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결혼정보회사의 조사결과가 화제입니다
. “결혼생활 중에 배우자와 자식 중에 누가 더 우선이냐"라는 질문에 상당수 기혼남녀가 배우자보다 자식이 더~"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목숨을 바쳐 사랑한다며 눈물 콧물 흘리며 청혼한 그때 그 시절도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맹물 같은 무덤덤한 부부관계가 되어 버린 것도 모자라서 오로지 자식에게만 올인하며 배우자보다 자식이라니라며 한숨을 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사실 중년 부부들 중에는 곧잘 하는 말, 니 팔 니 흔들고, 내팔 내 흔들고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짜릿함을 뒤로하고 별 느낌이 없이 살고 있다는 부부들도 의외로 많을 겁니다. 익숙함에서 오는 권태와 예사스러움의 한 단면이겠지요.  
저 또한 불혹을 넘겨서 친구들을 만나보니 온통 자식 이야기뿐이지, 그 누구도 남편자랑이니 자신의 자아니 뭐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전문직에 종사하는 열혈 사회인 맘(mom)들까지도 온통 자식에 대한 이야기뿐인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저는 감히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배우자보다 자식이 우선이라는 대답이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라고. 그래서 이같은 조사결과를 놓고 ’요즘 부부들이 문제가 있다’라고 확대 해석할 필요까진 없다고 봅니다.
어떻게 자식이 배우자를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배우자는 인생을 같이 하는 사랑하는 반려자입니다. 물론 중요하고 또 중요한 사람입니다만, 자식은 자신의 유전자로 만든, ‘2의 나이기에 나의 ’살과 피’입니다. 그러니 배우자와 자식을 놓고 논한다면 ’他(타)’와 ’나’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톡 까놓고 엄연히 따져서 그렇지 않습니까. (배우자가 옆에 없을 때 대답해야겠지만!)
생명체라면 종족보존이 선택이 아니라 본능입니다. 본능이기에 책임과 의무가 당연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느끼는 책임과 의무로 인해 고단한 현실이 더 팍팍하게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만, 그 푸념은 일시적 빈말일 뿐이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혁명이 될 순 없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지친 어깨가 아무리 무겁다고 해도 자식을 바라보며 느끼는 든든함과 뿌듯함을 멸(滅)하지는 못할 거라는 얘기입니다. 강조하건대, 부모가 되는 순간, 자식에 대한 사랑과 희생이 시작됩니다. ’선택’이 아니라 ’본능’의 영역인 것이지요.  
아무리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다고 해도 말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말린다고 해서 고쳐질 마음이 아닌 겁니다. 물론 현대인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고쳐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만, 저는 어디까지나 자식에 대한 사랑 그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부모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잔소리하는 부모가 밉고 싫어서 나 홀로 살고 싶다? 만약 내 부모에게 불행이 닥쳐서 혼자가 된다면 ’얼씨구 지화자’의 마음이 될까요? 그 누구도 그렇다고 말할 순 없을 것입니다. 내 존재 안에 부모가 포함되어 있고, 부모 안에도 내가 포함되어 있기에 부모자식은 격리될 수 없는 천륜의 관계입니다. 한 마디로 부모자식의 관계는 생명체와 공기와의 관계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연과 상황에 따라 바다 건너 수만리 떨어져서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떨어져도 부모 자식은 같은 살, 하나의 몸입니다.  
나의 몸을 구성하는 염색체와 유전자(DNA)는 뚝딱뚝딱 홀로 만들어낸 상품이 아닙니다. 100% 부모님을 포함한 조상님에게서 왔습니다. 제 아무리 잘난 라고 해도 결코 나 홀로 가 아닌 그 이유입니다.
조물주는 인간의 몸을 만들면서 애초에 부모가 되면 자식에게 올인하게끔 설계해 놓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의학적으로 따져보면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이지, 선택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해서라도 꼭 누려봐야 할 권리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먼저, 여성의 경우 자식에게 젖을 물릴 때에는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분비가 안 된다고 하더군요. 여자의 몸은 유즙분비호르몬이 풀가동이 될 때에는 매달 자라서 배란되어야 할 난자가 안 자라는 체제가 되는 겁니다. 당연히 배란이 될 난자가 없으니 정자와 수정도 안 될 것이고, 임신이 될 턱이 없어서 생리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젖을 떼고서야 생리을 다시 시작 할 수 있습니다. 비로소 난자가 키워지고 정자를 기다리는 체제가 되는 겁니다.
’에스트로겐’은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 호르몬입니다. 매달 난자가 자람으로써 난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거죠. 백과사전에는 ’(에스트로겐은) 척추동물 암컷의 난소에서 분비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으로 발정호르몬의 일종이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따라 왠지 쓸쓸해지고, ’센치’해지는 것, 자꾸 사랑에 빠지고 싶어지는 이유가 바로 에스트로겐 때문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자식에게 젖을 먹을 때 에스트로겐 분비가 스톱이 되는 기제는 "아이 낳은 여성이여, 자식에게 올인하라는 신의 계시가 아닐까"라는... 아니나 다를까 자식 낳은 여성에게선 ’소녀’가 아닌 ’여장부 ’포스가 서슴없이 배어나옵니다. ’아줌마의 힘’은 단순히 결혼한 여성에게서 발산되는 힘이 아니라 ’자식 낳은 여성에게서 나오는 힘’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또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있습니다. 일명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어로 ’일찍 태어나다’라는 의미로 자궁수축 호르몬이라고 합니다. 여성의 경우 오르가즘을 느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호르몬이 여성의 경우 분만 때에도 분비가 된다고 합니다. 분만이 가까워질 때 자궁근육이 수축하고 자궁경부가 열리게끔 하기 위해서 뇌하수체에서 옥시토신을 분비시킨다는 겁니다.
옥시토신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여성이 자식을 낳고서 젖을 물릴 때에 옥시토신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이때 분비되는 옥시토신 덕분에 드디어 자궁이 서서히 닫히며 회복이 된다고 하더군요.
더 신기한 것은 여성의 경우, 자식을 안고 비빌 때에도 옥시토신이 분비된다는 겁니다. 정말이지 놀랍지 않습니까. 오르가즘을 느낄 때 분비한다는 옥시토신이 여성의 삶 곳곳에 등장한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등장배경이 모두 자식과 연관이 되어 있다니.  
반면, 남성의 경우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기제가 여성의 심적 배경과 달랐습니다. 여성과 비슷하게 사랑을 느끼거나 오르가즘을 느낄 때 분비되기도 했지만, 사회적인 지위향상과 우정, 의리 같은 친밀감 등에서 훨씬 더 반응을 보였다고 하더군요.
그렇다고 해서 남성의 부성애가 본능이 아닌 건 아니라고 합니다.  남성 또한 자식에 대한 부성애가 본능이라고 하더군요.
최근 아버지가 되면 남성호르몬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더군요. 한마디로 자녀를 낳으면 남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진다는 겁니다. 남성호르몬으로 대표되는 테스토스테론이 무엇입니까. ‘소년남자로 만들어주는 호르몬입니다. 이 호르몬 덕분에 비로소 남자의 몸에 근육이 생기고, 터프한 매력의 사내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남성호르몬이 자식을 바라볼 때 수치가 급격히 떨어진다고 합니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억지로 되지 않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이 모든 일이 순리이며 이치에 맞게 흘러가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부모가 되는 삶의 순리를 애써 거부하는 젊은 부부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 자식을 낳지 않고 둘만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사실 자식이 없어야 좀 더 편하고 자유롭게 자유를 누리면서 살 수 있긴 할 겁니다. 하지만 ’자유’라는 것이 굴레가 없으면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자유는 책임과 숙제와 굴레 속에서 그 욕구의 빛이 강렬해지는 법이니까요.
저는 주위 여성들 중에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나이를 만날 경우,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 보라고 말합니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선물들을 다 누려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젊은 부부들은 ’(둘만의) 행복을 위해 자식 안 낳고 싶다’라고  말하더군요. 자식 키우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부부는 진정 돈 쓰는 맛을 몰라서 그럴 겁니다.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돈 쓰는 맛’은 그야말로 시원짜릿한 흥분이 아니겠습니까.  그 맛의 절정에 자식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인생살이에는 ’고생 끝에 보람의 법칙’이 적용이 된다고 합니다.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끝이 있으며,  ’모든 것이 내탓이요’라고 뉘우치며 고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좋은 결과가 옵니다. 인과응보와 자승자박의 법칙이 인생 곳곳에 적용이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실 ’희망’이라는 것이 가만이 있는데 내리쬐는 태양빛이 아니라,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라는 겁니다.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이 아무리 돈까지 드는 희생이고, 자유를 박탈당하는 고단한 징역살이라고 해도 ’제2의 나’를 낳아서 보란듯이 살아보며 느낄 수 있는 것은 모두 느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일평생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여러 행복 중에 자식에 대한 사랑과 기쁨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즘, 사는 게 힘들지요? 우리네 부모님도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내 부모님을 낳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 윗대 조상님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 희생과 땀은 고통이 아니라 행복이셨을 겁니다.  
어느 통계를 보니 음력 4월부터 7월까지가 한해 중 가장 임신이 잘 되는 달이라고 합니다. 매년 겨울에서 봄까지 가장 많은 신생아가 태어난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봄은 정말 여성은 물론이고 남자의 마음까지 설레게 하는 계절입니다. 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지는 것이 날씨와 연관성이 있다지 않습니까.  호르몬이란 게 바로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묘약 아니겠습니까.  이 좋은 계절,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청춘의 한 계절입니다. 가임부부들, 어서어서 자식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보시길 바랍니다.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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