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5년 세계 부자` 명단에 따르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계 최고 갑부로 밝혀졌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10위, 그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과 함께 공동 185위를 기록했다. 이건희 회장이 평소에 "빌 게이츠 같은 천재 한 명이 100만명을 먹여살린다"고 역설할 만도 했다.
어디 빌 게이츠뿐이랴.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같은 발명 영재들은 세계 기업 판도를 바꿔놓았다. 이런 성공 신화 때문에 기업의 성패가 창의력이 뛰어난 극소수 인재에 달려 있다고 여기는 경영인이 한둘이 아니다.
과연 항상 그럴까. 이런 맥락에서 세계 최고 창의적 기업으로 손꼽히는 미국 컴퓨터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의 성공 신화는 시사(示唆)하는 바가 적지 않다.
픽사 신화의 주인공은 1986년 스티브 잡스와 함께 픽사를 설립한 에드윈 캣멀이다. 그는 1995년 11월 미국에서 개봉한 세계 최초의 장편 3D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로 대박을 터뜨렸다. 2014년 4월 펴낸 `창의성 회사(Creativity, Inc.)`에서 캣멀은 30년 가까이 픽사를 경영하면서 창의성과 혁신의 대명사가 되게끔 기업을 성장시킨 비결을 털어놓았다.
그는 머리말에서 "어떤 분야에든 사람들이 창의성을 발휘해 탁월한 성과를 내도록 이끄는 훌륭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제하고 픽사에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구축한 과정을 소개한다. 그는 창의성에 대한 통념부터 바로잡았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번뜩이는 영감으로 비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헌신하고 고생한 끝에 비전을 발견하고 실현한다. 창의성은 100m 달리기보다는 마라톤에 가깝다."
캣멀이 픽사를 창의적 기업으로 만든 비결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내고 싶은 경영자는 통제를 완화하고, 리스크를 받아들이고, 동료 직원들을 신뢰하고, 창의성을 발휘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직원들의 공포를 유발하는 요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캣멀의 `창의성 회사`는 경영학 도서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혁신이나 리더십을 다룬 책은 많지만 `창의성 회사`처럼 혁신과 리더십의 관계를 탐구한 저서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2014년 6월 리더십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린다 힐 교수가 펴낸 `집단재능(Collective Genius)`에 의해 `창의성 회사`의 가치도 재평가됐다. 힐 교수는 혁신과 리더십의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집단재능`에서 힐은 "좋은 리더가 혁신에서도 효율적인 리더라고 여기기 쉽지만 이는 잘못일뿐더러 위험한 생각"이라고 전제하고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최고경영자를 인터뷰해서 그들의 리더십을 분석했다. 미국 독일 중동 인도 한국에서 영화 제작, 전자상거래, 자동차 제조업 등에 종사하는 기업 총수 12명의 리더십이 소개된 이 책에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출신인 성주그룹 김성주 회장(대한적십자사 총재)도 포함됐다.
힐은 `집단재능`에서 "기업의 혁신적 제품은 거의 모두 한두 명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노력한 결과임을 확인했다"고 강조하고 혁신을 `팀 스포츠`에 비유했다. 따라서 진정한 혁신 리더십은 "구성원의 재능을 한데 모아 `집단재능`으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힐은 이런 리더십으로 혁신 조직이 구축된 최고의 성공 사례로 픽사를 꼽았음은 물론이다. 창의성을 마라톤에 비유한 캣멀과 집단적 노력의 결과로 보는 힐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격월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마인드` 3·4월호 인터뷰에서도 힐은 "혁신의 성패는 집단재능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마음의 지도》, 매일경제 ‘이인식 과학칼럼’ 2015년 4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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