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만이라도 알을 품을 수 있다면, 그래서 병아리의 탄생을 볼 수 있다면….”
‘잎싹’은 알을 얻기 위해 기르는 암탉이다. 알을 품어서 병아리 탄생을 보는 것이 일생 일대의 최대 소망이다. 한시도 잊은 적이 없을 만큼 절규하듯 소원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몹쓸 놈의 철망이 가로막혀 있었다.
▲ 그림 : 김환영
“꼬꼬꼬, 아침밥이다!”
“먹성이 좋은 만큼 값을 해야지! 사료값이 또 올랐으니까!”
또 잔소리다. 지긋지긋하다. 잎싹이 양계장을 들어와서 알만 낳으며 산지가 일 년째. 얼마 전부터 입맛을 잃었다. 가슴이 텅 비는 것 같았다. “많이 먹어라. 큼직한 알 쑥쑥 낳게!”라는 주인 남자의 볼멘소리도 넌덜머리가 났다.
앞마당에 수탉부부가 뛰어다닌다. 새벽마다 “꼬끼오오!”라고 외치는 수탉. 온종일 암탉과 어울려 밭으로 들판으로 쏘다니는 게 전부인 수탉이 부러웠다. 오리들과 늙은 개와 수탉과 암탉이 어울려 지내는 마당이 좋아보였다. 그곳은 잎싹이 도저히 낄 수 없는 다른 세상이었을까?
‘언제나 알을 품고 싶었지, 꼭 한 번만이라도. 나만의 알, 내가 속삭이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아기. 절대로 너를 혼자 두지 않아. 아가야, 알을 깨렴. 너를 보고 싶어. 무서워하지 마라…….’
잎싹은 결심했다. 더 이상 알을 낳지 않겠다고. 모이를 거부했다. 힘없이 비실거리기 시작했다.
“글쎄, 병든 것 같은데…….”
“아쉬운 대로 고기값은 받을 수 있겠지요?”
순간, 잎싹에게 벅찬 흥분이 몰려왔다. “이제 나간다. 닭장에서! 라며 소리치고 싶었다. 고맙게도 잎싹은 닭장에서 꺼내져 외바퀴 수레에 던져졌다. 드디어 폐계가 된 것이다. 숨이 턱턱 막혔다. 눈꺼풀이 저절로 감겼다. ‘설마, 이렇게 죽는 건 아닐 테지.”
죽은 암탉들이 버려지는 구덩이에서 잎싹을 구해준 건 마당식구 청둥오리 ‘나그네’ 였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마당에 들어오게 된다.
상상했던 곳이 아니다. 마당은 달랐다. 자유와 낭만이 있는 마당이 아니었다. 잎싹은 마당 안에 살고 있는 다른 가축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며 하룻밤 만에 쫓겨났다.
“보금자리가 꼭 마당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
잎싹은 마당을 박차고 나왔다. 들판을 지나서 찔레덤불로 갔다. 무서운 족제비를 피해 다니며 들판생활은 고단했다. 시시 때때로 털이 쭈뼛 곤두서야 했다.
▲ 그림 : 김환영
“세상에! 이게 뭐지?”
찔레덤불 속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푸른빛이 도는 흰 알이었다. 누구의 알인지 몰라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따뜻하게 감싸 주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어미가 올 때까지만. 그래, 그 때까지만 이라도!”
알을 품고 싶어 하던 잎싹에게 기적이 일어난 걸까? 잎싹은 덤불 속으로 들어가서 조심스레 알 위에 엎드렸다. 두려운 마음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평온해졌다. 여태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기쁨마저 솟아났다. 생명이 전하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건 내 알이야. 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기, 나만의 알!’
잎싹은 알을 품는 동안에는 멀리 갈 수 없으니 적당히 먹고 견뎌야 했다. 드디어 알이 부화했다. 알에서 나온 새끼는 병아리가 아니라 새끼오리였던 것이다.
▲ 그림 : 김환영
잎싹에게 새끼가 병아리가 아니라 오리라고 해도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품어 내가 낳은 소중한 내 자식 그뿐이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새끼를 키운다는 것, 생김새도 습성도 모든 것이 다른 새끼를 키운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지만, 잎싹은 키우기로 결심했다. 수많은 위기가 지나갔다. 하지만 지켜냈다. 새끼오리가 한 마리의 청둥오리로 당당히 키워졌다.
“한 가지 소망이 있었지.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그걸 이루었어. 고달프게 살았지만 참 행복하기도 했어. 소망 때문에 오늘까지 살았던 거야. 이제는 날아가고 싶어. 나도 초록머리처럼 훨훨,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 그림 : 김환영
잎싹은 소망보다 더 간절한 몸이 원하는 걸 향해 빈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독하게 외로웠다.
“자, 나를 잡아먹어라. 그래서 네 아기들 배를 채워라.”
눈발이 흩날리는 날에 퀭한 족제비에게 자신을 던졌다. 잎싹이 죽음을 맞이하는 최후의 모습이다. 순간 목이 콱 조였다.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뼈마디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를 물었구나, 드디어…….”
잎싹의 최후였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삐쩍마른 늙은 암탉을 문 족제비가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 소설은 이미 애니메이션으로까지 만들어져 크게 성공을 거둔 소설이다. 전국의 유치원생과 초등학교생들이 이 영화를 관람하며 열광했고, 초등학교 교과서까지 당당히 수록되었다. 무엇이 어린아이들을 이토록 열광케 하였을까?
기자는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알을 품어 병아리를 탄생시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묘사되는 구절에서 잎싹의 마음이 전율처럼 가슴을 스며들어왔다. 모르긴 해도 난임으로 인해 수없이 불임병원을 들락거리며 아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잎싹의 간절함이 이해가 되지 않을까? 부모가 되기 위해서 그 어떤 고통까지 감수하는 난임여성들의 절박함이 잎싹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잎싹을 통해 자식을 낳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을 알았다. 아무리 품 안에 자식이었다고 해도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자식은 나의 분신이지만 나와 전혀 다른 독립된 인격체이기에. 자기만의 길을 서슴없이 찾아서 걸아가고 싶어 하는 자식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마당이 나온 암탉>은 ‘꿈을 가져라’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장편동화다. “소망 때문에 오늘까지 살았던 거야”의 잎싹의 말처럼 사람은 저마다의 꿈을 향해 달린다. 꿈이 없으면 미래가 없으며, 오늘의 고통을 감내하지 못한다.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라도 꿈은 실존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삶은 팍팍하다. 하지만 소망은 혹독한 자리에서 싹트고 꽃핀다. 찬바람이 불고 비 들이치는 현실 속에서 외롭고 위험한 고비를 현명하게 넘길 수 있도록 이끈 주체는 무엇일까? 소망이기도 하지만 자식이기도 하다. 잎싹에게도 그러했듯이.
“어리다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아가, 너도 아제 한 가지를 배웠구나.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아직도 짠한 감동으로 남는 구절이다. 이해하면서 사랑하며 봄여름가을겨울이 지나가는 것이 인생일까.
단순한 초등학생용 동화책이라고만 생각했다가 생각지 못하게 감동을 받은 이 한 권의 책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잎싹를 대신해서 속삭이고 싶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것들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간직할 것이라고는 기억 밖에 없으니까.”
<마당이 나온 암탉> 글 황선미. 그림 김환영. 도서출판 사계절. 9500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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