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신고자 보호를 대폭 강화해 부정부패와 타협하지 않은 공익신고자들이 더는 눈물 흘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이 부패와 공익침해 행위에 대해 침묵하지 않을 때 청렴 한국을 실현하고 선진국 수준의 국가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공익신고자 보호 강화 방안’ 중 일부)”
청와대가 임종석 비서실장 명의로 김태우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고발한데 이어 기획재정부도 신재민 전(前) 사무관을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 즉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는커녕 법의 이름으로 부당한 압박을 행사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내부고발자의 목소리에 겸허하게 스스로를 되돌아보기는커녕 어떻게든 사건을 은폐·축소하려는 후안무치(厚顔無恥)다.
     
먼저 판례는 “형법 제127조의 공무상 비밀 누설죄는 '비밀' 그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의 비밀 누설에 의하여 위협받는 '국가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또한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이란 '실질적으로 그것을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18. 2. 13. 선고 2014도11441 판결 등).
    
이와 같은 법리와 판례에 비추어 과연 신 전 사무관의 폭로가 공무상 비밀 누설에 해당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청와대에서 KT&G 사장을 바꾸라고 기재부에 지시를 내렸다"는 문건 폭로의 경우 기재부는 “소관 업무가 아닌 자료를 '편취'해 이를 대외 공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지만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편취(騙取)'란 기망을 통해 자료를 불법으로 취득하는 것을 말하는데 신 전 사무관의 경우 악의로 문건을 편취한 것이 아니라, 차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대기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문건을 발견하고 부당한 내용으로 판단해 언론에 제보한 것이 아닌가.
  
만약 청와대가 KT&G 사장을 표적으로 부당한 교체를 시도했다면 이야말로 민간기업에 대한 부당한 인사 개입으로 과거 조원동 경제수석의 CJ 이미경 부회장에 대한 퇴진 압력과 무엇이 다른가.
    
한편 임종석 비서실장은 국회에서 기재부의 KT&G 사장 인사 개입 의혹에 대해 "매우 가상한 일"이라고 했는데 이 또한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국민의 돈이 일부 들어갔다는 이유로 정부가 단 한 주(株)의 주식도 직접 갖고 있지 않은 순수 민간 기업의 경영에 개입한다면 국민연금의 삼성 합병에 대한 정당한 의결권 행사까지 처벌한 전 정권과 너무 형평에 반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작년 KT&G 관련 동향 문건이 공개됐을 때 기재부는 "실무자가 작성한 것"이라며 꼬리 자르기에 나섰고, 청와대는 기재부 공무원들을 상대로 대대적 감찰 조사를 벌였는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대로 ‘가상한 일’이라면 왜 훈장을 주지 않고 특별감찰반까지 동원해 휴대폰을 빼앗고 문건 유출자를 색출하는가.
     
결국 위 폭로 내용은 실질적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이에 의해서 어떠한 국가 기능이 침해된 것도 없으며, 오히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청와대의 부당한 인사 개입을 알렸다는 점에서 당연히 죄가 되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2017년 11월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의 국가부채 비율을 높이려는 ‘정무적 이유’로 4조원 규모의 국채 발행과 1조원의 국채 상환 취소를 강요했다는 신 전 사무관 ‘폭로’의 경우 더욱 죄가 안 된다.
     
2017년의 경우 세금이 예상보다 23조원이나 더 걷혀 나랏빚을 갚을 여력이 생겼는데도 거꾸로 나랏빚을 더 늘리려고 했다는 것은 불필요한 이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심각한 배임의 국정농단으로 오히려 국익을 위해 국민들에게 알려야하기 때문이다.
   
신재민 전 사무관은 1일 모교 인터넷 커뮤니티 ‘고파스’에 올린 글에서 국채 발행 외압 의혹의 증거라며 2017년 11월 14일 기재부 간부들과 주고 받은 카톡 채팅방 캡처 이미지를 공개했다.
 
이에 의하면 기재부 차관보가 “핵심은 2017년 국가부채 비율을 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귀를 의심케 하는 충격적 발언이다. 이것이 과연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공직자의 발언인가. 국가부채 비율은 거시건전성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지표로 줄였으면 줄였지 어떻게 부풀리려 한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 기재부는 “당시 치열했던 내부 논의 및 의사결정 과정에서 국채 발행은 국가채무 규모 특히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과 직결되는 것인 만큼 중기(中期) 재정 과정에서 국가채무의 큰 흐름을 짚어보는 과정에서 나온 의견"이라고 밝혔다. 원론적 의견으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궤변이다.
   
당시 기재부는 국채 매입 입찰(buy back)을 하루 앞두고 돌연 취소했는데 이것이 과연 중기 재정 과정에서 국가채무의 큰 흐름을 짚어보는 과정에서 나온 의견인가. 하루 앞두고 돌연 취소하면 채권시장에 엄청난 혼란을 주고 금리도 왜곡되게 되는데 왜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는가.
   
또한 기재부는 “설사 추가 발행을 통해 2017년 국가채무 비율을 높인다 해도 이는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 비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 첫해 국가채무 비율이 되는 것이어서 그럴 이유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 또한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 견강부회(牽强附會)다. 국가부채 비율은 전임 정권의 마지막 해와 현 정권의 마지막 해를 비교할 수밖에 없으므로 '5월 장미 대선'으로 집권한 현 정권의 경우 얼마든지 분식회계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채 관련 의혹의 경우 통계의 신뢰성 차원을 넘어 정부의 도덕성과 국가신인도까지 직결된다는 점에서 기재부는 부적절한 해명보다 먼저 철저한 진상규명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신 전 사무관은 행시 재경직 합격자 중에서도 성적이 우수한 엘리트들이 가는 기재부에서 약 4년간 일하면서 '좀 더 나라다운 나라, 좀 더 좋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염원으로 공무원 신분으로 촛불까지 들었다고 유튜브를 통해 밝혔다.
 
그는 또 이번 폭로에 대해 자기 뒤에 어떠한 집단이나 정당도 없으며 오직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이라고 밝혔다. 바로 이 시대의 여느 젊은이처럼 '공정'과 '정의'를 가장 중시한 것이다.
      
그런데 '촛불정신'을 그토록 자처하던 현 정권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고발부터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기재부는 당장 고발을 철회하고 이번 폭로를 국정 스타일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행여나 전(前) 정부가 저지른 잘못을 현(現) 정부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지 전복후계(前覆後戒)로 삼아야 한다.
        
“공익신고자 보호를 대폭 강화해 부정부패와 타협하지 않은 공익신고자들이 더는 눈물 흘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이 부패와 공익침해 행위에 대해 침묵하지 않을 때 청렴 한국을 실현하고 선진국 수준의 국가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2017년 6월 27일 대통령인수위원회를 대신해 출범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공익신고자 보호 강화 방안'을 현 정권은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초심(初心)을 잃은 정권이 성공한 예는 역사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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