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경제성장률을 올해보다 높은 2.4%로 전망했다. 세계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 투자·내수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외 여건 악화로 투자·수출이 쪼그라드는 등 하방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올해의 경제성장률은 애초 예상보다 낮은 2.0%에 머무를 것으로 봤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았던 2009년(0.8%)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부는 12월 1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2020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우선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실질 GDP)을 올해 전망치(2.0%)보다 0.4%포인트(p) 올린 2.4%로 잡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 3년 연속 2%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경상성장률(물가상승을 포함한 성장률)은 3.4%로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내년 우리 경제는 투자 중심의 내수 증가세가 확대되고 수출이 개선되는 등 올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봤다. 정부의 내년 성장률 목표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은행 전망치인 2.3%나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2.2%보다도 높다.
 
올해 12개월 감소하며 바닥을 쳤던 수출은 세계교역 회복, 반도체 업황 개선 등에 힘입어 내년 3.0%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메모리 수요 확대 등으로 반도체 수출이 회복되고 선박도 증가세 전환이 기대된다. 전기차·바이오헬스·이차전지 등 신성장동력 품목 수요 확대도 수출에 긍정적이다. 올해 부진했던 수입도 내년에 2.5% 증가하며 플러스(+)로 돌아설 것으로 봤다.
 
경상수지는 올해 전망치(580억 달러)보다 다소 확대된 595억 달러 내외를 기록할 전망이다. 상품수지는 수출 증가로 흑자폭은 올해(751억 달러)보다 큰 808억 달러로 관측된다. 그러나 상품 외 수지는 소득수지 축소로 적자 폭이 213억 달러로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는 전망이 엇갈렸다. 지난해(-2.4%)에 이어 올해 전망치(-7.7%)까지 하락세를 보였던 설비투자는 내년 5.2% 증가로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기계수주 증가 전환, 제조업 가동률 상승, 올해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 등이 긍정적인 요인이다. 업종별로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IT 업종과 정보통신업 투자가 개선될 것으로 봤다.
 
건설투자는 지난해(-4.3%), 올해(-4.0%)에 이어 내년에도 2.4%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물수주·주택착공 등 선행지표 부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서민·실수요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등 공적 주택의 건설 확대 등이 감소 폭 확대를 다소 완충할 것으로 기대됐다.
 
민간소비는 2.1% 증가가 예상된다. 고용 증가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복지분야 예산 확대에 따른 이전소득 증가가 실질구매력을 끌어올릴 거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 최근 소비심리 회복 및 외국인 관광객 증가 추세도 국내 소비를 높이고 있다.
 
내년 취업자 수는 25만 명 내외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가능인구가 23만1000명 줄어들면서 취업자 수 증가 전망치는 올해보다 다소 줄었으나 고용률은 올해 전망치(66.8%)보다 높여 67.1%를 목표로 세웠다. 정부는 '직접 일자리'의 수를 올해(80만개)보다 확대된 94만개를 목표로 내세웠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내년에도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한 노인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이다.
 
올해 0%대 물가로 디플레이션 우려가 있었던 소비자 물가는 내년 1.0%로 회복될 것으로 봤다. 올해 농산물 가격 하락의 기저효과와 유류세 인하 종료 영향으로 국제유가도 상승세로 전환될 것으로 점쳐진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10년 만에 최악의 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투자·수출이 모두 쪼그라들면서 2009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2.0% 수준에 머물 것으로 봤다.
 
정부는 2017년 말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2.6~2.7%로 전망했다. 하지만 7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설정하면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2.4~2.5%로 낮췄다. 우리 경제의 둔화세가 지속되자 지난 10월 성장률 목표치를 2.0~2.1% 수준으로 다시 한 번 내렸다. 두 차례 수정 전망 끝에 간신히 2.0%를 방어할 것으로 본 것이다.
 
수출은 반도체 단가 하락과 세계교역 둔화 등의 영향으로 10.6%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수입 또한 투자 부진, 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6.4% 줄어들 것으로 점쳤다. 자본재·원자재 수입이 크게 감소한 가운데 소비재 수입도 증가 폭이 둔화된 게 원인으로 꼽힌다. 경상수지는 수출 부진으로 흑자폭이 축소돼 580억 달러 흑자에 멈출 전망이다.
 
민간소비는 1.9% 증가에 그칠 것으로 관측된다. 서비스 소비 증가세가 확대됐으나 해외여행 둔화로 해외소비가 감소하면서 민간소비 증가를 끌어내렸다. 농산물 가격 안정 및 국제 유가 하락 등으로 소비자 물가는 0%대(0.4%) 상승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도 각각 7.7%, 4.0% 쪼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설비투자는 미·중 무역갈등 심화 등 대외 불확실성 확대 여파로 기업투자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건설투자는 신규 아파트 착공이 감소하는 등 주거용 건물건설 부진의 영향을 받았다.
 
암울한 경제지표 속에 고용만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올해 취업자 수는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증가 폭이 크게 확대돼 28만 명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취업자 증가 폭이 확대되면서 올해 고용률은 지난해(66.6%)보다 상승한 66.8%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만한 정책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무엇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간 수차례 강조해왔던 5대 분야(4+1) 구조개혁 과제가 이번 발표에서 구체화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을 단장으로 ▲산업 혁신 ▲노동 혁신 ▲재정·공공 혁신 ▲사회적 인프라 확충 등 4개 분야에서의 작업반으로 이뤄진 '구조혁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겠다는 포부만 밝혔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이와 관련, "미사여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법이나 제도 등의 실질적 변화가 필요한 데 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 역시 "당장 당면한 과제로서 공공 부문에서 지출 구조를 효율화하겠다는 부분에선 정부 의지가 돋보인다"면서도 "이를 제외한 나머지 구조 개혁 과제들은 붕 떠 있는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서비스 산업 혁신 등이 일부 포함돼 있지만 와 닿지는 않는다"며 "정부가 얼마만큼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할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라고 언급했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등 문재인 정부 들어 여러 이해관계의 충돌을 낳았던, 소위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라 불렸던 노동 시장 개입 조치들을 덜어낸 점에 대해선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노동 시장 개혁 문제를 다룬 방식은 아쉬웠다는 평가다. 정부가 그리고 있는 노동 혁신의 큰 방향은 임금 체계를 직무·능력 중심으로 개편해 임금의 연공성을 완화하고 50~299인 사업장에 주 52시간제가 안착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안,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등 신(新)직종에 대한 보호 강화 등이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임금 체계를 보다 생산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혁이 필요한데 그 문제가 담겨있지 않다"고 짚었다.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도 "노동 시장 경직성을 해결하는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언급이 없고, 기존 틀을 고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소영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역시 "정부 주도 프로젝트가 너무 많다"며 "투자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것인데 정부가 나서서 어떻게 발굴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투자는 효율적으로 시장 메커니즘 하에 이뤄져야지, 정부 주도로 하면 효율성이 낮아질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했다.
 
설비투자 촉진 금융 지원 프로그램, 생산성 향상시설에서의 투자세액공제율 상향 등 민간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금융·세제 지원책을 쏟아냈지만, 한시적 지원책에 그친다는 점에서 실효성을 담보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소영 교수는 "규제를 2년간 한시적으로 풀어줬다가 나중에 다시 묶으면 투자가 더 위축된다"며 "지원책은 풀 때 확실히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잠재성장률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 체질 개선 작업이 절실하다"면서 "장기적으로 성장률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출범 초기부터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던 문재인 정부가 집권 3년 차에 접어들면서 내놓은 일자리 정책도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소영 교수는 "청년이나 노인 등 복지적 측면이 상당히 강조돼 있다"며 "일자리 자체는 늘어날 수 있지만, 비생산적인 일자리일 수 있다"고 짚었다.
 
한편 정부는 급증하고 있는 1인 가구 시대에 맞춰 주거·사회·복지·산업 측면에서 종합적인 대응 전략을 내년 중 수립할 계획이다. 정부가 이날 내놓은 '2020년 경제정책방향'에는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인구·가구 구조 변화 대응 방안이 담겼다. 향후 30년간 1인 가구는 연평균 9만1000개씩 늘어날 전망인데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29.3%가 1인 가구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9년 후에는 전국 모든 시·도에서 1인 가구가 부부나 자녀와 부부로 구성된 가구 등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에 정부는 가구원 수 별로 건설형 공공임대주택의 적정 대표 면적을 내년 중 산정키로 했다. 1인 18㎡, 1~2인 16㎡, 2~3인 36㎡, 3~4인 46㎡, 4인 이상 56㎡ 등으로 새롭게 설정하는 식이다. 가구원 수별 입주 수요에 맞춰 면적별 공급 비율도 새롭게 산정, 1~2인 소형 가구 대상 주택 공급 확대를 추진한다. 주거뿐 아니라 사회, 복지, 산업적 측면에서의 종합 대책은 내년 2분기께 수립할 것을 목표로 뒀다.
 
유례없는 초저출산 상황이 계속되자 정부는 지난 4월 범부처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응해 왔다. 그간 고령자 고용 연장, 외국인 인력 활용, 교원 수급 기준 조정, 병력 구조 개편, 주택연금 확대 및 퇴직·개인연금 활성화 등의 결과물을 내놨다.
 
1기 TF에서 다루지 못했던 과제, 구체화가 필요한 과제, 국민 생활에 밀접한 과제 등을 논의할 2기 TF는 이미 가동됐다. 고용·재정·복지·교육·산업·국토·국방·금융·지역·외국인정책 등 10개 작업반 규모로 운영하면서 필요 과제를 전반적으로 훑었던 1기와 달리 2기 TF에선 과제의 범위를 줄여 논의의 깊이를 더한다는 구상이다. TF 단장으로 지난 12일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던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오는 23일엔 관계 부처 1급 실무자들을 모아 부처별 과제를 발굴하는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내년 중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23만1000명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올해(-5만6000명) 대비 크게 늘어나는 샘이다. 이억원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고령화가 진행되면 소비 여력이 줄면서 우리 경제 성장에는 마이너스(-) 요인"이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정부는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고령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대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65세 고령자를 1년 이상 고용하는 기업에 연간 최대 700여만원을 지원하고, 고령자 채용 규모를 늘린 기업에는 세액공제도 확대한다.
  
정년 후 계속 고용, 재고용, 재취업 등 고령자 고용 촉진을 위한 인센티브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정부가 제도적 지원책을 보다 확대해 기업들의 고령자 고용 확대를 계속적으로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고용 사각지대 축소를 위한 한국형 실업부조사업, 청년 및 신중년 일자리 창출에도 집중 지원한다. 주52시간제와 관련해서는 50~299인 사업장에 제도가 무사히 안착하도록 보완책을 추진하고, 특수형태 근로자에 대한 산재보호 역시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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