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마음의 상처를 받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어떤 말이나 행동 때문에 평정심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자신감이 균형을 잃고 열등감으로 기울게 되었을 때, 자신이 원하는 상태에 어쩔 수 없이 처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하죠.


인간이 상처받게 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나의 신체에 가해나 위협을 받았을 때입니다. 이때는 신체와 마음이 모두 상처를 받지요. 두 번째로는 나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무시를 당했을 때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장 흔한 마음의 상처의 원인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나의 신념이나 신앙을 억압받거나 무시당할 때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현대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죠. 결국 현대의 인간이 가장 흔하게 받게 되는 상처는 바로 두 번째,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서, 억울하거나 열등감에 빠지게 됐을 때인 것이죠.


상처를 받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간은 함께 모여 사는 동물인지라 상처를 피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가장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의지하는 대상에게 가장 큰 마음의 상처를 받곤 하니까요.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기대가 클수록, 그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판단했을 때 느끼는 실망과 슬픔과 분노는 더 큰 것이니까요.


오래 지속되는 마음의 상처는 내게 중요한 대상에게 사랑과 인정과 위로를 받지 못했다고 판단하였을 때, 무시당하고 거절당했다고 판단하였을 때 느끼게 되는 열등감과 슬픔입니다. 그런 때에는 나에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만든 대상에 대해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보면, 별 것 아닌 말 한마디가 무슨 그리 큰 상처가 되느냐고 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그리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 못하죠. 마음의 상처는 자신감을 흔들어 꺾어버리고,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회의에 빠지게 만들고, 인간을 불안과 분노의 불구덩이에 밀어 넣고, 결국에는 절망하게 만들어 깊은 우울함에 빠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행히 마음의 상처를 잘 극복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그 상처를 오래 끌어안고 스스로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주변의 사람들까지도 고통의 지옥 속에서 살게 합니다.


복잡한 이야기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사실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결국 열등감으로 기울었던 마음을 다시 자신 있는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죠. 혼자의 힘으로 안 될 때에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요. 대부분의 경우 타인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나게 되곤 하죠.


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괜찮다고, 물론 어떤 면은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하지 않고 지적하거나 보여주었듯이 모자란 부분이 있지만, 다른 부분들은 꽤 괜찮은 부분이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죠.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할 때가 더 많아요. 특히 나와 가깝고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주었을 때는 특히 더하죠. 그럴 때에는 나의 편이 되어주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하게 되죠. 그들로부터 내가 아무리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나의 편이라는, 나를 사랑하고 존중해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과 존중과 이해를 확인하고 믿음으로써, 나의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죠.


저에게는 특히 저의 아이들이 가장 좋은 치료제랍니다. 아이들이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하며, 제 가치를 확인하고, 또한 제가 더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고, 저를 재무장시키는 것이죠. 대부분의 인간들이 아마 저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저마다 약한 부분, 취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약한 곳이 건드려졌을 때 가장 큰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죠. 대부분의 경우 그 약한 곳은 (내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한두 명의 나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죠.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는 못 해도, 최소한 내게 중요한 한두 명에게는 진정으로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것이죠.


그러한 믿음은 결국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시작되고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상처를 잘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주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진심어린 사랑과 따뜻한 배려를 경험하지 못하였거나, 중요한 사람을 잃었거나 버림받았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큰 배신을 당했던 사람들인 것이죠. 그들은 세상과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을 쌓지 못한 채 성장하여, 조금만 기분이 상해도 쉽게 상처받고, 마음의 문을 닫고, 다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재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거나 박탈당했었다면, 지금이라도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위로받고, 인간을 통해서만, 그들의 사랑과 도움을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고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경험을 통해서만 과거의 마음의 상처를 떨쳐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경험이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이 글을 쓴 김창기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현재 김창기정신과의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연세대의대와 성균관대의대에 외래교수로 출강 중이다. 1988년 그룹 ‘동물원’ 멤버로 ‘거리에서’로 데뷔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작년 동물원 데뷔 25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으며 올해 초 ‘평범한 남자의 유치한 노래’란 네 번째 앨범을 내는 등 가수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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