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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발간한 故 가나야마 대사의 일한 신시대의 꿈.

 

<내가 한국과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은 주한대사로 임명된 것이 인연이 되었다. 2대 주한 대사로 내가 서울에 부임한 것이 깊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재임 중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관민의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따뜻하게 맞아준 것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개인의 만남과는 별도로 공적인 입장에서의 일한관계에 있어서의 문제는 한국민의 일본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36년간 총독부의 지배에 고통을 받았던 한국민의 일본에 대한 불신감은 당연하다. 또한 근저에 깊게 깔려 있는 ‘과거를 반성하고 금후의 일한관계를 위해서 노력하고 싶다’라는 것이 그 당시 나의 한국민에 대한 솔직한 마음이었다.>

일본이 과거를 반성해야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1909-1997) 대사는 저서 <일한 신시대의 꿈>에서 이렇게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일본이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신뢰관계를 구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것도 첨언했다.
 
<과거의 불행한 역사 위에 새로운 일한양국의 신뢰관계를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절대적인 과제이고, 또한 그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 당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선 서로를 아는 것이었다. 올바른 지식 위에서만이 상호 신뢰관계도 성립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어느 한 쪽만이 일방적으로 좋다고 하고 다른 한 쪽이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서로가 좋아지는 도리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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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가나야마 마사히데 대사.

그러면서 가나야마 대사는 책에서 ‘파고다 공원은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했다.

 

<서울에 있는 파고다 공원은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이다. 그곳을 방문하는 일본인의 숫자는 많지 않으나 나는 재임기간 중 일본인 지인들에게 파고다 공원에 가서 그곳의 벽화를 보도록 권장한다. 나 자신도 일본의 국회의원들이 오면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화했던 1945년 이전의 총독부시대에 일본이 한국 민에게 행한 부정과 굴욕감을 일본인 자신들이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역사적인 사실로서 보지 않고 금후의 일한문제를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통감하고 있다.>
 
파고다 공원에 일본인들을 안내해
 
가나야마 대사는 3·1운동의 발상지인 파고다 공원을 수시로 다니면서 일본 사람들에게 ‘이들의 아픔을 알아야한다’고 했다. 일본인들에게 파고다 공원의 벽화를 보도록 권장하면서 때로는 자신이 관광안내원 역할을 한 것이다.
 
3·1 운동은 파고다 공원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해외로 번져나갔다. 우리 겨레의 거룩한 용기와 희생, 인류 평화와 독립을 외친 곳이니 성지임에 틀림없다. 가나야마 대사는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국과의 정이 깊어진 것이다.
 
가나야마 대사는 1969년 3·1운동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일 수교 54년의 역사에서 3·1절 행사에 참석한 유일한 일본 대사이다. 1972년 퇴직한 가나야마는 ‘현해탄의 가교’라는 글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과거 일본 관헌(官憲)이 자행한 것이 불행하고 나쁜 짓이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일본 대사가 한국 국민의 감정을 자극할까 두려워서 언제까지나 3·1절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한국 정부와 국민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주한 일본대사가 어떻게 이러한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토록 성스러운 의미의 파고다 공원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나야마 대사의 책 <일한 신시대의 꿈>은 필자에게 그러한 생각을 들게 했다.
 
“나의 시신은 한국 땅에 묻어 달라. 나는 죽어서도 일한 간의 친선과 친화를 돕고, 지켜보고 싶다."
 
가나야마 마사히데 대사는 이러한 유언을 남겼다. 유언대로 그는 경기도 파주시 정문로에 있는 하늘묘원에 묻혔다. 죽어서도 두 나라의 친선과 친화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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