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중고생들이 함께하는 댄스·댄스·댄스가 서울에서 열린다?"
 
한·일의 갈등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양국의 학생들이 함께 모여서 춤과 음악으로 교류한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어 보였다.
 
필자는 광복절의 열기가 날씨만큼 뜨거운 지난 18일 동대문구 홍릉로에 있는 수림(秀林)문화재단을 찾았다. ‘문화예술 가치의 확산 및 보급’, ‘인문학발전과 부흥 촉진’, ‘사회계층 간의 문화 격차 해소’, ‘다문화 갈등의 해소와 소통’ 등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는 재단이다.
 
또한 이 재단은 한국의 전통 문화예술 발굴은 물론 우리의 문화예술이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떨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재단의 건물은 깨끗하고 단정했다. 강당 입구에 ‘2019 댄스·댄스·댄스’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알려진 대로 한국과 일본의 중고교 학생들이 혼성으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행사였다. 올해로 8회째를 맞고 있는 행사로 기획·주최는 한국의 수림문화재단과 일본의 공익재단법인국제문화포럼이 하고, 국제교류기금 서울일본문화센터·ANA(전일본항공)등이 후원하고 있었다.
 
6개 팀이 경연하는 순수 아마추어들의 잔치
 
오후 4시가 되자 한국과 일본의 사회자가 나란히 무대에 올라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지금부터 ‘2019 댄스·댄스·댄스’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150여명의 청중들은 힘차게 박수를 보냈다. 학생들은 며칠 전 처음 만나서 필담으로 상대방의 언어를 배우면서 음악은 물론 안무까지 모든 것을 기획해서 작품을 만들었다. 한국 20명, 일본 20명으로 진행돼 왔으나 올해는 38명이 참가했다. 발표 시간은 7분 이내로 정해져 있었다. 먼저 신경호 상임이사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인사말을 했다.
 
인사말을 하는 신경호 상임이사
“안녕하세요? 신경호입니다. 반갑습니다. 이 행사는 지난 2012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8회째입니다. 그동안 협조해주신 한국과 일본의 많은 단체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까지 이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이 280명이나 됩니다...이 행사를 앞두고 일본의 부모님들이 ‘이토록 양국관계가 어려운데 한국에 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참가하신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어른들처럼 정치·경제가 아니라 댄스와 음악으로 친구들과 문화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른이 되면 오늘의 이 행사 참가가 소중한 인적 재산이 됨은 물론 좋은 경험요소가 될 것입니다. 10년 후, 20년 후, 여기에서 쌓은 경험이 훌륭한 자산으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실력 발휘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 이 학생들의 순수한 교류는 먼 훗날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내빈 소개에 이어서 본격적인 행사의 팡파르가 울렸다.
 
첫 번째 등장하는 팀의 이름은 ‘Carpe diem’이었다. 팀 리더가 팀의 이름에 대해서 설명했다.
 
“저희 팀 명칭 ‘Carpe diem’은 ‘지금은 즐겨라’입니다. 여러분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Carpe diem’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현재를 잡아라’의 라틴어다. 전통과 규율에 맞서는 청소년들의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Carpe diem팀의 공연

첫 번째 팀부터 분위기를 압도했다. 여기저기서 폭소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 번째 팀의 ‘사흘(みつか)’은 ‘3일동안 열심히 연습했다’는 의미이고, 세 번 째 팀 ‘바나나’, 네 번째 ‘나나이스(ななイス)’는 7(なな)명, 다섯 번 째 팀은 말 그대로 ‘Cool Guys’, 여섯 번째 팀의 ‘DFRIEND’는 ‘Dance Friend’의 의미로서, 각자의 성격에 맞게 톡톡 튀는 이름들이었다.
 
바나나 팀의 공연

팀의 댄스 발표가 끝날 때마다 사회자가 리더에게 질문을 했다. 한국 학생에게는 일어로 질문해서 일어로 답변을 하게 했고, 일본 학생에게는 한국어로 질문하고 한국어로 답변토록 했다. 다소 어눌한 말들이 오히려 재미를 더했다.
 
“종이에 써 왔는데 읽겠습니다. 모두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행사가 끝나도 친구가 되자!"
“언어의 장벽요? 스마트 폰 번역기가 좋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저희는 7남매 팀입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대화 나누고 상대를 배려하면서 연습을 했습니다."
“저의 이름은 사쿠라입니다. 제가 아는 한국말을 하겠습니다. 간장 공장 공장장은 장 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다."
“저는 요, 아이돌 레드 벨벳(Red Velvet)을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웬디를 좋아합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나라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데도 불구하고 사이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깊어질수록(들수록) 더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몸짓과 음악으로 소통해
 
DFRIEND팀의 공연

이들에게는 언어의 장벽이 없었다. 몸짓과 음악 그 자체가 소통(疏通)이었기 때문이다. 집중적인 연습은 3일 동안 했고, 4박 5일 동안 동대문 시장 등을 같이 다니면서 떡볶이나 비빔밥,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친구가 됐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정치적으로 맞서고 있는 어른들이 배워야 할 듯싶었다.
 
우승팀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했다. 참석자들이 스티커로 투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필자도 정성스럽게 한 표를 던졌다.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마술과 노래 등 특별 이벤트가 있었다.
 
우승은 3번 째 발표한 ‘바바나’ 팀으로 돌아갔다. 7명으로 구성된 ‘바나나’ 팀원들은 하나같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우승한 바나나팀의 앙코르 공연
 
“저희는 7남매 팀입니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는데 우승을 해서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승 상품은 배낭이었다. ‘배낭을 메고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면서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다’는 의미란다.
 
공동주최자 국제문화포럼의 미즈쿠치 게이코(水口景子·61) 상무이사도 상기된 얼굴로 이번 프로그램의 의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38명이 동고동락하면서 고뇌를 통해 댄스를 만들어 냈습니다. 댄스 전문가도 아니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모습들이 참으로 좋아보였습니다. 스마트 폰 등 자신들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탁월했습니다."
 
이번에 한·일 학생들이 선보인 ‘2019 댄스·댄스·댄스’는 전문가에 의한 짜임새 있는 동작이 아니라 자신들이 창의적으로 만들어 낸 그들만의 율동이었다.
 
수림문화재단은 어떤 단체인가?
 
수림문화재단 현관에 있는 안내문

수림문화재단은 故 동교(東喬) 김희수(金熙秀, 1924-2012) 씨가 2009년에 설립한 재단이다. 김희수 씨는 20여 년간 학교법인 중앙대학교를 운영했던 인물이다. 재단은 ‘인간·미래·문화·창조의 기치를 내걸고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문화국가로 이끌어가겠다’는 큰 뜻으로 세워졌다.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확대는 곧 참다운 삶과 미래에 대한 이해의 폭을 심화시키는 기회를 만들어가는 초석이기 때문이다.
 
김희수 씨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13세 때 부친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고, 도쿄(東京)전기대학을 졸업했다. 일본에서 굴지의 사업가로 성공한 그는 1987년 사재를 털어 어려움에 처해 있던 중앙대학교를 인수했다. 그 후 22년간 대학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 2008년 중앙대를 두산그룹에 넘기고서도 공익사업에 전념했다.
 
그는 평소 ‘사람을 남기는 일에 헌신하다간 사람으로 기억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그의 바람대로 ‘그가 남긴 사람’들이 고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수림(秀林)의 의미도 평범하면서도 큰 의미가 담겨있다. 자신의 이름 김희수(金熙秀)와 평생을 묵묵히 뒷바라지해온 부인 이재림(李在林) 여사의 이름 끝 자를 합한 것이다.
 
“김희수가 빼어난(秀) 한 그루의 거목이었다면 그걸 울창한 숲(林)으로 가꾸어준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였다."
 
유승준의 <김희수 평전, 배워야 산다>에 쓰인 글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빼어난 숲’ 수림(秀林)문화재단은 이렇게 대한민국을 ‘빼어난 숲’으로 가꾸고 있는 것이다.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