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도 막바지에  접어드는 것 같다.

  

 

뉴델리와 바라나시에서의 복잡함과 혼란스러움, 우다이푸르와 자이푸르에서 느꼈던 찬란했던 왕조시대의 유물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인도의 미래나 비전을 말하기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시대와의 단절. 수백 년 전 화려했던 왕조시대는 현재진행형이었다.

 

 

그 마지막 유물들을 보기 위해 우리는 아그라로 향했다.

 

      

 


우리는 아그라로 오기 위해  뉴델리 역 외국인 관광사무실에서 특급열차를 예약하고 다음날 새벽 열차를 탔다. 아그라까지는 2 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다.
 
열차는 침대칸이었다. 객차 안에는 우리 말고 부부인 듯한 현지인 한 쌍이 타고 있었다. 객실은 썰렁했다.
 
십여 분 지나자 담요와 바닥에 깔 수 있는 침대 보를 갖다 주었다. 가는 동안 도시락도 주었는데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얼마 지나  화장실을 들어갔다가 급히 나왔다.
 
세면대고 변기고 청소를 하지 않아 일을 보고 손을 씻기조차 거북할 정도로 더러웠다. 특실이 이 정도이니 일반 객실은 어떨까 생각하니 속까지 거북해졌다.
  

 


아그라 역에 도착하자 처음으로 반긴 것은 하늘을 뒤덮은 까마귀 떼였다. 그리고 릭샤와 관광택시 호객꾼들이었다. 그중 한 명을 따라 페이드 택시와 같은 사무실로 가서 하루 대절 요금을 지불하고 승용차에 올라탔다.
 
에어컨이 나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낡고 오래된 소형 승용차였다. 그 차의 운전사는 유창한 영어로 "오늘은 타지마할에 인도 수상이 방문하기로 해서 오후 3시에나 개장을 한다" 며 우선 아그라 성으로 차를 몰았다.
 

 


아그라 성은 야무나 강변에 세워진 화려했던 무굴제국의 성궁이었다. 1565년 무굴제국의 제3대 악바르 황제에 의해 붉은 사암으로 지어졌다.
 
특히 건축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제5대 샤 자한 황제에 의해 궁성으로 개조되면서 화려한 건축물들이 증축되기 시작했다. 아그라 성은 198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그라 성은  어디에서 보아도 침투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견고하게 지어졌다. 높이가 20m, 길이가 2.5km나 되는 성벽이 이중으로 성을 감싸고 있다.
 
하지만 견고한 성벽과는 다르게 감춰진 내부는 화려하고 아름답다.
 

 


 
 
성궁 안으로 들어오면 첫 번째 마주치는 것이 디완이암(Diwan i Am)이다. 
 
1628년  샤 자한 황제가 세운 연회장 겸 강연장이다. 붉은 사암으로 만든 뒤  백색 치장 벽토로 장식했다.
 

 
 다완이암 건축물 옆 담장 너머로 순백색의 모스크 사원 지붕이 보인다.
 

 

다완이암 앞은 널따란 광장으로 이슬람 형식을 따른 잔디밭이 조성돼 있다.
 


아그라 성 안에는 여러 개의 아름다운 모스크가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샤 자한이 만든 모티 마스지드(Moti Masjid)이다.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사원으로 '진주 모스크'라고도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조형미를 자랑한다는데  일반 관광객들의 출입을 제한해 아쉬움이 크다.

 

 

 


궁녀들을 위한 사원인 나기나 모스지드, 황제의 개인 예배실로 규모가 작은 미나 모스 지드 등도 있다.
  

 


출입이 제한된 문은 자물쇠로 굳건히 잠겨 있다. 꽃문양의 아치형 장식이 눈길을 끈다.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그녀의 뒷모습을 촬영해 SNS를 뜨겁게 달궜던 러시아 커플의 모습을 재현해 보는 인도 커플.
  

 

 

 
하얀 대리석으로 지은 카스(Khas) 궁전은 크고 작은 건축물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이슬람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궁전들의  정원에는 엄청난 크기의 테라스와 분수대가 조성돼 있다.
  

 

 

 

곳에서 샤 자한이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아내 뭄타즈 마할(Mumtax Mahal)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낳은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유폐 생활을 했다.
  

 

 


샤 자한은 그의 치세에 안정과 번영을 일구었다고 한다. 그의 궁정을 둘러 본 외국사절들도 궁정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샤 자한이 말년 병고에 시달리는 사이 왕위 계승을 위한 왕자의 난이 일어나 삼남 아우랑제브가 왕권을 차지하게 된다. 이때  장남은 참수에 처해지고  샤 자한은 아그라 성에 유폐된다.
 

 

 

 

샤 자한이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되었던 곳이  '포로의 탑'이라고 불리는 무삼만 버즈(Musa mman Burj)였다. 
 
8각형의 커다란 탑에 갇혀 사랑했던 아내의 무덤만 바라보다 1666년 1월 코란의 구절을 암송하면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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