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던 작년 7월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서울 흑석동 뉴타운 재개발 부지의 25억7천만원짜리 상가를 매입했다가 논란이 되자 하루만에 자진사퇴했다. 김 전 대변인이 구입한 건물은 아파트 2채(큰 평수 1채)와 상가 1채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김 전 대변인은 속칭 '딱지'를 은행 대출 10억여원과 상가 보증금 등을 끼는 방식으로 투자 원금의 무려 3.5배에 달하는 '갭 투자'를 단행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물론 사퇴의 변에서 해당 건물 매입 당시 자신은 몰랐고 '집사람'이 단독으로 결정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김 전 대변인의 문제를 여섯 가지 키워드로 살펴봤다.
1. 견강부회(牽强附會)
"투기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미 집이 있는데 또 사거나, 아니면 시세차익을 노리고 되파는 경우가 해당된다. 저는 그 둘 다에 해당되지 않는다.''
김의겸 전 대변인은 3월 28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밝힌 해명이다. 한마디로 투기의 개념을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억지 해석한 견강부회다.
그가 비록 30년 무주택자라 하더라도 정상적 무주택자는 아파트 한 채를 사거나 분양받지 거액의 은행빚까지 져가며 아파트 2채와 상가 1채의 딱지 투자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아무리 빠르게 재개발이 이루어져도 3~5년 이상 걸리고, 매년 수천만원의 대출이자를 감당해야 하는데 어떻게 이것이 투기가 아닌가? 은행 대출뿐 아니라 자신의 기존 전세 보증금과 부인의 퇴직금까지 올인하여 투자 원금의 무려 3.5배에 달하는 '갭 투자'를 하여 약 10억여원의 평가차익까지 얻은 것이 투기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투기인가?
현 정권이 부동산값을 잡겠다고 전쟁을 하는 시기에 정권의 입인 청와대 대변인이 노른자위 뉴타운 투자로 불과 6개월 만에 1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리는 걸 보는 국민들 속은 지금 뒤집어지고 있다. 김 대변인은 더이상 견강부회의 궁색한 변명으로 폭등한 집값 앞에서 절망하는 청년세대나 무주택 서민들의 불붙고 있는 분노에 부채질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내로남불
현 정권은 2017년 8·2 대책과 지난해 9·13 대책 등 각종 부동산 규제 대책을 발표하면서 투기와의 전쟁을 벌여 왔고, 심지어 지난해 3월 발의한 헌법개정안에서 '토지공개념'까지 도입했다. 그리고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고 장담했다
이처럼 정부가 재개발·재건축을 타깃 삼아 초과이익 환수제, 조합원 분양권 전매 금지, 5년 재당첨 금지 등의 규제책을 융단 폭격 퍼붓듯 쏟아낼 때 김 대변인은 인생의 명운을 걸고 과감한 딱지 투자에 나섰다. 이야말로 내로남불, 표리부동(表裏不同)의 극치가 아닌가?
정부는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고 장담하면서 그 뒤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청와대 대변인이 서민은 상상도 힘든 거액의 은행 빚을 지고 자기 전 재산을 던져 재개발 투자에 나선다면 어느 국민이 이런 정부를 믿겠는가? 입만 열면 정의를 부르짖는 정권의 입이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낼 부동산 투자를 하고 태연하게 재산 신고까지 했다면 국민들의 심정은 과연 어떻겠는가? 현 정권과 김 대변인의 겸허한 자성(自省)과 뼈저린 반성, 책임있는 행동이 필요한 부분이다.
3. 오비이락(烏飛梨落)
김 대변인이 문제의 건물을 매입한 지 일주일 뒤 서울시장이 용산·여의도 재개발 마스터플랜을 언급했고, 여기에 자극받아 흑석 뉴타운 땅값이 급등했다. 석 달 뒤엔 김 대변인 소유 건물 지역에 뉴타운 사업시행 인가가 떨어졌다. 김 대변인은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는 '관리처분 인가' 직전 단계에서 딱지를 매수해 전매 규제도 피했다.
이 모든 것을 과연 오비이락의 우연으로 봐야 하는가? 우연도 계속되면 필연이 아닌가? 김 대변인은 가까운 친척에게 투자를 권유받았다면서 어물쩍 넘어갈 것이 아니라 매입 경위에 대해 보다 성실한 해명을 해야 한다.
대출 경위도 마찬가지다. 당시 정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억제 조치를 강력히 취했는데 혹시라도 그 과정에 어떠한 특혜가 있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4. 선사후공(先私後公)
김 대변인은 청와대 입성과 동시에 4억8000만 원짜리 본인 전세를 빼서 곧바로 관사에 입주했다. 이 돈은 나중에 고스란히 부동산 투자에 들어갔다. 국민 세금이 들어간 청와대 관사가 개인의 짭짤한 재테크 수단이 된 셈이다.
청와대는 “서울 사는 사람이라도 본인이 신청하면 업무의 긴급성 등을 고려해 배정한다"며 “김 대변인 입주에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과거 정부에서 서울 사는 대변인이 관사에 입주한 전례가 있는가? 현 정부 들어 박수현 전 대변인이 관사에 살긴 했지만 이는 공주에서 출퇴근하던 특수한 상황이 아닌가? 누가 뭐래도 가족까지 동반한 서울 출신 대변인의 관사 입주는 특혜가 아닌가?
김 대변인은 지금이라도 관사를 통한 재테크야말로 선사후공의 극치임을 명심하여 조속히 관사를 꼭 필요한 공무원에게 되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5. 후안무치(厚顔無恥)
“난 전셋값 대느라 헉헉거리는데 누구는 아파트값이 몇배로 뛰며 돈방석에 앉고, 난 애들 학원 하나 보내기도 벅찬데 누구는 자식들을 외국어고니 미국 대학으로 보내고, 똑같이 일하는데도 내 봉급은 누구의 반밖에 되지 않는 비정규직의 삶 등등.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들이 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초원에서 초식동물로 살아가야 하는 비애는 ‘도대체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낳게 한다."
김 대변인이 지난 2011년 한겨레신문에 쓴 글이다.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이 정부 들어 벼랑 끝으로 내몰린 냉면집 하는 자영업자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내놓은 급매물을 헐값에 투기하는가? 이야말로 후안무치의 극치가 아닌가?
지금 김 대변인 또래의 50대 가장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월평균 가처분소득이 가장 크게 떨어져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다. 이분들에게 더는 전세 살고 싶지 않아 6개월 만에 시세가 10억원 이상 껑충 뛴 건물주가 됐다는 자칭 초식동물 청와대 대변인의 말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겠는가?
김대변인은 지금이라도 ''도대체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명심하여 스스로 진퇴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6. 읍참마속(泣斬馬謖)
김 대변인은 기자 시절 최순실(최서원) 문제를 파헤쳐(일부 조작해) 문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 이에 따라 대변인이 됐고 청와대 안에서도 실세로 꼽힌다. 대통령의 깊은 총애와 실세가 아니라면 어떻게 재산 신고로 다 드러날 것을 알고서도 투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제라도 대통령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바로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김 대변인을 경질하는 것이다.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투기 의혹을 받는 청와대 대변인이 매일 국민 앞에서 청와대와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고 설득한다면 그 누가 믿겠는가?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동서와 고금의 역사가 보여주는 진리가 아닌가? 만일 읍참마속이 되지 않는다면 '재주복주(載舟覆舟)'의 거대한 국민적 저항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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