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저출산·고령화 문제 전문가가 일본의 저출산 요인으로 ‘남성 중심의 일문화’를 꼽았다. 쓰쓰이 준야(筒井淳也) 리쓰메이칸대 산업사회학부 교수는 지난 5월 31일 서울 소재 주한(駐韓)일본공보문화원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감기약 먹고 일하는 직장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며 남성 중심의 일문화를 출산율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고 중앙일보가 지난 7일자 신문을 통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쓰쓰이 교수는 “유럽에선 감기에 걸리면 회사를 쉬는데 일본인은 약을 먹고 일한다"며 “이런 직장문화가 여성의 사회참여와 (가정 내 소득 증대를) 가로막아 결국 출산율을 낮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는 한일문화교류회의와 주한(駐韓)일본공보문화원이 공동주최하는 첫 한일사회문화세미나로 양국이 동시에 겪고 있는 사회문제를 함께 고민하자는 차원에서 기획됐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김상진 기자는 최근 연수생 자격으로 일본 도쿄에 1년간 거주하며 일본 사회를 연구했다. 김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강연자로 나선 쓰쓰이 교수는 현재 일본 내각부 저출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저출산 정책 방향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저출산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쓰쓰이 교수는 이번 세미나에서 “한·중·일·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인 저출산 배경을 안고 있다"며 “서구 사회와 달리 혼외 출생 비율이 매우 낮아 혼인율 저하가 출산율에 직격타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1970년 이후 출산율 저하 요인 중 90%가 미혼화(未婚化)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남성의 ‘미혼(未婚)’이 더 큰 문제라고 한다. 쓰쓰이 교수는 “일본의 생애미혼율(태어나서 50세까지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의 비율)을 보면 남성은 4명 중 1명꼴이고, 여성은 7명 중 1명꼴"이라며 “남성의 비율이 높은 건 이상한 사회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못·남’의 급증 원인과 관련해 ‘미스매치(mismatch) 가설’을 들었다. 여성이 자신보다 소득이나 직업 면에서 우월한 남성과 결혼하려는 ‘상승혼’ 경향이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이런 기준을 충족할 만한 남성의 절대 숫자가 크게 모자란다는 설명이다.
   
쓰쓰이 교수는 “(연구 결과) 일본의 대졸 여성은 연봉 500만 엔(약 5000만원) 이상의 남성과 결혼하고 싶은 비율이 높지만 실제 그런 (고소득) 독신남은 20%가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여성들이 원하는 소득과 직업을 가진 남성이 출현하기 어려운 사회환경이 되면서 (미스매치 현상이 더 증폭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계로 보면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사회적으로 먼저 몸살을 겪었던 선배 일본을 추월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14년 1.21명을 기록했고, 지난해는 0.98명으로 급락했다. 올해는 상반기 추세로 볼 때 지난해보다 더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김상진 기자는 “일본은 2005년 최저치인 1.26명을 기록한 뒤 소폭 반등해 최근 몇 년 사이엔 1.3~1.4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쓰쓰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0.98명)에 대해 “솔직히 놀랐다"며 “일본의 저출산화는 50년간 서서히 진행된 반면 한국은 너무 급격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일본은 지방에서 아이를 키워 도쿄로 보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도권보다 지방의 출산율이 비교적 높다"며 “그에 반해 한국은 (출산 기능이) 수도권에 집중되다 보니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추정된다"고 말했다.  
   
쓰쓰이 교수는 “일본 정부의 정책적 실패를 한국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도 육아휴직 확대, 보육서비스 확충을 저출산 정책의 핵심으로 추진해왔지만 이런 정책으로는 근본 문제인 결혼 기피 현상을 해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쓰쓰이 교수는 “(개인의 영역인) 결혼을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전 세계에서 (남자는 일하고 여자는 가사·육아를 전담하는) 성별 분업을 유지하면서 저출산을 극복한 나라는 없다"면서 ‘사회문화적 체질 개선’을 강조했다.
 
그는 “24시간 싸울 수 있습니까"라는 문구가 쓰여진 1990년대 일본의 피로회복제 광고를 소개하면서 “이런 남성의 일하는 방식에 여성이 진입할 수 있겠냐"고 했다. 최근 아베 정부가 ‘일하는 방식 개혁’에 팔을 걷어붙인 사정도 결국 저출산 해법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세대 소득이 늘어야 양육도 가능해진다"며 "혼자서는 어렵지만 맞벌이라면 가능하다는 게 (일본 정부가 내린) 결론"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은 부부 모두 정규직인 맞벌이 환경이 20% 수준으로 미국·유럽 대비 훨씬 떨어진다"며 “(일본도) 최근 5년간 (정책적으로) 겨우 조금 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이런 대안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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