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가슴에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 보이는 젖꼭지가 왜 달려 있을까.
  
지난 2월 영어권 작가들이 최고의 문학작품 1위로 뽑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는 영국 남자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이 잠깐 나온다. 최근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인터넷판은 톨스토이의 상상력이 꼭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기사를 실었다.
 
생물학자들은 4500종의 포유동물 중에 유즙(젖)을 분비하는 수컷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생리적인 구조가 암컷과 다르고 암컷만이 임신할 수 있기 때문에 수컷이 젖을 분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1994년 말레이시아에서 산 채로 붙잡힌 ‘데이악’(Dayak)이라는 큰 박쥐의 수컷 열 마리가 모두 젖으로 부풀어 오른 유선(젖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2년 프랑스통신(AFP)은 스리랑카에서 38세 홀아비가 어린 두 딸을 젖을 먹여 키웠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정녕 남자도 여자처럼 젖을 분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먼저 포유류 수컷이 생리적으로 유즙 분비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포유류 수컷은 모두 암컷처럼 유선을 갖고 있다. 영장류의 경우 사춘기 전까지 암컷과 수컷의 유선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지만, 사춘기를 지나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암수의 유선에 현저한 차이가 발생한다. 암컷이 임신을 하면 유방은 더욱 부풀어 오르고 유즙의 생산을 촉진하는 호르몬, 예컨대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프로락틴이 분비된다.
 
이러한 호르몬을 염소나 송아지에 주입하면 암컷뿐만 아니라 수컷들도 유방이 커지면서 젖을 생산하게 된다. 물론 수소가 암소보다 훨씬 적은 양의 우유를 내놓지만, 젖샘조직이 발달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경우는 이러한 호르몬을 투입해 임신하지 않은 여자는 물론이고 사내들조차 유방이 발달하고 젖이 분비된 사례가 적지 않다. 에스트로겐으로 치료중인 암 환자들에게 프로락틴을 주입했는데, 남녀 모두 젖을 분비한 것이다.
 
또한 젖꼭지를 단순히 기계적으로 자극해 유즙을 분비시킬 수 있다. 유두를 반복하여 자극하면 남녀 모두 프로락틴의 분비가 촉진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양모(養母)들이 입양아를 가슴에 안고 3~4주 지내면 약간의 젖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러한 방법으로 71세 노파가 젖을 분비했다는 기록이 있다. ‘구약성서’를 보면 룻의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룻이 낳은 아기를 받아 품에 안고 자기 자식으로 길렀다는 대목이 나온다.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겨 남자의 유방이 커지고 가끔 젖이 흘러나온 사례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뒤 풀려난 전쟁포로 중에서 수천 명이 그러한 현상을 나타냈는데, 일본군 포로수용소 한 곳의 생존자 가운데서 무려 500명이 젖을 찔끔찔끔 흘린 것으로 관찰되었다.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굶주림으로 호르몬을 생산하는 내분비 계통뿐만 아니라 호르몬을 파괴하는 간의 기능에 이상이 발생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사례들은 남자들이 생리적으로 얼마든지 젖을 분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지 남자들은 정상적인 조건에서 이러한 능력을 활용할 수 있게끔 진화되지 못했을 따름이다. 다시 말해서 남자들은 유즙 분비를 위한 하드웨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선택에 의해 그것을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가질 수 없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생물의 진화는 왜 수컷의 유즙 분비를 허용하지 않았을까.
 
이 수수께끼에 대해 흥미로운 해답을 제시한 사람은 미국 생리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그는 포유류의 90%가 암컷 혼자서 새끼를 돌보고 수컷은 교미 직후 다른 암컷으로 옮겨가므로 젖을 먹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 수컷에게 유즙 분비 기능이 진화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사는 남자들이 극한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젖을 분비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었다. 출처=조선일보 '이인식의 멋진 과학' 2007년 4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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