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했다고 주저앉아버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실패하더라도 즉시 일어나야 ‘다른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작은 공간에서 밀가루 반죽을 하고 당근을 자르면서, 제 손으로 컵케이크를 만듭니다. 고객을 위해서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또한 저의 운명인 듯싶습니다"

“돈은 항상 있을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산의 나뭇잎에 이슬이 맺히고, 그 이슬이 뭉쳐서 물방이 되어 냇가로 흐르고, 강으로 흘러가 바다에서 거대한 물결을 이루지 않습니까? 돈도 그러한 이치인 듯합니다. 돈은 사회를 위해, 보람 있는 일에 쓰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돈이 자신을 위해서만 써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전후좌우를 둘러봐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뿐이다.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몸을 던진 유명 정치인의 소식도 가슴 아프다.
  
'무엇이 이토록 그들을 어렵게 하는 것일까?’
‘해법은 없는 것일까?’
   
《괜찮아요》의 표지.
강남의 어느 서점에서 우연히 책 한권을 접했다. 《괜찮아요》(드림팟네트웍스)라는 책이었다. 제목은 단순했으나 전하려는 메시지가 의미심장했다.
  
“때론 읽고, 때론 쓰고, 때론 걸으며 깨달은 조금 덜 젊은이가 조금 더 젊은이에게 전하는 사연."
 
저자는 ‘실패의 아이콘’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가끔씩 대중 앞에 선 성신제(71)씨였다. 그는 1985년 피자헛 한국지점을 처음으로 개설한 피자 업계의 거인이었으나, 1997년 한국을 강타한 외환위기를 맞아 부도를 맞았다. 그 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한국 토종 피자전문점인 ‘성신제 피자’를 설립했다. 그러나 후발업체들의 공격적인 전략으로 위기를 맞았다. 2007년  폐업절차를 밟아야 했다. 눈물을 머금으면서.
 
불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2011년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암이 간과 폐에도 전이된 상태였다. 6개월 시한부판정을 받았으나 수술과 항암치료 끝에 다시 살아났다. 18번의 수술을 하면서 지옥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우뚝 일어선 것이다.
 
 

  
단 한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저자 성신제씨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누군가 단 한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작은 믿음으로, 나의 오랜, 그저 그런 날들에 나는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돌이켜보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 《괜찮아요》는 모두 51개의 콘텐츠(Contents)로 구성돼 있었다. ‘생각’이라는 주제로 13번을 썼고, ‘나도 청춘이다’ 6번, ‘보따리’ 3번,  ‘할 만큼 했다는 건’도 3번이나 썼다. 여느 책과 달리 같은 주제를 여러 번 다룬 것도 특이했다.
 
책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쉽게 쓰여 있기도 했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저자가 강조한 ‘생각’의 한 부분이다.
 
<우린 모두,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말은 잘 기억한다. 우린 모두, 누군가에게 상처 준 말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마음의 맷집이란 없다. 가까운 사람들이 들이대는 매는 맞을수록 더 아플 뿐이다.>
 
맞는 말이다. ‘총에 맞은 상처는 치료될 수 있어도 말로 받는 상처는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는 페르시아의 속담도 있지 않는가.
 
'실패의 아이콘’을 만나다
 
 필자는 저자 성신제씨를 만나러 갔다. 만남의 장소는 그가 일하고 있는 강남구 개포동이었다. 골목길을 몇 바퀴 돌아서 그의 아지트를 찾았다. 붉은 벽돌집에는 에어컨 실외기만 거친 숨을 몰아쉴 뿐 간판도 인기척도 없었다.
 
‘똑똑똑’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10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는 밀가루 포대들이 잔뜩 쌓여있었고, 갓 탄생한 컵케이크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안쪽에서 케이크를 만들고 있던 성신제씨가 다가와서 명함을 내밀었다.
 
  
성신제씨는 표정이 밝았고, 백발과 하얀 티셔츠도 잘 어울렸다. 그는 입구의 작은 공간에 의자를 놓으면서 필자에게 커피 한잔을 권했다.
 
“어세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표정도 밝았고, 백발과 하얀 티셔츠도 잘 어울렸다. 그는 입구의 작은 공간에 의자를 놓으면서 ‘커피한잔 하실래요?’했다. 필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페라테(cafe latte)를 가져왔다. 그리고서 책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과 담을 쌓으려고 칩거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에 나간 후로 간판도 없는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오던지...대부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그들과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 주(主)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의 말미마다 ‘조금 더 젊은이가 전하는 사연’이라고 표기했습니다."
  
책에서 13번이나 다룬 주제인 ‘생각’은 그가 젊은이들과 나눈 대화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말했다.
 
“놀랐습니다. 저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젊은이들이 그토록 많은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사실에요."
 
세상이 날로 각박해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돈이란 무엇인가
  
성신제씨는 큰돈을 벌기도 했고, 또 철저히 망가지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서 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돈의 의미를 설명하는 성신제씨.
“돈은 항상 있을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산의 나뭇잎에 이슬이 맺히고, 그 이슬이 뭉쳐서 물방이 되어 냇가로 흐르고, 강으로 흘러가 바다에서 거대한 물결을 이루지 않습니까? 돈도 그러한 이치인 듯합니다. 돈은 사회를 위해, 보람 있는 일에 쓰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돈이 자신을 위해서만 써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보고 또 실패를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책에 들어 있는 ‘보따리론(論)'도 돈에 못지않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가 짊어지고 있는 보따리. 어머니가 짊어지고 있는 보따리. 아내가...남편이...아들이...딸이...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짊어지고 있는 보따리. 말 한마디만 따뜻하게 해도 분명, 가벼워진다.>
 
성신제씨는 "책의 소(小)주제인 보따리를 다룬 것은 시골의 외할머니가 정성스럽게 들고 오던 보따리가 생생한 기억으로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시골에서 나물, 김치, 고감, 떡 등을 정성스럽게 보따리에 싸오셨습니다.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이 정성스럽게 싸인 것이지요. 가방이 아닌 보따리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글을 썼습니다."
 
 
땅에 떨어진 은행잎.
그는 책에 쓰인 은행잎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던 중, 양파 망에 은행잎을 주워 담는 아주머니를 보고서 뛰어 나갔습니다. 이유를 묻자 ‘집이 낡아서 은행잎이 바퀴벌레 퇴치에 특효약이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분과 쭈그리고 앉아서 꽤 오랜 시간 은행잎을 주워 담았습니다. 눈물이 나더군요. 아마도 소중한 행복을 깨달은 기쁨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나도 청춘이다, 아프니까...
 
<대장암, 간암, 폐암, 위암, 횡경막암 등 다양한 암 순례길(?)을 마치고 나서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면서 그는 ‘살아 있음이 축복임은 진실이다’라고 책에 썼다.
 
<아프지 않을 때는 아픈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돈이 많을 때는 돈이 없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칭찬 받을 때는 비난 받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성신제씨의 말은 책의 내용과 같았다.
 
“18번이나 수술을 했습니다. 저의 몸은 상처투성이지요. 하지만 그러한 저에게 용기를 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망했다고 생각하지 마라.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너 같이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이 또 어디 있느냐? 큰돈도 벌어봤고, 수술도 남보다 더 많이 했고’..."
  
그는 말을 마치자 껄껄 웃었다. 행복한 표정으로.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강조하는 성신제씨.

“실패했다고 주저앉아버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실패하더라도 즉시 일어나야 ‘다른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작은 공간에서 밀가루 반죽을 하고 당근을 자르면서, 제 손으로 컵케이크를 만듭니다. 고객을 위해서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또한 저의 운명인 듯싶습니다."
 
실패로 끝나지 말아야...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짧아
 
그가 책과 말에서 줄곧 강조하는 키워드가 있었다.
 
‘읽자, 쓰자, 걷자’
 
세가지 각각 다른 말이지만, 묘하게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게 해주고, 때론 재가공하게 해주고, 때론 예기치 못한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해주기 때문이란다.
 
대화를 마치고 헤어질 시간이 됐다. '다시 뵙기를 원한다'는 인사말을 전하고 그의 가게를 나섰다.
 
얼마쯤이었을까, 뒤로 돌아보았다. 성신제씨는 필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인사를 할 작정인듯 같은 자리에 계속 서서 손을 흔들어댔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모퉁이 돌 때까지.
 
그는 더 이상 '실패의 아이콘'이 아니었다. 아니, 인생에서 성공한 '리얼 아이콘'이었다.
 
여름의 태양은 더욱 이글거렸다. 
 
돌아오는 내내 “코스모스는 가을에 피는 꽃이다. 화창한 봄날에 활짝 피어 있는 개나리를 보고 질투할 필요는 없다. 곧, 당신의 계절이 오니까"라는 책의 마지막 부분이 진한 여운(餘韻)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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