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오전 잿더미가 된 집을 바라보던 권금순(67)씨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화마가 덮친 강원도 속초시 장천마을은 권씨의 고향, 불에 탄 집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던 곳이다. 이 마을은 이번 화재로 피해가 가장 큰 동네 중 한 곳이다.
 
권씨의 부모님은 10여년 전 세상을 떠났다. 권씨 남동생은 부모님의 집을 떠날 수 없었다. 최근 내부 리모델링을 마쳤고, 담장을 새로 쌓기 위해 새 벽돌 더미도 마련해 뒀다. 화단엔 작은 식물을 심고 가꾸며 살뜰하게 살핀 집이다.
 
"집이 아주 예뻤어, 꾸민다고 화분 같은 것 다 동생이 직접 손으로 만들었고. 어머니, 아버지하고 같이 살던 집인데. 그래서 동생이 다른 데 안 가고 수리하고 산다고 다 이렇게 해 놨잖아. 어머니 아버지가 와서 좀 돌봐주지, 어째서 이렇게 다 타게 만들었을까. "
 
고성에서 난 산불이 장천마을로 번진 지난 4월 4일 오후, 동생 권씨는 집에 없었다. 권씨의 올케는 TV를 보다가 대피 안내문자가 온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불 난것도 몰랐어. 올케가 모르고 있었는데, 뒷집 아저씨가 문을 두드리면서 빨리 나오라고 했다고. 짐도 못싸고 막 나왔지. 뭐, 죽을 뻔 했지."
 
4월 4일 오후 7시가 넘어 인근에 사는 권씨의 집으로 대피한 남동생 내외는 새벽에 다시 장천마을로 돌아와 불타고 있는 삶의 터전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새벽에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했어요. 타고 있는 걸 뭐 어떡해, 보기만 했지. 이렇게 허무하다니까 사람이. 한순간에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한시간도 안 돼서 이렇게 됐으니까."
 
권씨의 동생은 아직도 연기가 나고 있는 집 안을 연신 들여다 봤다. "집을 어떡하면 좋겠냐"며 흐느끼는 권씨를 "아 더 잘 될거야"라고 달랬지만 착잡한 눈빛을 감추지는 못했다.
 
속초 장천마을은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일성콘도 인근에서 약 7㎞ 떨어진 지역이다. 마을의 한 켠이 완전히 불에 타 버렸다.
 
폐허가 된 마을을 둘러보던 주민들은 "아직도 가슴이 벌렁벌렁하다", "사람이 안 다친 것이 다행"이라며 놀란 마음을 다독였다. 노인들이 터를 잡고 사는 마을 특성상 "먹던 약을 하나도 못 가지고 나와서 어쩌냐"는 걱정이 곳곳에서 들렸다.
 
뭣모르는 개들만 재를 묻힌 채 팔랑팔랑 뛰어다니고, 밤새 묶여 있어 연기를 마신 소는 숨이 가쁜지 헥헥대기만 했다. 한 주민은 타버린 소의 등을 한참 보고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 왔다 갔어. 헥헥대는거 연기 마셔서 그런 거래. 얘들 다 죽는대요. 미안하다 진짜,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
 
장천마을에 사는 어머니를 인근 교동초등학교 대피소에 모시고 마을을 둘러보던 지종범(54)씨는 인근 삼환아파트 10층에서 불바다가 되는 장면을 지켜봤다.
 
"강아지나 이런 애들, 소방관들이 그냥 내버려 두더라고. 하나도 안 거둬가고 너무하더라고. 보니까 좋은 차 있고 잘 사는 사람들은 모텔 가거나 자식들이 데리고 가고, 돈 없고 힘 없는 노인네들, 대피한다고 그 바람이 부는데 막 넘어지면서 가는 걸 보니까 마음이 안좋았어요. 시에서 차라도 대절해서 데리고 갔으면 좋았을걸."
 
지난 4월 4일 오후 7시17분께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이 속초, 인제 등 동해안 지역 일대로 번졌다. 정부는 4월 5일 오전 9시부로 강원도 고성군, 속초시, 강릉시, 동해시, 인제군 일원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소방당국은 날이 밝으면서 산림 28대와 국방 13대, 소방 6대, 임차 4대 등 총 51대 헬기를 동원해 진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관련기사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