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일생은 10년에서 15년입니다. 당신과의 이별이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저를 오랫동안 꾸짖거나 벌(罰)로써 가두지 마십시오. 당신은 다른 할 일이 있고, 재미있고, 친구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당신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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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안고서 행복해하는 Y씨(왼쪽)와 그의 강아지 가족 사진.

필자의 지인 중에 개를 사랑하는 Y(75)씨가 있다. 길을 가다가도 누군가가 개를 데리고 가면 눈을 맞춘다. 어느 날 밤 어떤 아가씨가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걸 보고서 말을 걸었다.
 
“강아지 너무 예쁘네요. 이름이 뭐에요?"
“나쵸(Nachos)입니다."
“이름도 예쁘네요. 한 번 안아 봐도 될까요?"
“그렇게 하세요. 선생님도 개(犬)를 좋아하시나 봐요?"
“네. 좋아합니다. 엄마·이모·아들 세 마리를 키웠는데 아들마저 지난해에 저세상으로 떠났거든요. 그래서 강아지를 보니 아이들 생각이 나서 말을 걸었어요."
 
다른 사람의 개를 안고 있는 Y씨의 모습에서 밤길 찬바람 아닌 훈풍이 느껴졌다. ‘한 마리 키우는데도 버거운 데 3마리를 키웠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닌가. Y씨는 진정으로 개를 사랑했다.
 
“엄마의 이름은 비티, 이모의 이름은 예리, 아들의 이름은 소망이었습니다."
   
Y씨는 휴대폰에 저장된 강아지의 사진을 필자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특히 아들 강아지의 이름을 소망으로 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강아지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기 때문이다. 소망(所望)대로 아들 강아지가 16년을 살았다.

진정으로, 개를 좋아하는 일본인
 
필자가 아는 일본인 중에 정말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이노우에 유코(井上裕子). 필자는 후쿠오카(福岡) 공항에서 전화를 걸었다. 코로나19가 생겨나기 전의 일이다.
 
“부인! 아직도 개를 키우고 계시죠?"
“아닙니다. 개가 얼마 전에 죽어서 지금은 개를 키우지 않습니다."
 
‘아뿔싸!’
 
필자는 ‘개를 사랑하는 사람’의 테마로 글을 쓰기 위해서 전화를 걸었으나, 방향이 틀려버렸다. 아무튼, 유코(裕子)씨의 집으로 갔다. 그녀의 남편 이노우에 신지(井上伸史/오이타현 의회의장)씨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부인은 언제나처럼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필자를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세요."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대화하는 동안, 그녀는 ‘개의 십계(犬の十戒)’에 대해서 말했다.
 
“일본에 개의 십계명이라는 시(詩)가 있습니다. 작자 미상인 ‘노르웨이’의 어느 시인이 썼다고 합니다."
“그런 시(詩)도 있나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낮은 음성으로 시(詩)를 읊었다. 물론, 개를 의인화(擬人化)한 것이었다.
 
“저의 일생은 10년에서 15년입니다. 당신과의 이별이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저를 오랫동안 꾸짖거나 벌(罰)로써 가두지 마십시오. 당신은 다른 할 일이 있고, 재미있고, 친구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당신 밖에 없습니다."
 
필자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너무나 와 닿는 말이어 서다.
 
“첫 번 째 개(히로짱)는 18년간 살다가 죽었어요. 얼마 전에 죽은 개(히카루 군)는 16년간 저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생을 마칠 때까지."
 
유코 부인은 개가 죽을 때, 자신의 팔을 베고 숨을 거두는 모습을 연상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녀의 말이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할 것이다. 따뜻한 마음이 없으면 사랑이 싹트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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