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빠이! 살려줘요. 뽀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팔뚝에 문신을 새기고 담배를 물고 있던 낙천적인 뽀빠이는 연적 부르터스로 인해 고난에 빠진 연인 올리브 오일을 항상 구해냈으며, 그 힘이 오로지 시금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시금치가 뭐길래 먹기만 하면 힘 불끈 솟아나는 것인지, 마치 외계인으로부터 지구까지 구해낼 힘의 원천인 듯 했다.
시금치는 당시 미국 정부가 시금치 소비량을 늘이기 위해 만화영화로 기획했다고 들었다. 또한 이 만화영화 덕분에 미국 내 시금치 소비량이 30%나 증가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시금치 강제판매를 했다고 ‘뽀빠이’라는 만화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반면, 미국의 의학계에서는 뽀빠이 만화의 영향으로 당시 미국내 어린이들이 시금치를 많이 먹을 수 있었고, 덕분에 시금치가 미국인의 평균키를 올리는데 기여했다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과연 시금치에 들어있는 영양소가 무엇이길래, 다소 과장된 표현이었지만 ‘힘 불끈, 급성장’을 할 수 있는데 기여했단 말일까. 다름 아닌 엽산 때문이다. 엽산은 비타민B군에 속하는 복합체의 하나로 채소의 잎에 다수 포함되어 있는 영양소를 말한다.
본래 엽산이라는 말이 라틴어에서 초록색의 식물의 잎을 뜻하는 ‘folium’에서 유래되어 ‘엽산(folic acid)’으로 명명되었다. 그 어원에서 보듯이 시금치,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양배추 등의 채소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 밖에 소간이나 닭간, 연어, 달걀, 해조류, 통밀 등에도 엽산이 다량 들어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엽산을 섭취하면 힘 불끈, 몸 튼튼 성장을 할까?
엽산은 아미노산과 핵산의 합성에 필수적인 영양소다. 또한 비타민12와 결합해서 성장 발달과 적혈구 생산에 관여하므로 빈혈을 방지한다.
뭐니뭐니해도 ‘엽산’하면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이 세포분열에 관여하는 막중한 임무일 거다. 엽산이 부족하면 몸이 세포분열을 할 수가 없다. 사람의 몸은 다양한 세포들로 이뤄져 있으며, 이 모든 세포는 제각각 때가 되면 생사(生死)를 거듭하고 있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사멸하고, 다시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야 건강한 몸으로 살아갈 수 있다.
특히 건강한 아기를 잉태해야 할 가임여성이라면 엽산섭취가 아주 중요한다. 정자와 난자가 무사히 수정이 된다고 해도 세포분열이 끊임없이 무사히 잘 이뤄져야 온 몸을 이루는 기관과 장기 등이 만들어진다. 엽산이 부족하면 DNA와 RNA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자칫 신경관 결손 같은 기형아가 발생할 수 있기에 산부인과에서는 엽산섭취를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거다. 한마디로 조산, 유산, 기형아 예방차원 등 건강한 생명잉태를 위해 엽산은 매우 중요하다.
남성들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불임의사들이 정자상태가 좋지 않은 남성들에게 적극 엽산을 적극 권하고 있다. 엽산이 남성의 정자 상태를 유지하는데 효과가 있어서다. 남성의 정자, 즉 수천마리의 정자 세포를 만드는 일은 엄청난 길이의 DNA를 생산해내는 일이며 여기에 엽산이 관여한다. 최근 하버드 의대에서는 엽산을 섭취한 남성과 그렇지 않은 남성의 정자 숫자 차이가 2배 이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만약 알코올 섭취가 잦다면, 엽산을 좀 더 챙겨먹으라고 권하고 싶다. 또한 비타민C 고용량을 복용하게 될 경우, 엽산 배설량이 증가하므로 좀 더 용량을 늘이는 게 좋다.
한국인의 권장 섭취량은 1일 400mcg(마이크로그람). 임신 준비를 하거나 임신 중이거나 수유중이라면 좀 더 복용해도 된다. 만약 유산을 여러차례 경험했다면 기본 권장용량에서 좀 더 늘여도 된다. 단, 몸에서 엽산이 흡수되는데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의사와 상의해서 고용량의 엽산을 처방받는 것이 좋을 거다.
간혹 필자의 약국을 찾는 고객 중에는 “엽산을 섭취하면 암 걸리나요?”라고 질문하는 이들이 있다. 최근 엽산 섭취가 유방암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 때문도 없지 않을 거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누구라도 엽산과 세포의 성격이라는 정확한 의학적 기전을 알고 나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엽산이 암 발병?”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이는 엽산을 다량 섭취하면 세포분열을 좀 더 빨리 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나온 얘기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엽산이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지 오래라는 거다. 엽산이야말로 건강한 세포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는 핵심 영양소이며, 우리 몸에 이처럼 효자 영양소가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채식의 민족이 아니라 육식의 민족이 된 것 같다. 비단 회식 때가 아니더라도 집집마다 식단에 육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래서 엽산이 부족하기 쉬운 먹거리 문화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사실 채소를 맛으로 먹기 보단 건강을 위해 먹다보니 식생활에서 애써 챙겨먹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완연한 봄이다. 재래시장에 가면 제철 채소와 과일이 차고 넘친다. 엽산 듬뿍 든 영양제를 찾아보는 것도 권할 만하지만, 엽산 위주로 식단을 꾸며보는 것도 가족을 위한 무한 사랑의 실천이자 봉사가 아닐까 싶다. ‘힘 불끈, 튼튼 성장’을 위해서 말이다.
▶ 최미영 약사는 1968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약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한국 임상 양병약학회 전문강사 및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하정헌 임상병리학연구회 전문강사 및 정회원. 메디팜 고성왕약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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