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먹고 살기’ 위해 배움을 포기해야 했던 시절, 야학(夜學)이라는 게 있었다. 1970~80년대 당시 빈민층·노동자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강점기까지 닿는다. 그 무렵 민족계몽을 맡았던 게 바로 야학이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야학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고 대부분 사라졌다. 그럼에도 아직 서울에 ‘야학’을 하는 곳이 있다. 2006년 서울에 36곳이었던 야학은 현재 17곳이라고 한다.
조선일보가 현재 남아있는 서울 시내 야학 현장을 취재, 7월 25일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 있는 ‘대신야학’은 지난 38년 동안 1000명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한다. 현재는 두 반에 38명이 재학 중이다.
야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여전히 검정고시 응시와 합격이 목표다. 전성하 전국야학협의회 대외협력처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배울 때를 놓쳤으면서 저녁에만 시간을 낼 수 있고 사설 학원 강의 속도는 따라가기 힘든 어르신들이 주로 야학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가 현재 남아있는 서울 시내 야학 현장을 취재, 7월 25일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 있는 ‘대신야학’은 지난 38년 동안 1000명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한다. 현재는 두 반에 38명이 재학 중이다.
야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여전히 검정고시 응시와 합격이 목표다. 전성하 전국야학협의회 대외협력처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배울 때를 놓쳤으면서 저녁에만 시간을 낼 수 있고 사설 학원 강의 속도는 따라가기 힘든 어르신들이 주로 야학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올해 61세인 학생 김순례씨는 "여태껏 공부 안 하고 살아온 스스로가 너무 원망스러워 야학을 찾았다"고 했다. 평생을 미혼모로 살았다는 70대 할머니 김영희(가명)씨는 20여 년 전 숨진 아들이 쓴 편지를 읽고 싶어 야학에 등록했다고 한다. 김씨 아들은 입대하는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글을 몰라, 또는 최소한의 학교 졸업장을 취득하기 위해 야학을 찾았던 것과 달리 최근 들어서는 야학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서울 중랑구 묵동 '태청야학'의 정윤이 연구부장은 "공부 외에도 학창 시절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이 야학에선 매년 9월 학생 전원이 교복을 빌려 입고 1박 2일 경주나 제주도 등으로 수학여행을 간다. 영화와 공연 관람, 체육대회, 졸업 여행 등 각종 친목 행사가 1년 내내 이어진다. 다시 말해 과거 학창시절을 재현(再現)하는 ‘향수(鄕愁)’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글을 몰라, 또는 최소한의 학교 졸업장을 취득하기 위해 야학을 찾았던 것과 달리 최근 들어서는 야학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서울 중랑구 묵동 '태청야학'의 정윤이 연구부장은 "공부 외에도 학창 시절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이 야학에선 매년 9월 학생 전원이 교복을 빌려 입고 1박 2일 경주나 제주도 등으로 수학여행을 간다. 영화와 공연 관람, 체육대회, 졸업 여행 등 각종 친목 행사가 1년 내내 이어진다. 다시 말해 과거 학창시절을 재현(再現)하는 ‘향수(鄕愁)’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야학을 찾는 다문화 가족도 늘고 있다고 조선일보는 전했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 '다산야학'은 2015년부터 다문화 한국어반 두 학급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김은중 조선일보 기자와 김소진 인턴기자는 기사를 통해 “(다산야학에서 공부하는) 30여 학생의 출신국은 중국,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으로 다양하다"며 “매주 2회 한국사와 국어 위주로 수업한다"고 썼다.
이들은 서울 중구 황학동에 있는 '신당야학'의 경우 스마트폰·소셜미디어 활용법 같은 특강을 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댓글 총0건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