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제 침체가 쉽게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행동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이다. 경제학에 인지심리학이 융합된 행동경제학은 주류 경제학의 표준 모델인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을 수용하지 않는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춘 존재이다. 첫째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을 최대화하려는 인간이며, 둘째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제적 가치(효용)를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인간이다. 말하자면 신고전파 경제학은 경제 주체가 이기적이며 완전히 합리적인 존재라고 전제한다. 그러나 1979년 태동한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는지 고찰한다.
 
2008년 행동경제학 서적이 잇따라 출간되었다. 2월 댄 애리얼리의 '상식 밖의 경제학(Predictably Irrational)', 4월 리처드 탈러의 '팔꿈치로 슬쩍 찌르기(Nudge)', 6월 오리 브래프먼의 '편향(Sway)'이 나왔다. 이 책들을 훑어보면 인간이 얼마나 불합리한 행동을 일삼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행동경제학의 유망주로 떠오른 애리얼리는 그의 출세작에서 쇼핑, 폭식, 음주, 섹스, 게으름, 부정행위 등 일상적인 행동을 분석한 실험결과를 소개하고 결국 인간이 비이성적 존재임을 부각시켰다.
 
지난 1월 말 미시간대 심리학자 피터 우벨이 펴낸 '자유 시장 광기(Free Market Madness)' 역시 행동경제학의 맥락에서 인간 본성의 불합리한 측면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우벨은 미국 경제 불황의 원인으로 인간의 불합리한 성향과 함께 탐욕을 먼저 꼽고 미국인의 타고난 낙천주의와 무지를 덧붙였다. 사람들은 호주머니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외상으로 물건을 사들이고, 살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이스크림을 먹어대고, 이자 갚을 계획도 궁리하지 않고 은행 돈을 빌려 쓴다.
 
우벨은 이러한 충동적 행동이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고 진단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강조했다. 미국인의 무지가 경제 불황의 빌미가 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우벨은 많은 미국인이 간단한 계산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성인의 3분의 1이 1000의 10%가 얼마인지 계산을 못 한다는 것이다. '% 개념'이 부족한 사람들은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의 연체율을 이해할 턱이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금융 위기의 단초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우벨에 따르면 미국인의 타고난 낙천주의가 경제 위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가령 소득이 주택담보대출의 이자를 감당할 만큼 빠르게 증가하거나 집값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앞지를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뜻이다.
 
우벨은 인간이 불합리한 행동을 하는 까닭은 의지력의 한계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담배가 폐암의 원인인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고, 아침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말을 듣고도 늦잠 자는 것은 의지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우벨의 충고대로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실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삶을 누리게 될 터이다. 출처=조선일보 ‘이인식의 멋진 과학’ 2009년 5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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