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속속들이 알고 느끼기 위해서는 대화보다는 노래를 들어보는 게 훨씬 빠르다. 바로 음악의 힘이다. 대화는 얼마든지 포장이 되고 감춰질 수 있지만, 노래는 자신의 진심과 고통을 여실히  드러내 버린다. 무심코 누르는 곡은 결코 단순한 노래가 될 수 없다. 그 사람이 처한 고통과 소망 등의 심리가 마치 쇼윈도에 진열되는 것처럼 펼쳐지는 퍼레이드라고 볼 수 있다. 만약 그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가 자신의 가슴과 공명을 이루지 않았다면 흥얼거릴 이유가 있었을까? 하다못해 핸드폰 컬러링 곡만 봐도 요즘 그(혹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 힌트는 높은 적중율을 자랑하고야 만다.  

샐러리맨들이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18번이 뭘까.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와 박상철의 무조건이라고 한다. 가장이라는 십자가가 얼마나 무거웠으면 노래방만 가면 괴성을 지르며 그토록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말할까. 넥타이를 풀어서 머리에 질끈 묶고 다리까지 둥둥 걷어서 노래 부르며 놀고 있는 그들의 가슴에는 쉬지 않고 돈 벌어야 하는 가장으로의 고독으로 꽉 차 있을 거다.  오호!  불쌍한 가장들이여!

필자는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피로회복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가요도 잘 부르고 듣는다. 사실 클래식보다는 가요가 훨씬 가슴이란 북에 징을 울린다고 해야 할까. 특히 내가 10~20대에 즐겨들었던 가요를 듣고 있노라면 눈앞에 대학캠퍼스가 펼쳐지고, 그때 그 시절 미팅의 헤프닝도 뇌리를 스친. 유독 추억의 가요 속에서만이 살아 숨쉬는 감정들이라서 몰래 몰래 꺼내서 들여다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실험이 있었다. 유타대학의 신경유전학자가 지체장애인()에게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들려주고 난 뒤 감정 변화를 체크했다. 그 결과, 그녀의 핏속에 도파민과 옥시토신, 바소프레신과 같은 호르몬이 듬뿍 검출이 되었다고 한다. 모두 행복을 느낄 때 분비되는 호르몬들이었다.

음악이 심리적으로 치료효과가 뛰어다다는 연구결과는 많다.

실제로 음악이 우울증 치료효과가 탁월하고, 특히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코티졸이라는 호르몬 수치를 확 낮출 수 있다. 심지어 좋아하는 음악을 편하게 듣고 있으면 세균과 박테리아와 싸워서 몸을 지켜내는 면역세포까지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필자는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기왕이면 즐거운 노래를 들거라. 슬픈 사랑노래를 너무 오래 듣지 말라고 강조한다. 옛날 어르신들이 흥얼거리는 노랫말에 팔자가 있다고 강조한 그 이유가 분명이 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사는 꼬락서니가 꼭 즐겨부르는 노래와 비슷하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소위 뜨는 유행가 가사에는 공식이 있다. 해서는 안 되는 사랑에 빠진 아픔 , 이별하는 사랑 때문에 무너지는 가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슬픈 노래를 자꾸 부르다보면 인생도 사랑도 그 노랫가사와 흡사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흡사해진다. 결코 어설픈 우려가 아니다.  없는 말 지어낸 것도 아니다. 느낄 것이다. 학창시절에 고고장 가던 천방지축 명랑소녀들이 센치한 여학생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이 또한 노랫가사와 가락에 키워드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클래식 음악 듣기에도 한번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최근 클래식 음악을 듣는 학생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집중력과 자제력 등에서 훨씬 높은 능력을 발휘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런던대학 교육연구소가 초등학생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클래식 음악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결론은 충분히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자라면 집중력과 자제력 등에서 클래식을 듣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훨씬 높은 점수가 나왔다고 한다.

필자는 자식이 둘이다. 수재 아들도 있고 평범한 딸도 있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치는 피아노 소리에 이골이 났을텐데, 지금에 와서 내게 "엄마가 틀어놓은 동요와 클래식 덕을 본다"며 음악을 습관처럼 들었으며 덕분에 혼자 있어도 덜 외로웠고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클래식 중에서는 유독 모차르트 음악이 수학적이면서 이지적인 생각을 하게끔 이끈다고 한다. 세계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 창안 할 때 모차르트와 바흐의 음악을 틀어놓았다는 일화는 음악계에서는 이미 알려진 얘기다.

사실 가요와 팝송은 가사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 그 음악 속으로 매몰될 수 있다. 하지만 클래식은 그렇지 않다.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클래식 음악은 들으면서 명상을 할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을 정리할 수 있다. 귀로 듣지만 두뇌는 쉬지 않고 활동하는 거.

요즘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스마트폰만 내려다보고 있어서 여간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세상이 얼마나 편한가. 엠피스리가 없어도 음악듣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하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음악이 뒷전이 된 듯하다. 폰을 놓고 너도 나도 영상물을 보거나 인터넷 바다만 헤매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부터 스마트폰으로라도 음악에 심취해 보라. 나를 달래주고 이해해주는 음악, 그만한 애인이 세상에 없다고 느낄 수 있을 거다. 사람을 위로하고 치료하는데 음악만한 특효약이 없다. 그 치료에 반드시 클래식 음악만이 포함되는 건 아니다. 저마다의 가슴에 징을 울릴 수 있고, 가슴을 위로받을 수 있으면 된다. 단, 너무 슬픈 노래들에 몰두하진 말자. ’노래 따라 팔자 풀린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고 하니 더더욱 잊지 말기를 바란다.  <끝>


   
 

▶ 이해자는 1967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숙명여대 피아노 페다고지 연구과정 강사로 활동한바 있으며, 현재 한국피아노교수법연구소 연구원과 전임강사와 음악심리 상담사로 공무원, 간호사회 인력 교육 강의 등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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