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 규명을 위한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먼저 이들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자.
     
“사법농단수사 진행경과를 보면 법원이 과연 수사에 협조하고 사법농단의 진실을 밝힐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동안 법원은 사법농단 관련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잇달아 기각했습니다. 사법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입니다. 국회가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헌법과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입니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현재 법원에 있는 판사들 중 상당수가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이 있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특별재판부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치주의 근간 훼손하는 다섯 가지 이유
    
그렇다면 과연 이들의 주장은 우리 헌법 규정과 정신에 맞는 합헌적이고 타당한 주장인가? 필자는 특별재판부 설치는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독립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잘못된 것으로 평가한다. 크게 다섯 가지 이유다.
      
첫째,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는 “어느 경우든 개별 사건에 대해 미리 법관이 특정되어선 안 된다"는 대원칙이다.
   
“개별 사건에 관해 재판을 할 법관을 선임함으로써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것은 어느 쪽으로부터 그러한 조작이 행해지는가에 관계없이 회피돼야 한다."
   
1997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선진 법치국가에서는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원칙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법원은 재판을 담당할 법관을 컴퓨터로 무작위 배정하고 있다. 그런데 왜 사법농단 의혹 사건만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위 의혹의 피고인들은 공정한 재판부 구성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조차 없는가?
    
위 법안을 추진하는 여야 4당은 특정인이나 특정 사건만 심리할 재판부를 따로 구성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고 재판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점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둘째,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공정한 재판부 구성을 위한 제도가 있다. 바로 ‘제척·기피·회피'제도다.
    
'제척·기피·회피’란 아무도 자기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In propria csusa nemo iudex)"는 고대 로마의 법원칙에서 발전한 제도다.
      
결국 무작위로 배정되는 법관에게 만약 여러 가지 이유로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특수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위 제도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새로운 위헌 논란이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옥상옥(屋上屋)에 불과한 것이다.
  
셋째, 1·2심을 특별재판부로 구성해도 최종심인 대법원이 그대로 사법농단 사건을 재판한다면 아무 실익이 없다. 사법농단 의혹 사건의 경우 대부분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연루된 사건으로 현재 재임 중이거나 퇴임한 대법관들이 당사자다.
       
그런데 만약 특별재판부 도입을 추진하는 측의 주장에 따르면 과연 이러한 대법원에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있는가? 아무리 하급심이 유죄로 판단해도 최종심이자 상급심인 대법원이 무죄로 판단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결국 사법농단 의혹의 직접 당사자인 대법원은 그대로 둔 채 하급심만 특별재판부를 구성하는 것은 '상급심 우선의 원칙'상 아무런 실익이 없는 것이다.
       
넷째, 특별재판부가 현재 재판부보다 더 중립적이고 공정하다는 보장이 없다.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의하면 대한변협, 법관대표회의, 시민사회가 3인씩 참여하는 후보추천위원회에서 2배수로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그런데 민변이 추천한 판사가 과연 현재보다 더 공정할 수 있는가?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의 판사가 추천한 판사가 더 공정할 수 있는가? 정치적 성향의 시민단체가 추천한 판사가 더 공정할 수 있는가?
       
필자는 법관 선임에 외부의 개입이 차단될 때 오히려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특정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맡기면 오히려 외부 영향력으로 재판의 공정성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야 4당은 현재의 법원이 '제식구 감싸기'로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임종헌 전 법원행청처 차장의 구속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결국 특별재판부의 경우 오히려 외부의 부당한 재판개입으로 현재보다 더 극심한 사법불신을 초래할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특별재판부가 설치되면 '나쁜 선례'가 '나쁜 관례'가 되어 앞으로 '사법의 정치화'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현재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여론재판' '정치재판' '권력눈치재판'으로 말미암아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계속 특별재판부가 설치되어야 하는가? 만약 현 정권이 끝난 후 보수 우파 국민들이 현 정권의 적폐를 낱낱이 청산하기 위해 특별재판부를 만들어 마음대로 칼을 휘둘러도 되는가?
       
특별재판부는 건국 초기 일제 강점기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위해 도입된 적이 있으나 극히 예외적인 경우인데 앞으로 '특검'처럼 상설화되어도 되는가?
       
현 정권은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진실을 직시하여 더 이상 위헌적인 제도로 정치보복을 하는 행위를 멈춰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특별재판부의 문제에 대해 다섯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는데, 필자가 누누이 강조하지만 법치의 생명은 어떤 검찰이 수사하든, 어떤 판사가 재판하든 '동일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국민들의 신뢰다. 어떤 검찰이 수사를 하는지, 어떤 판사가 재판을 하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면 결코 법치가 아니다.
   
여야 4당은 국회가 나서서 사법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헌법과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라는 독선과 오만을 버리고 과연 국회는 얼마나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지 먼저 겸허히 되돌아봐야 한다. '특별재판부 구성'보다 '특별의회 구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는 사실도 겸허히 경청해야 한다.
       
'정치권력'과 '사법권력'의 거리가 멀수록 좋다는 것은 양(洋)의 동서를 불문한 진리다. 외부의 타율적 개입보다는 법관들의 양심과 정의, 의지와 소신을 믿고 스스로 뼈를 깎는 자성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사법부로 굳건히 서도록 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더 이상 사법권의 독립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간섭에 소극적 침묵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불필요한 과잉 언행으로 분란의 싹을 키워서도 안 된다. 
       
지금이라도 차분하면서도 철저한 진상규명과 헌법 규정과 정신에 맞는 시스템 개혁을 통해 조속한 사법부 안정에 만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정 성향'이 아니라 '전체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대공지정(大公至正)'의 자세로 허물어진 법원에 대한 믿음을 바로 세우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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