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치과 치료와 몇 가지 용무 때문에 서울을 다녀와야 했다. 안흥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표는 오직 당일에 현금으로만 구입할 수 있다. 유명한 안흥찐빵을 파는 본업을 가진 노부부에게 매표를 대행케 한 탓인지 모른다. 그래서 서울행 버스표 구입은 다소 불안하다. 좌석이 없으면 돈이 있어도 표를 살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안흥에서는 언제나 표를 넉넉히 살 수 있다.

     

돌발 상황은 언제 어디서나 생길 수 있다. 지난번에는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아침부터 서둘러 동서울종합터미널로 갔는데 그만 버스표가 매진되었던 것이다. 그 시각에 차를 타지 않으면 도착해서도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농어촌버스로 갈아탈 수 있기 때문에 여간 손실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승용차로 두 시간도 안 걸리는 곳을 6시간 이상 들여야 도착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했다.

     

가령 자승자박이란 이런 것이다. 표가 있으면 안심할 수는 있지만 은근히 그 출발 시각에 매이고 마는 것이다. 전날 저녁 갑자기 아주 좋은 아이템이라며 자문을 구하고 싶다는 후배가 있었지만 다음날 버스 시간 때문에 만나서 충분히 상담해 줄 수 없었다. 급할 것 없는 나로서는 다른 날 보자고 하면 되기도 하고,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표를 환불하면 되었지만 그 사이의 수많은 어정쩡한 상황에서는 버스표에 얽매이고 마는 것이다.

     

치과 치료도 마찬가지다. 병원으로서는 진료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좋고 환자는 귀한 시간 줄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좋으니 진료예약제는 피차간 장점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날 모 부동산에서 아파트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다. 집은 무거운 물건이니 살 때도 팔 때도 큰돈이 오가는 일이라 매도인과 매수인과 중개인은 계약서와 등기부등본 등 서류를 챙기고 확인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한 순간, 예약 시각이 임박했음을 깨달았을 때의 그 당혹감이란. 예약일자를 변경하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예버덩의 작업실에 와 있으니 자칫하면 1주일을 아프게 기다려야 치료받을 수 있다는 거였다. 서둘러 계약금을 지급한 뒤 더 서둘러 치과로 향했다. 예약은 편하기도 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한 것이다.

     

어쩌면 직장도 마찬가지다. ‘배부른 노예니 뭐니 해왔듯 사실 직장이란 자신의 자유를 담보로 안정된 생계를 보장받고자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개인의 창의성을 실현하는 수단이 직장이라는 말도 있다지만, 그것은 노예의 삶을 권유하는 각종 이익집단의 유혹 수단일 뿐이다. 창의성 실현을 굳이 조직의 틀에 갇혀서 조직의 필요에 맞추어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결정한 직장이 아니라 어떤 의무감에 따라 다니는 직장이라면 그곳은 감옥과 같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예매와 예약과 직장은 자승자박인가. 자유를 담보로 편의와 복리를 추구하는 자충수? 설마 그렇기야 하겠는가. 그러나 자승자박이나 자충수라도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뉘앙스는 완전히 달라진다. 스스로 계획을 짜고 거기에 갇히는 일이란 진정한 생산의 동력일지 모른다. 어쩌면 무계획이야말로 자유의 상실이자 창의성의 낭비일지 모른다. 계획 없는 인생이란 참 갸륵한 것이다.

     

아무튼 아침부터 바삐 준비한 끝에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안흥을 거쳐 작업실에 잘 도착했다. 일상에서나 문학에서나 타자에 의한 갇힘만 아니라면 스스로를 가둘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끌려 다니지만 않는다면 자발적 갇힘은 창조적 개인의 진정한 활로가 된다. 그렇다면 나는 예버덩문학의집에서 나간 다음에도 나의 노예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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