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는 사방에 있네. 우리를 전부 둘러싸고 있지. 심지어 이 방안에서도. 창문을 통해서나 텔레비전에서도 볼 수 있지. 일하러 갈 때나 교회 갈 때, 세금을 내러 갈 때도 느낄 수가 있어."
1999년 선보인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대사 한 대목이다. 영화의 무대는 2199년 인류와 인공지능 기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다. 인공지능 컴퓨터는 인류를 정복하여 사람을 자신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노예로 사육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이런 상황을 모른 채 행복하게 산다.
매트릭스로 상징되는 테크놀로지는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었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이었든 현대사회의 필수 요소가 된 지 오래이다. 단지 <매트릭스>는 우리가 첨단기술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일깨워 주고 있을 따름이다.
2001년 12월, 미국 과학재단과 미국 상무부는 학계, 산업계, 행정부의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참여한 워크숍을 개최하고 <인간 활동의 향상을 위한 기술의 융합>(Converging Technologies for Improving Human Performance)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4대 核心(핵심)기술, 곧 나노기술(N)·생명공학기술(B)·정보기술(I)·인지과학(C)이 상호의존적으로 결합된 것(NBIC)을 융합기술(convergent technology)이라 정의하고, 10~20년 뒤에 융합기술이 바꾸어 놓을 인류사회의 모습을 20개의 시나리오로 그려 놓았다.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2020년의 미래사회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 활동의 향상을 위한 기술의 융합
●인간의 뇌와 기계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곧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machine interface)가 산업·교통·군사·스포츠·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옷처럼 몸에 착용하는 센서와 컴퓨터가 일상화되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상태·환경·화학오염·잠재적 위험·각종 관련 정보를 알아챌 수 있게 된다.
●사람의 신체는 좀 더 잘 견디고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게 되며 손상된 부위의 복구가 쉬워지고 여러 종류의 스트레스, 생물학적 위협, 노화 과정에 대해 더 잘 버티게 된다.
●주택에서 비행기까지 모든 종류의 기계와 구조물은 바람직한 특성, 예컨대 변화하는 상황에의 적응 능력, 높은 에너지 효율성, 환경친화성 등을 정확하게 가진 물질로 만들어진다.
●국가안보는 정보화된 전투 시스템, 고성능 무인 전투용 차량, 안전한 데이터 네트워크, 생물·화학·방사능·핵 공격에 대한 효과적 방어 수단 등에 의해 크게 강화된다.
●기술자·예술가·건축가·설계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확장된 창조 능력을 경험한다.
●우주에 대한 위대한 약속이 효율적인 발사체와 로봇에 의한 외계기지 건설. 달이나 화성 또는 지구 근처 소행성의 자원 활용으로 마침내 실현된다.
●공식적 교육은 나노 규모에서 우주 규모까지 물리적 세계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포괄적이고 知的(지적)인 패러다임에 기반을 둔 커리큘럼으로 바뀐다.
2020년까지 인간 활동의 향상을 위해 특별히 중요한 융합기술 분야로는 다음 네 가지가 선정되었다.
●제조·건설·교통·의학·과학 연구에서 사용되는 완전히 새로운 범주의 물질, 장치, 시스템. 이를 위해서는 나노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정보기술 역시 역할이 막중하다. 미래의 산업은 생물학적 과정을 활용해 신소재를 생산한다. 따라서 재료과학 연구가 핵심이 된다.
●나노 크기에서 동작하는 부품과 공정의 시스템을 가진 물질 중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 알려진 생물 세포. 나노기술, 생명공학기술, 정보기술의 융합 연구가 중요하다. 정보기술 중에서 가상현실(VR) 기법은 세포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유비쿼터스 및 글로벌 네트워크로 다양한 요소를 통합하는 컴퓨터 및 통신 시스템의 기본 원리. 나노기술이 컴퓨터 하드웨어의 신속한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 인지과학은 인간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정보를 제시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사람 뇌의 구조와 기능. 생명공학기술, 나노기술, 정보기술이 뇌 연구에 새로운 기법을 제공한다.
이 보고서는 2020년까지 융합기술이 인간의 생산성과 독립성을 향상시키면 “인류 전체가 하나로 분산되고 상호 연결된 뇌처럼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이제는 르네상스의 정신에 다시 불을 붙일 때"라고 주장했다. 르네상스의 기본 특질은 全一(전일)주의(holism)로서 여러 분야를 공부한 창의적인 개인은 “오늘은 화가였다가 내일은 기술자, 모레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강조하면서 융합기술이 인류사회에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줄 것을 희망했다. 보고서에 제시된 20가지 시나리오가 2020년까지 실현되면 인류의 생산성과 삶의 질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사람, 동물, 식물이 유전자 주고받아 새로운 種 대량 등장
2020년 어느 날, 당신은 부엌으로 가서 큰 소리로 무얼 먹으면 좋을지 컴퓨터에게 묻는다. 부엌의 컴퓨터는 지난 몇 주 동안의 기록을 바탕으로 당신이 좋아하는 몇몇 식품의 재고를 알아본 뒤 서너 종류의 요리를 제안한다. 가령 삼계탕을 주문하면 요리 소프트웨어는 재료를 골라 음식을 만든다. 그동안 당신은 비디오 메시지가 들어왔는지 큰 소리로 물어 본다. 곧 거실 저쪽 벽에 스크린이 나타난다. 메시지를 살피는 동안 부엌에서는 음식이 다 되었다는 신호가 온다.
컴퓨터를 부엌이나 벽 속처럼 주변의 곳곳에 설치하는 기술은 말 그대로 컴퓨터가 어디에나 퍼져 있다는 뜻에서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라 한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실현되면 주변의 모든 물건이 지능을 갖게 되므로 영리한 물건들은 스스로 생각하며 사람의 도움 없이 임무를 수행한다. 이를테면 돼지고기에 숨겨 둔 컴퓨터는 오븐 안에서 스스로 온도를 조절해 고기가 알맞게 익도록 한다.
2020년 어느 날. 당신은 아마도 레몬 향기가 풍기는 잔디에 누워서 하늘색 장미를 감상하고 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장미 향기가 나는 제라늄, 給水(급수)가 필요할 때 저절로 빛을 내는 난초, 알맞은 키에 성장을 멈추는 울타리 나무들을 보게 될 것 같다. 이러한 식물은 유전자 이식(transgenic) 기술로 만들어진다.
2020년대에는 유전자 이식 기술이 발전을 거듭해 유전적으로 무관한 생물 사이에 경계가 급속도로 허물어져서 사람, 동물, 식물이 서로 유전자를 주고받아 새로운 種(종)이 쏟아져 나온다.
유전공학은 의료기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선 누구나 스니프(SNP)를 알고 있으므로 유전적 특성에 따라 ‘맞춤약’을 지어 먹고 체질에 맞는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니프는 인종이나 개인에 따라 다른 염기 배열을 뜻한다. 염기 배열은 평균적으로 300개당 한 개꼴로 다르며, 이것이 인간의 다양성, 곧 체질이나 생김새, 또는 어떤 질병에 잘 걸리는 특성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유전자 치료에는 체세포 치료와 생식세포 치료가 있다. 유전자 치료의 결과로 변화된 유전적 조성이 체세포 치료의 경우에는 환자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반면에 정자 또는 난자를 다루는 생식세포 치료의 경우에는 환자의 모든 자손에게 대대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유전자 치료는 질병 치료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생식세포에서 질병에 관련된 유전자를 제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지능, 외모, 건강을 개량하는 유전자를 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맞춤아기’를 생산할 수 있다.
2020년대에는 설계대로 만들어진 주문형 아기가 출현하게 됨에 따라 인류사회는 優生學(우생학)의 소용돌이에 말려든다. 경제 능력에 따라 유전자가 보강된 수퍼인간과 그렇지 못한 자연인간으로 사회계층이 양극화될 조짐이 나타나면서 생식세포 치료의 허용 범위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불붙게 된다. 인류가 스스로 자신의 후손과 미래를 설계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은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2020년대에는 體外(체외)발생(ectogenesis) 기술이 완성되어 맞춤아기 문제와 함께 인간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심각한 윤리적 쟁점으로 부상한다. 2020년경 인공자궁이 개발되기 때문이다. 인공자궁이 완성됨에 따라 태아를 완전히 어머니 몸 밖에서 발육시킬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에서처럼 체외수정과 체외배양이 임신을 대신하게 된다. 이처럼 어머니의 몸을 일절 빌리지 않고 시험관 안에서 수정되어 인공자궁에서 발육된 다음에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체외발생이라 한다.
체외발생 기술 덕분에 여자들은 임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자궁은 맹장처럼 쓸모 없는 존재로 추락한다. 인간의 성교는 생식과 무관해지면서 성욕을 탐닉하는 오락행위로 바뀐다. 더욱이 체외발생 기술로 익명의 정자와 난자로부터 시험관 아기들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인류사회는 정체성의 위기에 봉착한다. 누가 아버지이고 누가 어머니란 말인가. 그들에게 부모란 아예 없는 것은 아닌가. 체외발생으로 생명을 얻은 그 아기들을 정녕 인간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
2025년 미국은 여전히 지구상에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을 것이다. 2008년 9월 미국 국가정보위원회는 2025년 미국의 국가 경쟁력에 파급효과가 큰 기술을 선정해 <현상파괴적 민간 기술>(Disruptive Civil Technologies)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기존의 기술을 일거에 몰아내고 시장을 지배하는 새로운 기술을 현상파괴적 기술이라 한다. 금속 인쇄술, 증기기관, 자동차, 전화, 나일론, 컴퓨터, 인터넷 등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꾼 기술들은 본질적으로 현상파괴적 기술에 해당한다.
이 보고서에는 2025년 미국의 현상파괴적 기술로 여섯 가지가 선정되어 있다. 생물노화기술, 에너지 저장 소재, 생물연료 및 생물기반화학, 청정석탄 기술, 서비스 로봇, 만물의 인터넷이다.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에너지 저장 소재는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재 및 관련기술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기존의 배터리 기술은 물론 수소전지를 비롯한 수소저장 소재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여 미국 경제구조를 화석연료 중심 패러다임에서 수소기반 경제로 바꾸어놓을 가능성이 높다.
●생물연료 및 생물기반 화학은 동식물로부터 연료를 추출해 내는 기술이다. 생물연료는 화석연료의 유력한 대안의 하나로서 석유 수급의 불확실성에 대처하고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일거양득의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청정 석탄기술은 석유나 천연가스보다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훨씬 높은 석탄을 환경 친화적인 연료로 활용하는 기술이다. 석탄 청정화 기술로 석탄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면 석유 의존도를 낮춤과 동시에 재생에너지가 대량생산될 때까지 임시방편이 될 수 있다.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등 4개국의 석탄 매장량은 전 세계 매장량의 67%를 차지하는데, 이를 활용하면 석유기반 경제를 100~200년 더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비스 로봇은 일상생활에서 사람과 공존하며, 사람을 도와주거나 사람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는 데 도구로 이용되는 로봇, 곧 개인용 로봇이다. 서비스 로봇은 청소나 설거지 등 집안일을 대신 하는 것부터 노약자를 돌보거나 오락을 제공하는 로봇까지 다종다양하다. 2020년경부터 서비스 로봇이 미국의 각 가정에 필수적인 존재가 되는 1가구 1로봇 시대가 개막된다.
●‘만물의 인터넷’은 지구가 전자 피부로 뒤덮인다는 개념이다. 지구의 전자 피부는 원격측정 기능을 가진 장치, 예컨대 온도, 압력 또는 공기 오염을 측정하는 기기, 카메라, 마이크로폰 따위로 구성된다. 이러한 장치들은 사람, 도시, 고속도로, 선박, 환경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감시한다. 이러한 원격측정 시스템은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지구의 피부 또는 신경계의 역할을 한다. 전자 피부의 세포들이 원격 감지한 정보를 처리하고 소통시키는 뼈대는 인터넷이다. 다시 말해 2025년에 만물의 인터넷에 연결된 수많은 원격측정 장치들이 신경세포처럼 작용하여 인간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을 원격 감시 및 제어한다. 따라서 국가경제에서 일상생활까지 미국 사회는 만물의 인터넷에 의해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된다.
2020년대 중반에는 나노 크기의 로봇, 곧 나노봇(nanobot) 전성시대가 열린다. 나노봇은 나노기술의 결정체로서 나노의학의 핵심이다. 1986년 미국의 에릭 드렉슬러가 <창조의 엔진>에서 처음 아이디어를 내놓은 나노봇이 30여 년 만에 실현되는 셈이다.
사람의 몸을 100% 인공기관으로 교체하기 어려운 것은 뇌 때문이다. 뇌 전체를 통째로 바꿀 수 없지만 신경공학에 의해 뇌 기능의 보완이 가능해진다. 뇌의 손상된 부위를 전자장치로 대체하는 뇌 보철 기술은 뇌 질환 치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뇌 기능 향상에 사용된다. 가령 신경세포 안에서 뇌의 활동을 직접 관찰하거나 측정하는 장치가 개발될 수 있다. 이러한 장치는 신경세포 활동의 정보를 무선신호로 바꾸어 뇌 밖으로 송신한다. 거꾸로 무선신호를 신경정보로 변환하는 수신 장치를 뇌에 삽입할 수 있다. 사람 뇌에 무선 송수신기가 함께 설치되면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직접 정보가 전달된다. 이러한 통신방식은 ‘무선텔레파시’라고 불린다.
2050년 무선텔레파시 기술이 실용화되면 인류의 의사소통 체계는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이러한 뇌 이식 장치를 가진 사람들이 전 세계에 분포한 만물의 인터넷에 접속하여 생각으로 보내는 신호만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므로 전화나 텔레비전은 물론 언어마저 무용지물이 되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옛말이 되는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정녕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21세기 후반에 인류사회의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한 포스트 휴먼은 거주지를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2015년 달에 영구기지가 건설되고 2030년 달 기지를 발판으로 화성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게 된다. 화성은 테라포밍(terraforming)을 거쳐 사람이 활동하기에 알맞도록 바뀐다. 우주에 식민지를 건설한 포스트 휴먼은 21세기 후반 어느 시점에 우주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구와 우주를 왕복하면서 우주촌의 주인 노릇을 할 것이다.
2030년대에는 인간의 몸이 기계로 바뀌어 갈 뿐만 아니라 기계는 생물처럼 자기증식하는 능력과 사람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을 갖게 된다. 2000년 4월 미국의 컴퓨터 이론가인 빌 조이가 발표한 글인 <왜 우리는 미래에 필요 없는 존재가 될 것인가>에 언급된 자기복제 기계가 나타날 것이다. 대표적인 자기증식 장치는 에릭 드렉슬러가 <창조의 엔진>에서 상상한 어셈블러(assembler)다. 어셈블러는 분자를 원료로 사용해 이들을 유용한 거시물질의 구조로 조립해 내는 분자 크기의 장치다.
어셈블러가 어떠한 물체도 조립할 수 있다면 자신도 만들어 내지 말란 법이 없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도 복제할 수 있다. 이 나노봇은 생물체의 세포처럼 자기증식하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해 인간의 힘으로 통제 불가능한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어셈블러가 자기복제를 멈추지 않으면 지구는 나노봇 떼로 뒤덮일는지 모른다. 드렉슬러는 자기증식하는 나노기계가 지구를 뒤덮게 되는 상태를 ‘잿빛 덩어리’라고 명명하고, 이 상태가 되면 인류는 최후의 날을 맞게 될 것이라고 상상했다.
2030년대의 기계는 지능 면에서 사람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컴퓨터는 이미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통과해 기계는 할 수 없고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이를테면 특이점을 통과하게 된 것이다. 특이점은 인간을 초월하는 기계가 출현하는 시점을 의미한다.
2040년대에는 사람처럼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로봇이 나타나서 놀라운 속도로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기 시작한다. 미국 로봇공학자인 한스 모라벡이 <로봇>(1999)에서 2050년 이후 지구의 주인은 인류에서 로봇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대목이 서서히 현실화되는 셈이다. 이러한 로봇은 소프트웨어로 만든 인류의 정신적 유산, 이를테면 지식·문화·가치관을 모두 물려받아 다음 세대로 넘겨줄 것이므로 ‘자식’이라 할 수 있다. 모라벡은 이러한 로봇을 ‘마음의 아이들’이라 명명했다. 모라벡은 인류의 미래가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혈육보다 사람의 마음을 물려받은 기계, 곧 마음의 아이들에 의해 발전되고 계승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로보 사피엔스와 더불어 살아야
2030년대부터 사람의 지능을 따라잡기 시작한 로보 사피엔스는 창조주인 호모 사피엔스를 파멸시킬 것인가, 아니면 모라벡의 시나리오처럼 인류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어느 누가 감히 상상해 볼 수 있겠는가.⊙ 출처=월간조선 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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