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조엘의 ‘Stranger’라는 노래는 이런 가사로 시작됩니다.


“우린 누구나 타인에게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아 꼭꼭 숨기고 있는 얼굴이 있죠.”


타인들은 모르는, 결코 들키고 싶지 않은 또 다른 나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살고 있는 상처받은, 아직 상처받던 그 순간에서 자라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어린 아이이곤 하죠.

 
이 아이는 대부분의 경우 태어나서 첫 3년 동안, 부모로부터 진심어린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며,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 받을만한 자격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이라고 믿게 된 불쌍한 아이죠. 생존을 위해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보호자에게 버림받거나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란 이 미운 오리새끼는, 이제는 자라서 백조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스스로를 미운 오리새끼라고 믿고 있죠. 그래서 보통 때는 백조인양 당당하고 자신 있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다가도,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아주 사소한 일과 맞닥뜨리게 되면, 마치 다시 어린 시절의 상처를 받은 것처럼 흥분하고 두려워하며 방어 태세를 갖추곤 합니다.

 
그 아이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현재의 사건은 과거의 그 아팠던 경험과 전혀 혹은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픈 상처가 건드려진 이 아이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감정적인 판단에만 의존하게 됩니다. 그래서 과거의 상처에 비해 그 강도가 아주 약한 자신감이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에 대해, 과거 고통스러웠던 모멸감을 겪었던 심한 상처에 반응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크게 반응을 하며, 과거의 상처를 현재로 다시 이끌어 내오는 것입니다. 과거에 심하게 받은 상처를 현재에서 계속 되풀이해서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솥뚜껑과 자라를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늘 자라만 보며, 가상의 자라에게 물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거의 상처를 재경험하기를 되풀이 하는 사람들은 그 반응방식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됩니다. 한 쪽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대상에게 격렬하게 저항하고 분노를 표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애착이론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저항적 애착유형의 인간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비난 받고 혼나고 비교당하는 등, 부정적인 감정 표출을 많이 겪으며 성장한 사람들이죠. 보고 배운 것이 감정적인 언행들뿐인지라, 이들은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격분하고 반격을 시도합니다. 감정 조절 능력을 아주 쉽게 상실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내가 받은 상처만큼, 아니, 오히려 그 보다 더 큰 상처를 되돌려주고 싶어 하죠. 사실은 상대가 준 상처는 스스로가 오해한 것이거나, 상처를 받았다 해도 그리 큰 것이 아니었는데도, 과거의 상처를 불러내어 과잉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항적 애착 유형의 인간들은 자신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기 때문에, 끝나지 않는 전쟁을 하며 살게 됩니다. 공격을 받은 상대방도 가만히 있지는 않으니까요. 결국 다시 상처받지 않겠다고 한 반격, 즉 문제 해결 방법 때문에 계속 싸우게 되고, 더 깊은 상처를 받고, 그 사람과 다시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죠.

 
안 봐도 되는 사람과 싸운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마음의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나와 가깝고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하고 내가 기대를 많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반격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주고 돌봐줄 사람들을 잃고, 더욱 더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곤 합니다.

 
반대로 자라며 받은 상처가 너무 크거나,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인정한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숨어버립니다. 이런 사람들을 회피적 애착유형의 사람들이라고 하죠. 어린 시절 배척을 당했거나, 돌봄을 받기는커녕 살아남기 위해 눈치를 봐야 했거나, 오히려 부모를 돌봐야 했던 아이들, 두려움과 절망의 늪에 빠졌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절망을 경험하며 자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상처를 받으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과 극복했던 경험이 없기에 쉽게 포기하고 움츠러들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쉽게 우울증에 걸리고, 의욕을 상실하고, 스스로를 비하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죠. 또, 더러는 더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상처를 주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눈치를 보며 노예처럼 살아가기도 하죠.

 
그러나 상처가 두려워서 물러나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며, 스스로를 탓하는 것은 자신을 더욱 더 비참하게 만들 뿐입니다. 자기 연민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으니까요.

 
내가 왜 마음의 상처를 잘 받고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가를 잘 파악하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과, 혹은 이 세상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해서 불행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되풀이 하는 행동 패턴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과거를 현재에서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과, 세상과 불화를 겪게 되는 것이죠.

 
용기를 내서 둘러보세요. 나는 이제 힘없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세상이 나를 학대하거나 무시하는 어른에 의해 지배되는 곳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확인하세요. 지혜를 발휘해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세요. 자라는 자라고 솥뚜껑은 솥뚜껑일 수 있게 해주세요.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 뿐입니다. 그 과정을 시작할 수만 있다면, 선의를 가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쓴 김창기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현재 김창기정신과의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연세대의대와 성균관대의대에 외래교수로 출강 중이다. 1988년 그룹 ‘동물원’ 멤버로 ‘거리에서’로 데뷔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작년 동물원 데뷔 25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으며 올해 초 ‘평범한 남자의 유치한 노래’란 네 번째 앨범을 내는 등 가수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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