에서 첫 번째로 소개된 시(詩)는 ‘겸손’이었다.
 
<자기도취의 부패를 막아주는
  겸손은 하얀 소금
  욕심을 버릴수록
  숨어서도 빛나는
  눈부신 소금이네.
  ‘그래 사랑하면 됐지 바보가 되면 어때’
  결 고운 소금으로
  아침마다 마음을 닦고
  또 하루의 길을 가네.
  짜디짠 기도를 바치네.>
 
이해인 수녀는 이 시를 쓰게된 배경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느님께 달라는 것보다는 ‘작은 것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과 겸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루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요."
 
순간, 이해인 수녀의 목소리에서 울음기가 묻어났다. 아마도, 암에 걸려서 병석에 누었던 생각이 났기 때문일 듯싶었다.

강론은 알려진 대로 성경 공부가 아닌 시(詩)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서로 공감을 하는 자리였다.
 
오후 시간에는 이해인 수녀의 시를 낭독하고 선물을 받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이 무대에 올라서 시를 낭독했으나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잘하든지 못하든지 일단은 큰 박수를 받았다.
 
이종두 씨가 낭독한 <선인장>이라는 시도 울림이 있었다. 시를 낭독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삶을 표출하는 듯 했다.
   
<사막에서도
 나를
 살게 하셨습니다.
 쓰디 쓴 목마름도
 필요한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내 푸른 살을
 고통의 가시들로
 축복하신 당신
 피 묻은 인고의 세월
 견딜힘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그 어느 날
 가장 긴 가시 끝에
 가장 화려한 꽃 한 송이
 피워물게 하셨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마지막 강론에서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못한다’는 말보다는 ‘저의 능력 밖의 일인 듯합니다’는 말을 하라고 했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부천 성당의 신자 송미자(63)씨는 “남에게 상처주지 말라. 겸손해야 한다"는 수녀님의 말씀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모두가 행복 만점이었던 것이다.
  

사인회의 모습
 
‘그 사랑 놓치지 마라’   
  
쉬는 시간에 이해인 수녀의 신간 <그 사랑 놓치지 마라>의 사인회가 있었다. 책은 이해인 수녀가 참석자들에게 선물하는 것이었다. 부산의 해변에서 주워온 조개껍질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선물했다.
 
 <바다가 모래 위에 엎질러놓은
  많은 말을 다 전할 순 없어도
  마음에 출렁이는 푸른 그리움을
  당신께 선물로 드릴게요.>
 
 ‘은혜의 집’을 나서자 어느새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이해인 수녀의 시 ‘감사예찬’이 큰 여운(餘韻)으로 남았다.
 
<감사만이 꽃길입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걸어가는/ 향기 나는 길입니다/ 감사만이 보석입니다/ 슬프고 힘들 때도/ 감사할 수 있으면/ 삶은 어느 순간 보석으로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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