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포털의 지식인에 그림의 제목을 알려달라며 끊임없이 올라오는 질문이 있다.
     
"어느 여자가 죽어서 물에 떠있는 그림인데요, 너무 아름다운 여자예요. 제목이 뭔지 알려주세요."
    
누구든 이 그림을 본다면 어떤 화가가 그렸는지, 누구를 그린 것인지 몰라도 절대 잊히지 않을 강한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 그림의 아름다운 주인공은 오필리아. 햄릿이 가장 사랑했던 여성이다. 복수에 불타오르던 햄릿은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오해로 죽이고 이 소식을 들은 오필리아가 강물에 빠져 죽는 모습을 그렸다. 비극적인 주제지만 실제와 혼동될 만큼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으로 꼽히는 수작이다.
             
영국판 孟母三遷之敎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1829~1876). 1829년 영국에서 태어난 화가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존이 미술과 음악에 재능을 보이자 온 가족이 왕립 아카데미가 있는 런던으로 이사했다. 영국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다. 존은 엄마 덕분에 영국 빅토리아 시대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화가가 되었다. 심지어 세습되는 남작의 작위까지 받았다고 한다.
        
존 에버렛 밀레이는 1851년 잉글랜드의 한 강가에 이젤을 놓고 하루 11시간씩 주 6일 꼬박 5달 동안 ‘오필리아’를 그렸다. 자연의 풍경을 아주 정밀하게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14~15세기의 이탈리아 미술에서 영감을 얻은 존 에버렛 밀레이는 진실하고 꾸밈없는 자연의 묘사를 찬양했다. 라파엘로 이전의 회화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라파엘전파'를 결성했다.
      
진지하게 성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묘사하는 것을 화가의 임무라고 생각한 그는 요즘 말로 치면 일종의 ‘진지충’으로 불릴만한데, 그럼에도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그림으로 보여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유머 때문이다.
     
삶의 원동력이었던 딸 '에피 그레이'
     
그는 친구의 아내였던 에피 그레이와 결혼하게 되는데(이와 관련해 엄청나게 긴 스토리가 있는데 각설하고) 그 사이에서 엄마를 쏙 빼닮은 딸을 갖게 된다. 게다가 엄마의 이름까지도 그대로 받은 딸 ‘에피 그레이’는 존 에버렛 밀레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그림에도 잘 나타나있다. 
 
 
‘에피 그레이’(일부), 토마스 리치몬드, 1851, 런던 국립초상미술관(왼쪽). ‘나의 첫 설교’, 존 에버렛 밀레이, 1863,  길드홀 아트 갤러리(오른쪽).
    
   
존 에버렛 밀레이는 딸 에피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교회에 가 설교를 듣는 모습을 그렸다. 진지하고 영민한 모습의 에피를 바라보는 아빠의 따뜻한 시선이 잘 표현된 그림이다. 그리고 이 그림의 연작을 1년 후에 다시 그렸는데, 제목은 ‘나의 두 번째 설교’다.
       
  
‘나의 두 번째 설교’, 존 에버렛 밀레이, 1864, 캔버스에 유채, 91.4x71.1cm, 길드홀 아트 갤러리.
    
  
‘나의 두 번째 설교’가 왕립아카데미에 전시되자 캔터베리 대주교는 그 그림을 보고 연회 축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여기 작은 숙녀 한 분이 계십니다. 이 숙녀의 우아하게 주무시는 모습은 나에게 아주 유익한 교훈을 하나 주었는데, 긴 설교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 그리고 사람을 졸게 만드는 강연이 얼마나 해가 되는 것인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를 반성하게 만들고 보는 우리도 아빠미소 짓게 하는 그림. ‘나의 두 번째 설교’.
      
가끔 화가의 생애를 들여다보다가 이토록 우아한 유머를 발견하는 기쁨은 2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림 속 사랑의 에너지가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확신을 들게 하여 더 깊이 그림의 마력에 빠지게 한다.
      
사랑이 힘이다!
 

키워드 연관기사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