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에서 길어온 세 가지 봄 풍경① 금둔사 매화

조계산의 운해(雲海)
(순천=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순천 금둔사에서 바라본 조계산의 운해. 금둔사는 음력 섣달에 피는 납매를 비롯해 매화로 유명한 사찰이다. changki@yna.co.kr


(순천=연합뉴스) 순천에는 늦겨울부터 초봄까지 단아한 진객이 찾아오는 산사가 있다.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이때만큼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금둔사다.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창건됐으나 오랫동안 폐허 상태였다가 1980년대 중창됐다.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석조불비상 외에는 대부분의 전각이 근자에 세워졌다.

금둔사를 부흥한 지허 스님은 약 30년 전부터 경내에 매화나무를 심었다. 가까이는 낙안읍성과 벌교에서, 멀리는 전북 부안에서 종자를 가져왔다.

매화는 살을 에는 추위를 겪지 않으면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를 내지 못한다는 꽃이다.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세상에 다시 이름을 알리려는 금둔사에는 안성맞춤인 식물이었다. 하나둘 늘어난 매화나무는 오늘날 100여 그루에 이른다.

 

금둔사에 핀 홍매
(순천=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순천 금둔사에 진한 분홍빛의 홍매가 피었다. 금둔사는 봄날이면 홍매, 청매, 백매 등 삼색 매화가 만발한다. changki@yna.co.kr

납월매라고도 하는 납매 6그루는 금둔사의 진정한 보물이다. 납월은 음력 섣달을 의미하는데, 납매는 이때부터 개화한다. 엄동설한에 몸이 움츠러드는 양력 1월 말부터 3월까지 연분홍빛의 꽃을 내보인다.

이제 납매는 전국에 금둔사 외에는 없다. 낙안읍성에 있던 늙은 납매의 씨앗을 옮겨다 식재했는데, 어미나무는 죽고 금둔사의 납매만 살아남았다. 그래서 봄을 빨리 맞으려면 금둔사로 가야 한다.

금둔사의 납매는 한데 모여 있지 않다. 대웅전과 태고선원, 유리광전 근처에 흩어져 있다. 둥치 부근에 이름표가 걸려 있어서 금세 알아챌 수 있다.

2개월 동안 납매에서 고운 꽃송이가 피고 지기를 계속하면, 어느덧 추위가 물러가고 다른 매화도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린다. 금둔사가 은은한 매화 향으로 가득해지는 진짜 봄이다.

대웅전 오른쪽에서는 진분홍빛 홍매(紅梅)가 흐드러진다. 홍매는 납매보다 꽃잎의 색이 더욱 선명하다. 새봄에 어울리는 산뜻한 빛깔이다.

대웅전 왼쪽 뜰에는 청매(靑梅)가 자란다. 사회주의 노동운동가였던 김철수의 생가에서 얻어온 나무다. 그런데 이 청매나무가 매우 소담스럽고 품격이 넘친다. 꽃이 피면 봄눈이 하늘로 떠오르는 것처럼 청아하다.


소담스럽게 피어난 금둔사의 청매
(순천=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순천 금둔사 범종각에서 바라본 청매. 잎은 하얗지만, 꽃받침이 푸른색을 띤다. 전북 부안에서 씨앗을 가져와 심은 나무이다. changki@yna.co.kr


금둔사의 또 다른 매화는 백매(白梅)다. 청매와 백매는 꽃잎이 똑같이 하얗지만, 꽃받침의 색상이 초록색과 팥죽색으로 다르다. 세 가지 색깔의 매화꽃은 4월 초까지 가람 곳곳을 채색한다.

금둔사 북쪽에 위치한 선암사도 매화로 잘 알려진 고찰이다. 선암사에는 수령이 350~650년에 달하는 매화나무, 이른바 노매(老梅)가 많다. 기품 있는 노매는 3월 말이 돼야 비로소 꽃봉오리가 열린다. 금둔사에 비해 개화 시기는 늦지만, 풍치는 뒤지지 않는다.
 



 

낙안읍성의 장독대와 매화
(순천=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순천 낙안읍성의 장독대 위에 하얀 매화꽃이 피었다. 낙안읍성은 지금도 주민이 생활하는 살아 있는 문화재다. changki@yna.co.kr

    ◇ 봄비 맞으며 낙안읍성을 소요하다
금둔사에서 3㎞ 정도 떨어진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3대 읍성(邑城)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전북 고창읍성, 충남 해미읍성과 달리 주민 280여 명이 여전히 거주하는 살아 있는 문화재다.

1397년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성됐으며, 17세기 초반 임경업이 군수로 부임해 석성을 완공했다고 전한다. 현재는 성벽 안에 옹기종기 지붕을 맞댄 초가 수십 채와 객사, 내아, 동헌, 자료 전시관 등이 들어서 있다.

낙안읍성은 북쪽을 제외한 삼면에 문이 나 있다. 정문에 해당되는 문은 동쪽의 낙풍루다. ’즐거움이 넘쳐나는 누대’란 의미로 누각에 올라 내부를 살펴볼 수 있다.

남쪽의 쌍청루도 읍성의 성문치고는 규모가 상당하다. 낙풍루와 쌍청루 앞에는 방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치성이 있다. 치성은 성벽 바깥에 덧붙여서 쌓은 시설을 말한다.


봄비 내리는 낙안읍성
(순천=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서문에서 쌍청루로 내려가는 길에 바라본 순천 낙안읍성 풍경. 성벽 위를 거닐며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changki@yna.co.kr


읍성을 에워싼 성벽의 길이는 1천410m이며, 그 위를 여유롭게 거닐 수 있다. 사실 성벽 소요(逍遙)는 낙안읍성을 둘러보는 최고의 방법이다. 서문에서 쌍청루로 내려가는 길을 걸으면 평화롭고 한적한 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읍성에서는 전통문화 체험도 할 수 있다. 판소리 배우기, 가야금 연주, 붓글씨 쓰기, 천연 염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말에는 풍물 공연과 순라 교대 등의 행사가 벌어진다. 초가집에서 민박을 하며 특별한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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