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장인물 모두가 수상…"너무 무서워" 찍어놓고 CG로 화면 수정도
 
체감온도 0도로 뚝 떨어진 이 늦가을에 공포심을 한껏 자극하는 드라마가 한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시청하는 재미를 주고 있다.
 
여름에는 뭐하다 추위와 함께 뒤늦게 찾아온 SBS TV 수목극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은 매회 그 스산하고 처연한 분위기가 기분 나쁜 여운을 안겨주지만, 결말에 대한 궁금증으로 다음회를 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시청률은 7% 선이며, 지난 28일에는 자체 최저인 4.8%까지 떨어졌지만,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드라마 속 범인과 화면 곳곳에 놓인 복선의 키를 찾기 위한 추리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은 무엇보다 단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는 장면이 없다는 점에서 근래 보기 드문 촘촘한 스토리를 자랑한다. 개연성 없는 막장 드라마가 넘쳐나는 안방극장에서 모처럼 공포와 미스터리를 소재로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작품이 나왔다.’
 
 
 

◇ 지방 소도시를 뒤덮은 불륜과 치정, 질투와 복수
 
평화로운 조용한 지방의 소도시 아치아라. 겉으로 보기엔 순박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로 보이지만, 실상은 마을의 굴뚝 산업인 해원철강을 이끄는 서창권(정성모 분) 도의원 가족을 중심으로 이해관계와 권력의 수직관계가 확실하게 형성된 곳이다.
 
그럼에도 외관상으로는 "너무 무료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이 마을에 어느 날 2년여 암매장됐던 백골사체가 발견되고, 전국을 공포에 휩싸이게 하는 연쇄살인범의 마수가 이 마을에까지 미쳐오면서 고요했던 마을의 일상이 산산이 조각나는 과정을 그린다.
 
드라마는 귀신 보는 소녀 서유나(안서현)를 통해 심령 스릴러의 재미를 밑바탕에 깔고서 그 위에는 인간의 온갖 추한 이면을 까발리며 단단한 개연성을 구축한다.
 
MBC TV가 같은 시간 ’그녀는 예뻤다’라는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지만,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의 중심에도 ’예뻤던 그녀’가 놓여 있다. 누가봐도 아름다운 정체불명의 여성 김혜진(장희진)이 몇년 전 어느 날 이 마을에 이주해 들어오면서 이 모든 이야기는 시작됐다. 발견된 백골사체의 주인공이 2년전 마을에서 종적을 감췄던 김혜진으로 드러나고, 알고보니 마을의 많은 남자들이 김혜진과 관계가 있었던 사실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해 마을의 멸시를 받다가 해원철강의 사모님이 되면서 하루아침에 신분상승한 윤지숙(신은경)과 그녀의 동복동생 강주희(장소연), 윤지숙의 의붓아들 서기현(온주완)을 중심으로, 자폐증을 앓는 소년, 여고생 제자와 미묘한 관계인 미술선생, 밤마다 나다니는 여장 남자, 무당 등이 이 마을의 수상한 기운을 고조시키고 있다. 불륜과 치정을 핵으로, 질투와 앙심, 복수가 그 핵을 둘러싼 구조라 어떤 일도 가능하게 하는 포석을 깔아놓았다.
 
여기에 지난 28~29일 방송에서는 30년 전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신생아 불법 매매가 이 마을에서도 벌어졌으며, 죽은 김혜진과 이 사건이 무관하지 않음을 따라가다가 신생아 매매 브로커 ’뱅이 아지매’가 알고보니 윤지숙과 강주희의 엄마라는 사실을 29일 라스트 신으로 보여주면서 등장인물 간 얽히고설킨 관계의 뿌리가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갈 것인지 궁금하게 했다.’
 
 
◇ 핏줄에 대한 집착이 주는 공포…"너무 무서워" 화면 수정도
 
드라마는 이처럼 인간의 추악한 이면과 함께 핏줄에 대한 집착을 스토리의 근간으로 삼으며 원초적인 공감을 이끌어낸다.
 
문근영이 연기하는 주인공 한소윤의 가족과 해원 철강 가문에는 모두 복잡한 핏줄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들뿐만 아니라 이 작은 마을 아치아라의 많은 인물이 핏줄에 대한 일반적이지 않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친부모가 누군인지 모르거나 입양 이후 파양됐고, 재혼 가정이거나 남의 핏줄을 키웠고, 뱃속의 아이를 지웠거나 자신의 아이를 팔았다.
 
소녀 서유나가 귀신을 보기 시작한 것 역시 엄마 윤지숙이 뱃속의 여동생을 낙태한 순간부터였으며, 한소윤이 캐나다에서 살다가 갑자기 아치아라를 오게된 이유도 핏줄에 대한 이끌림 때문이었다.
 
 
작은 마을 아치아라는 이웃집 숟가락 수까지 알 수 있을 만큼 한마음 공동체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폐쇄적인 집단성을 발휘하며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다.
 
드라마는 인간의 이기심과 배타심, 시기심과 욕망 등이 어우러져 유발할 수 있는 공포를 귀신 보는 소녀를 통해 극대화하면서 순간 순간 비명을 지르게 한다.
 
자는 아이의 목을 조여오는 앙상한 두 손과 달리는 차창 유리를 갑자기 덮친 혼령의 모습, 언뜻언뜻 들리는 "엄마, 마음에 안들면 또 죽일거야?"라는 환청 등이 그러하다.
 
제작진은 촬영은 했지만, 편집과정에서 "너무 무서워" 손을 댄 장면이 꽤 된다고 밝혔다. 귀신의 두 손이 아이의 목을 감싸는 장면은 길게 찍었지만 장희진의 앙상한 손이 공포감을 극대화해 짧게 편집했고, 장희진이 달리는 차의 유리를 덮치는 신에서는 원래 장희진의 얼굴에 사고가 난 것처럼 검은 칠을 했는데 너무 무서워 CG를 통해 얼굴의 분장을 지웠다는 것이다.
 
 

◇ 순수한 열혈 순경 박우재를 통해 보는 유쾌한 희망
 
드라마는 이처럼 어둡고 음산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가운데 순박하고 순수한 열혈 순경 박우재(육성재)를 통해 한줄기 유쾌한 희망을 던진다.
 
국내에서 2003년 개봉한 스웨덴 영화 ’깝스’는 범죄율 제로의 스웨덴 한 마을을 배경으로 그 지역 경찰들이 벌이는 순박하고도 어이없는 소동을 그리며 웃음을 줬다. 10년째 아무런 범죄가 발생하지 않자 경찰서 폐쇄 조치 통보가 내려지고, 이를 막기 위해 경찰들이 거짓으로 사건을 꾸미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는 이야기다.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의 박우재는 파출소 순경이다. 강력 사건에 대한 의욕은 충만한데 지역주민 편의를 봐주는 일 외에는 이렇다할 사건을 접할 일이 없었던 그는 난데없이 백골사체가 발견되자 범인을 찾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엉뚱하고 어이없지만, 지역 유지들의 압력과 방해에도 특유의 성실함과 호기심으로 사건에 뛰어들어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게 한다. 여기에 그의 옆에서 무심한듯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배짱을 보이는 한경사(김민재)의 정의로운 뚝심도 드라마에 감초 역할을 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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