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님께서는 현역 시절이든 군을 떠나서든 군인적인 삶을 살며 겸손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평생을 남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자신에게는 그 누구보다 엄격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면서 대인(大人)으로서의 풍모도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장군님께서 생전에 사무실에 걸어놓으셨던 글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탄주어불유지류(呑舟魚不遊支流)’와 ‘즐풍목우(櫛風沐雨)’입니다. 앞의 글은 “배를 삼킬만한 큰 고기는 작은 물에서 놀지 않는다”는 것이고, 후자는 “바람으로 머리칼을 빗고, 빗물로 목욕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장군님의 도량과 야전군인으로서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글귀입니다.(중략) 미국 국민들이 입을 모아 전쟁영웅으로 추켜세우고, 한미연합군사령관을 비롯하여 미국의 역량있는 장군들이 너나할 것 없이 존경하고 떠받드는 장군님을 우리나라는 친일의 올가미를 씌어 ‘역사의 죄인’으로 취급하고 있는 서글픈 현실을 볼 때 이게 어느 나라인가 싶습니다. 대한민국은 영웅이 없는 부재의 나라임에도, ‘있는 영웅’마저 깎아내리는 반(反) 역사적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럼에도 장군님께서는 그런 역사의 소인배들까지 너그럽게 포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분이 바로 장군이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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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영웅이자 창군 원로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7월 10일 오후 11시께 별세했다. 향년 100세. 사진은 1953년 1월 31일 한국군 최초 4성 장군에 오른 백선엽. 사진=육군

백선엽 장군님!

 
장군님께서는 100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어가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뛰어난 전공과 국가발전에 대한 지대한 업적으로, 이제 한 세기(世紀)를 풍미하시고 대한민국 불멸의 영웅으로, 또 청사(靑史)에 길이 빛날 역사의 위대한 거인(巨人)으로 남게 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해방과 분단, 6.25전쟁과 전후복구, 5·16과 조국근대화, 대한민국의 선진국 진입이라는 격랑(激浪)치는 우리 민족의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타고난 고매한 인품과 천부적인 두뇌와 건강, 겸손과 배려심, 그리고 남이 도저히 흉내 못 낼 충정과 애국심으로 우리 민족 최대의 위기인 6.25전쟁 속에서 나라를 구한 국난극복의 대명사로서 또 5.16후 일등 외교관 및 산업화의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 세찬 역사의 질곡(桎梏) 속에서 꿋꿋이 이룩하신 전공과 업적은 우리나라 ‘역사의 항아리’에 도저히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칠 지경입니다. 정부수립 후에는 대한민국에 침투한 공산세력을 발본색원하는 숙군작업을 통해 군을 반공정신이 충만한 반공군대로 육성시켰고, 그 과정에서 5·16혁명 후 조국근대화의 영도적(領導的) 지도자가 될 박정희(朴正熙) 소령을 구명(救命)하는 역사적 결단을 보여주셨습니다.
 
6.25전쟁 때는 대한민국의 존폐가 갈리는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낙동강전선의 다부동에서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쏘라!"고 외치며 선두에 서서 돌진함으로써 무너지는 전선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을 구하게 되는 위대한 전공을 세우셨습니다. 인천상륙작전 후에는 한미연합군을 진두지휘하며 김일성(金日成)을 전율케 하는 쾌속진격으로 적의 수도 평양을 빼앗아 통일을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중공군 개입 후에는 빼앗긴 서울을 다시 탈환하여 적의 수도와 우리나라 수도를 모두 빼앗고 탈환하는 세계 전사상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이외에도 후방을 어지럽히는 지리산 빨치산의 완전토벌과 중공군 최후공세를 저지하여 화천발전소를 확보하고, 오늘날 동해안의 휴전선을 북쪽으로 올려붙이는 전공을 세우기도 하셨습니다.
 
군문을 떠나서는 자유중국(현 대만) 대사를 비롯하여 프랑스대사와 캐나다 대사 등 외교일선에서 우리나라 국익을 대변하는 외교전선에서 크게 활약하셨고, 다시 국내에 들어와서는 조국근대화의 대열에 합류하여 충주비료공장 증설과 지하철 건설 등 국가의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이후에는 6·25전쟁의 체험을 책으로 발간하여 국군장병 및 전후세대에게 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깨우침을 주셨고, 한미안보연구회를 설립하여 한미동맹 발전에 누구보다 기여하셨던 군의 큰 어른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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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7월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의 시민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DB

장군님께서는 현역 시절이든 군을 떠나서든 군인적인 삶을 살며 겸손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평생을 남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자신에게는 그 누구보다 엄격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면서 대인(大人)으로서의 풍모도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장군님께서 생전에 사무실에 걸어놓으셨던 글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탄주어불유지류(呑舟魚不遊支流)’와 ‘즐풍목우(櫛風沐雨)’입니다. 앞의 글은 “배를 삼킬만한 큰 고기는 작은 물에서 놀지 않는다"는 것이고, 후자는 “바람으로 머리칼을 빗고, 빗물로 목욕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장군님의 도량과 야전군인으로서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글귀입니다.
 
그런데 민족사적으로 그런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장군님의 죽음을 앞에 놓고, 협량(狹量)의 역사지식으로 ‘친일의 낙인’을 찍으려는 역사의 소인배들에게 통분함과 민족적 서글픔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30세의 청년장군으로 6·25전쟁을 맞이하여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3년 1개월, 37개월 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를 누볐던 장군님에게 대한민국과 국민들은 갚을 수 없는 빚을 졌습니다. 미국 국민들이 입을 모아 전쟁영웅으로 추켜세우고, 한미연합군사령관을 비롯하여 미국의 역량있는 장군들이 너나할 것 없이 존경하고 떠받드는 장군님을 우리나라는 친일의 올가미를 씌어 ‘역사의 죄인’으로 취급하고 있는 서글픈 현실을 볼 때 이게 어느 나라인가 싶습니다. 대한민국은 영웅이 없는 부재의 나라임에도, ‘있는 영웅’마저 깎아내리는 반(反) 역사적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럼에도 장군님께서는 그런 역사의 소인배들까지 너그럽게 포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분이 바로 장군이셨으니까요.
 
이제 장군님과 작별을 고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장군님의 그런 대인다운 퐁모도, 온화한 인품에서 우러나온 수줍듯이 웃는 포근한 미소도, 자나 깨나 군과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모습도 뵐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장군님께서 남기신 불멸의 전공과 업적 그리고 역사의 교훈과 나라사랑의 참뜻은 결코 우리 역사에서도 우리 뇌리에서도 잊혀 지지 않을 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평생을 군과 국가 그리고 국민의 안녕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애국적이면서도 이타적(利他的) 삶을 사신 장군님의 영전에 깊은 경의와 존경의 마음을 바칩니다. 장군님 이제는 모든 것을 잊으시고 영면(永眠)의 복락(福樂)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장군님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2020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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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옥(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도서연구실장, 문학박사)
출처=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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