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10월 15일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 탈북민 출신 김명성 조선일보 기자의 취재를 불허했다. 전날 오후 갑자기 취재 기자 교체를 요구하더니 당일 아침 취재단 4명에서 김 기자만 일방적으로 제외한 것이다.
    
“북측 요구는 없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회담이 열리는데 김 기자가 활발한 활동으로 알려졌으니 그런 특수한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다."
  
통일부가 설명한 불허 이유다. 한마디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의 궤변'이다.
  
활발한 활동으로 북한에 알려진 것이 도대체 왜 취재 불허 사유가 되는가? 탈북민 출신의 기자가 취재한다고 해서 왜 원활한 회담 진행이 방해되는가? 가사 북한이 탈북민 기자의 배제를 요구하더라도 북측의 월권을 당당히 비판해야지 먼저 저자세로 배제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김 기자는 지난 2월 김여정·김영남 일행이 방한했을 때도 통일부 기자단을 대표해 근접 취재했다. 그때는 되고 왜 이번에는 안 되는가? 평화의집보다 더 한정된 강릉 호텔에서 김여정과 불과 1~2m 떨어져 취재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왜 이번에는 안 되는가? 평화의집은 탈북 기자의 신변이 위태로울 수 있는 북측 영역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통일부가 김 기자를 배제한 것은 오로지 그가 '탈북민'이기 때문에 '북한의 눈치'를 봤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가? 이는 탈북민에 대한 명백한 차별적 인권 침해가 아닌가?
 
탈북민들은 목숨을 걸고 사선(死線)을 넘어 자유 대한민국에 정착한 분들이다. 이분들이야말로 북한 3대 세습체제의 잔악성과 비인권성을 전세계에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는 살아있는 증거다. 북한 동포, 탈북민 모두 우리와 함께 통일수레를 끌고 갈 하나의 민족이다.
  
정부는 “이런 식으로 ‘이등 국민’ 취급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한 김 기자의 말과 이번 조치에 탈북민 사회가 느낄 좌절감을 결코 가벼이 여겨선 안 될 것이다.
 
한편 통일부의 이번 조치는 언론 자유의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아무런  정당한 사유도 없이 ‘원활한 회담 진행을 위해서’라는 자의적 판단으로 취재를 불허한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이는 결국 우리 내부의 상대편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엄하면서도 유독 북한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춘풍처럼 관대해지는 현 정권의 편향된 인식의 발로가 아닌가?
 
“언론자유와 관련해 취재와 보도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국가안보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피해(direct, imminent, and irreparable damage)'를 끼쳤다는 점을 '정부'가 입증해야만 한다."
  
1971년 베트남 전쟁의 허구성을 폭로한 뉴욕 타임즈의 소위 '펜타곤 페이퍼' 사건에서 미 연방 대법원이 판시한  내용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확립된 법원칙이다. 정부는 국가안보상 중대한 기밀 등이 아니라면 언론에 취재의 자유와 접근권, 보도의 자유까지 완벽히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통일부는 “다른 모든 자유들보다도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토의할 자유가 중요하다. 언론의 자유를 죽이는 것은 진리를 죽이는 것이다''는 밀턴의 경구를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통일부는 이제라도 김 기자에게 정중하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책을 천명해야 한다. 그리하여 탈북민들에게 목숨을 걸고 탈북한 것이 옳은 결단이었음을 실질적으로 보여주고 언론 자유의 소중함도 되새겨야 한다.
   
이 점에서 “(향후에도) 오늘 같은 상황이라면 같은 판단을 내리지 않을까 싶다"는 조명균 장관의 발언은 독선과 아집의 극치다. 북한의 눈치보기, 심기경호의 극치다.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잘못이다. 조 장관은 더 이상 통일부를 취재하는 50개사, 77명의 기자 중 49개사 76명이 동참하여 발표한 항의 성명문에 눈 감고 귀를 막아서는 안 된다. "탈북민의 권리 보호에 앞장서야 할 부처인데,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차별을 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는 기자단의 지적을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헌법 제63조 제1항은 “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65조 제1항은 “국무위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조 장관이 끝까지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책을 천명하지 않는다면 남아 있는 유일한 우리 헌법상 제도다.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건의권이나 탄핵은 이런 경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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