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인생을 강의하는 연사들 사이에 자주 화두가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10년 전에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한 진대제 박사님이 어느 강연에서 소개해서 화제가 되었던 내용입니다. 다름 아닌 100점짜리 인생을 알파벳 조합과 연관시켜서 100점짜리 단어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100점짜리 인생을 만드는 중요한 키워드를 영어단어로 말하라면 어떤 걸 떠올릴 수 있을까요?
최근 제가 몇몇 고등학생에게 물었더니 슬프게도 전원이 머니(money)라고 하더군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반면, 어느 대학생 몇몇에게 물었더니 러브(love)라고 했고, 사회인 몇몇에게 물었더니 명예(honor)라고 합디다. 쉰을 넘긴 사람에게 물었더니 다수가 패밀리(family)라고 하더군요. 곰곰이 따져보니 세대별, 연령별, 직업별, 그 사람이 처한 상황별로 대답이 달랐습니다. 전 자유(freedom)이라고 했답니다. 그 어떤 걸 선택하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100점짜리 단어일까요? 아니, 말을 달리해서 어떠한 인생이 가장 완성형 행복에 가깝게 만드는 것일까요? 답은 에티튜드(attitude), 즉 ‘태도’입니다.
태도를 나타내는 에티튜드(attitude)가 어찌하여 100점짜리 인생을 만드는 단어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하지요?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알파벳 A에는 1, B에는 2, C에는 3, D에는 4, E에는 5 식으로 숫자를 매기는, 즉 알파벳 한자마다 점수가 있다고 칩시다. 그 점수를 참고해서 에티튜드(attitude)를 매기면 몇 점이 될까요? A-1,T-20,T-20, I-9, T-20, U-21, D-4, E-5가 되어서 총점은 100점입니다. 정말 놀랍지요?
그렇고 보니 ‘태도’는 우리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삶의 태도가 우리 삶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위기를 ’모면’이 아닌 ’극복’을 하게 만드는 키워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처신’이라고 하지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져야 할 행동을 말합니다. 태도와 처신이 인생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과 몸가짐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100점짜리 인생을 만드는 중요한 단어가 된다니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맞습니다. 태도의 중요함....
누구라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노력했지만 잘 안 되는 일이 수두룩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본의 아니게 악인이 될 수 있으며 타인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돈을 잃을 수 있으며 뜻밖의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잘난 사람이 어쩌다보니 못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한껏 거만해지기도 하고 겸손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떠한 상황 앞에 어떻게 처신하고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여부에 따라 그 사람의 격을 매기고 인성을 형성하고 나아가 미래까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선하게 시작해도 욕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진정성이 이익 앞에 퇴색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하며,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사실은 잘 되는 일보다 잘못 되고 잘 안 되는일이 더 많은 것이 인생이며 순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생은 다양한 격변을 교통사고처럼 만날 수 있으며 견뎌야 합니다. 그야말로 예측불허의 카오스의 삶입니다.
예측불허의 그 어떤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처신하십니까.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그 일을 해결하십니까. 바로 그 태도, 에티튜드(attitude)가 그 사람의 고난을 헤쳐나갈지 못 나갈지 여부를 결정하고 미래를 약속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아닐까요. 또한 타인에게 신뢰를 주는 키워드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티튜드(attitude)가 100점짜리 인생을 만드는 단어라는 것에 대해 조금도 불만이, 의심이 없습니다.
명절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기혼여성들에게 명절은 지긋지긋한 시댁과의 만남이 예고되는 초상보다 더 못한 날이라고 하더군요. 명절 앞에는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시금치의 ‘시’자가 시댁의 ‘시’자와 같기 때문이겠지요.
오죽하면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만은, 혹시 이런 생각도 안 해 보시는지요. 남자에게 명절은 어떠할까요. 극성스럽기 짝이 없는, 극성스럽지 않더라도 내 딸에게 잘 해주나 못해주나 염탐의 눈초리로 닭백숙을 올려놓은 장모와의 만남이 남자에게도 지옥일 수 있겠다고 생각해보신 적은 없습니까.
사랑이라는 것이 “너 없이는 못 살겠다"로 시작해서 “너 때문에 못살겠다"로 끝나는 데에는 주위 사람들이 부부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도 크게 일조를 했을 것입니다.
꿈에 부풀어 시작했건만,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차라리 이뤄지지 않은 사랑만도 못한... 법에 보호받는 테두리로 밖에 전락할 수 없는, 그 위기가 따지고 보면 당사자만의 고통 그 이상의 무엇... 즉 양가 부모님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살기 때문일 겁니다. 더 잘난 사람에게 시집장가 갈 수 있었는데...를 떠올리면 지금의 이 결혼은 곧 지옥이 됩니다.
과연 양가 부모님들의 기대가 비단 돈과 성공과 명예였을까요? 그렇진 않을 겁니다. 부모님들이 섭섭해하고 속상해하는 그 무엇은 결국 에티튜드(attitude)의 잘못됨과 처신의 부족 때문일지 모릅니다.
최근 참으로 눈물이 핑 도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정작 부모가 바라는 효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들어보십시오.
10대에는 건강하게 잘 자라주면서 공부까지 잘 해 주면 최상의 효도요, 20대에는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제때 짝까지 만나주면 효도이며, 30대에는 아들 딸 쑥쑥 낳고 부부싸움 안 하면 효도요, 40대 효도는 용돈 잘 주면서 성공까지 해 주면 효도요, 50대 효도는 가끔 찾아주면서 내 애기 들어주고 손까지 잡아주면 효도라는 겁니다.
"~손까지 잡아주면"...에서 목이 매이지 않나요?
사위는 처가에게, 며느리는 시댁에게 큰 돈 드리지 않고도 현명하고 진정성 있는 에티튜드(attitude)만으로 효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MBC 드라마 <백년의 유산> 중 | ||
명절이 싫은 이유 중에는 고부간의 갈등 외에 설상가상으로 동서와 형님과의 트라블도 한 몫을 합니다. 며느리 열통 터지게 만드는데 형제자매를 비롯한 그 배우자들이 일조를 한다고 봐야겠지요.
이 또한 에티튜드(attitude)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긋지긋한 시댁이 아니라 내가 낳을 자식의 뿌리이며 나의 가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일처럼 하는 겁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낳은 자식이 "나의 집안"이라고 할 그 집안의 어른이 곧 됩니다.
또한 시댁으로부터 너무 멀리 살거나 공무 때문에 제사 혹은 차례 준비 부엌일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는 며느리라면 나대신 일하시는 형님에게 혹은 동서에게 살갑게 전화한통 미리하면서 선물공세와 용돈을 소박하게 마련해 보시는 건 어떨지요.
웃는 얼굴이 침 못 뱉고, 고운 말에 정다운 대답이 오는 법입니다. 명절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홈쇼핑 보면서 “아, 저것 어머니에게, 동서에게, 형님에게 사 드리면 좋아하시겠다"라며 한세트 선물해주는 식이었다면? 명절 때에 차례 지내자 돌아서서 친정 간다며 옷 갈아입는 며느리와 동서를 그토록 미워할 리가 있겠습니까.
이렇듯 시집살이도 평소 태도, 즉 에티튜드에 따라 그날의 행불행이 나눠질 수 있다고 봅니다. 비록 기획적인 에티튜드라고 해도 소정의 목적을 위해 노력해 놓는다면 필요할 때 얼마든지 당당히 이해와 협조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번은 어느 신문에서 맏며느리 100명을 대상으로 앙케이트를 한 결과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명절에 꼴불견 동서 1위에서 5위까지가 소개되었더군요. 힘들게 차례 준비 다 해 놓았는데 그제야 와서는 “형님, 차가 너무 밀리네요"라던가 “형님 뭐 할 것 없어요?"라던가 “아휴, 왜 다 하셨어요?"... 라고 말하는 동서 혹은 형님이더군요. 무릎을 치고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명절에 되면 힘든 사람은 미혼남녀, 애 못 낳은 며느리일 겁니다. 미혼남녀라면 결혼 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무궁무진할 수 있지만, 애 못 낳은 며느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 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절대로 기죽지 마십시오. 이 또한 에티튜드만 잘 선택하면 편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을 놓고 하늘이 내는 자리라고 한다면, 자식은 조상이 주셔야 받습니다. 아무 때나 자식을 덜컹 낳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두 부부가 좋은 해에 좋은 인연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자식을 받아야 하니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당당히 말해 보십시오.
명절에 집안에 모인 일가친척들이 “왜 임신을 하지 않느냐?"라고 물으면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우리 부부는 늦게 자식을 봐야 좋다네요"라고 대동강 팔아먹을 베짱으로 말해 버리십시오. 기독교인도, 이슬람교도도 가톨릭교도 불교도 ’좋다’는 말에는 승복을 할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이론 아니겠습니까. 선의의 거짓말(white lie)은 이럴 때 써 먹으라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사건 사고가 많습니다. 집 밖을 나서면서 ‘오늘도 무사히 귀환을...’이라고 해야 할 지경입니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생과 사 아니겠습니까.
살아있는 한,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진실하고, 정직하면 모든 것이 풀릴 수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때 그때 우리가 취할 에티튜드(attitude)는 우리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중요한 키워드라는 것.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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