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입양아 출신 덴마크인 기자 크리스토퍼센씨(32) |
"도박에 빠진 친부 때문에 가정이 깨져 생후 4개월 때 덴마크로 입양됐어요. 그런데 최근 연락된 친오빠도 게임 중독이라네요. 평생 중독의 위험성을 알리고 이들을 치료하며 살 겁니다."
한국 입양아 출신으로 최근 형제자매를 만나러 모국을 찾은 덴마크인 기자 크리스토퍼센(32·여)씨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대표적인 도박의 피해자’라고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크리스토퍼센씨는 6년 전 자신의 뿌리를 찾아 처음으로 한국에 와 친모를 만나고 인생이 180도 변했다. 대학에서 무용을 배운 그가 도박 등 각종 중독을 치유하는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그는 입양기관인 ’한국사회봉사회’와 경찰을 통해 어머니와 상봉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크리스토퍼센씨는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입양된 것은 아버지의 도박중독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아버지는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술에 의지해 살았고, 당시 크리스토퍼센씨를 임신한 어머니에게 폭력을 일삼다 집을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극한 상황에 몰린 그의 어머니는 임신 중에도 술을 입에 댔고, 자살을 수도 없이 생각할 정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 탓에 크리스토퍼센씨는 극도로 허약한 상태로 태어났다.
병원에서는 그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고 먼저 태어난 아들 딸도 돌봐야 하는 어머니는 결국 그를 포기하고 입양을 보냈다.
갓난아기인 크리스토퍼센씨를 입양한 덴마크인 양부모는 뿌리를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친부모가 지어준 이름인 ’기자’를 그대로 사용하게 했다.
친모를 만난 후 그는 도박 중독 치료 봉사 활동을 하면서 대학교에 다시 진학해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자신이 과거 공부한 무용과 상담을 접목한 ’댄스 테라피’를 이용해 아버지처럼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 계획이다.
그는 이번에 두번째로 한국땅에 왔지만 다시 안타까운 소식을 들어야 했다.
어머니는 지병으로 5년 전 세상을 떠났고, 언니는 노숙자처럼 거리를 떠돌며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의 오빠는 컴퓨터게임 중독에 빠져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데다 건강까지 좋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크리스토퍼센씨는 "오빠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중독을 치료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며 "자신감을 갖고 자신을 잘 돌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가족들의 불행이 아버지의 도박 중독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크리스토퍼센씨는 "중독은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가고,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큰 악영향을 준다"면서 "오빠가 지금 게임 중독에 빠진 것처럼 평생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오빠 외에도 많은 도박 피해자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고 외면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도박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과 교류하고 중독 치유 세미나에도 활발히 참석했다.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용산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개장 반대 집회에 참석해 주민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그는 "주민들이 2년 이상 반대했음에도 화상경마장이 운영 중이라고 들었다"며 "현실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않고 계속 목소리를 높여 잘못된 점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덴마크와 달리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는 실수했을 때 스스로 부끄러워하다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독됐다고 느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면 멈출 수 있어요." ■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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